After

#감정

by 비루투스

그녀는

나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내 어둠을, 조용히 감쌌다.


곁에 있어서는

안 될 여인.

그 순간,

나는 너무나 옳았다.


살아야 할 이유,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나를 뚫고, 지나가버렸다.


도덕보다 오래된,

어떤 신념보다 선명한—

그 침묵 속에서

모든 우상이, 무너져갔다.


나는,

신을 부정한 자로,

그녀 앞에 서있다.


도덕 너머로

이제 가려한다.

기꺼이,

몰락하려 한다.


나는, 그 순간

가장 고귀한 예술을 원했다.


검은 눈동자에 비친

디오니소스를 목놓아, 불렀다.



— 도덕 너머의 몰락, 그리고 예술의 부름


시는 사랑을 통해 도덕과 신념, 신과 예술이라는 거대한 개념들을 뒤흔든다. 시적 자아는 한 여인을 마주하며, 자신의 어둠을 감싸주는 그녀 앞에서 존재의 균열을 경험한다. 그녀는 “곁에 있어서는 안 될 여인”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옳았다.” 이 문장은 윤리적 판단과 감정의 진실 사이의 충돌을 보여준다. 시인은 도덕적 규범을 넘어서, 감정의 절대성을 받아들이려 한다.


사랑은 그를 “뚫고, 지나가버렸다.” 이 표현은 사랑이 단순히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관통하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살아야 할 이유를 무력화시키고, 모든 우상을 무너뜨린다. 시인은 말한다. “도덕보다 오래된, 어떤 신념보다 선명한— 그 침묵 속에서 모든 우상이, 무너져갔다.” 이 구절은 사랑이 인간이 만든 모든 질서와 신념을 초월하는 힘이라는 선언이다.


그리고 시적 자아는 신을 부정한 자로 그녀 앞에 선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존재의 전복이다. 그는 이제 도덕 너머로 가려 한다. “기꺼이, 몰락하려 한다.” 몰락은 파괴가 아니라, 해방이다. 그것은 기존 질서의 붕괴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진실에 도달하려는 의지다.


마지막 구절은 시 전체의 정점이다. “나는, 그 순간 가장 고귀한 예술을 원했다. 검은 눈동자에 비친 디오니소스를 목놓아, 불렀다.”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광기와 예술, 본능과 파괴를 상징하는 신이다. 시인은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디오니소스를 본다. 그것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예술적 열망과 존재의 해방을 부르는 신적 힘이라는 의미다. 그는 그 힘 앞에서 몰락을 선택하고, 그 몰락 속에서 가장 고귀한 예술을 갈망한다.


「after」는 사랑 이후의 이야기다. 그것은 도덕 이후, 신념 이후, 신 이후의 이야기다. 시인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 뒤, 그 잔해 속에서 예술을 부른다. 그리고 그 예술은, 검은 눈동자 속에서 피어난다.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 말은 흔히 위선과 이중잣대를 풍자하는 데 쓰이지만, 영화나 소설, 혹은 현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넘어선다.

사랑은 과연 제도와 윤리의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가? 나는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본질과 사회적 규범 사이의 간극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챗GPT는 결혼한 상태에서의 로맨스와 불륜을 ‘관계의 맥락’과 ‘윤리적 책임’으로 구분했다. 그 논지는 약속과 선택이 감정의 진정성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배우자와의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은 로맨스이고, 그 밖에서의 감정은 불륜이라는 설명은 명쾌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만약 사랑이 그렇게 단순히 구획될 수 있는 감정이라면, 우리는 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졸이고, 왜 문학과 예술은 그토록 금기된 사랑을 노래해왔을까.


이런 논의는 문학에서 더 복잡하게 다뤄진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상징적 응답이다. 100년도 더 전에 쓰인 이 소설은 도덕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After』를 썼다.


주인공 다이스케는 사랑에 대한 이상을 품지만 결혼 제도에는 냉소적이다. 가족이 소개하는 여성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그의 마음에는 이미 친구 히라오카의 아내 미쓰요가 자리한다. 다른 여성들 속에서 미쓰요의 흔적을 찾으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표면적으로는 친구에 대한 의리 때문에 사랑을 접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 그의 망설임은 신분과 가족의 권위, 전통과 개인 사이에서 빚어진 것이었고, 그 비겁함이 미쓰요의 불행한 결혼을 초래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 감정은 단순한 연모를 넘어, 자기 존재를 직면하게 하는 자각이었다.

결국 그는 결혼을 거부하고 가족의 기대와 금전적 지원까지 포기한다. 미쓰요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며 다가올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떠올렸다. 다이스케는 아폴론적 질서—이성, 절제, 체면, 책임—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미쓰요를 향한 감정은 그를 디오니소스의 세계로 이끈다: 광기, 열정, 몰락, 그리고 예술. 그는 더 이상 중립적 관찰자로 머물 수 없다. 감정은 그를 뚫고 지나가며 모든 우상을 무너뜨린다.


그는 마침내 결단한다. 가족과 친구의 이해를 구하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그는 미쓰요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은 도덕의 승리가 아니라 감정의 진실에 대한 항복이자, 예술적 몰락이다.


불륜과 로맨스를 결혼의 유무로 나누는 것은 단순한 윤리적 구분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통제하려는 사회의 권력적 언어다. 사랑은 제도 안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감정이 진심이었다면, 그 관계가 서로에게 구원이자 파멸이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지 ‘불륜’이라 부를 수 있을까?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는 결국 그 관계에 실린 진심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진심’은 상호성·책임감·지속성을 포함하는 감정의 깊이를 뜻한다. 물론 진심만으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진심이라 주장되는 감정이 일방적 이기심이나 무책임으로 변해 타인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반례가 존재한다고 해서 진심의 무게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례들은 진심이 감정에 실질적 무게를 부여할 수 있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사랑은 때로 도덕보다 오래되고 어떤 신념보다 선명하다. 그것은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두 사람의 내면에서만 측정될 수 있는 감정이다. 문학은 언제나 그 경계를 넘는 사랑을 다뤄왔다. 그 안에야말로 인간 존재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결말은 알 수 없다.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히 드러내면서도 독자에게 판단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핵심은 그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태도가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하며, 동시에 예술의 출발이자 완성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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