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창문 밖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기약도 없이,
누군가를 마주하고 싶었다.
길 건너편에,
작은 꽃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백합 한 다발을 품에 안았고,
젖은 꽃잎엔,
빗방울이… 함뿍 맺혀 있었다.
방 안은,
강한 향기로… 가득 차올랐고,
옛 그림자가,
연기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좀 더 일찍 돌아갈 수 없었을까?'
그땐,
모든 것들이… 자유로웠는데,
작은 일에… 웃을 수 있었는데.
세상이… 아름다웠지.
그리고… 내 옆엔,
언제나... 네가 있었어.
꿈은 곧… 깨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 없이,
팔짱을 끼고,
방안을 서성이다,
백합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어지러울 때까지,
그 향기를 맡으며,
가슴 깊은 곳까지,
천천히… 들이마셨다.
비는,
소리를 내며 그침 없이 내렸다.
나는,
빗소리에 갇혀 격리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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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정물」은 창밖의 비로 시작된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내면을 비추는 감정의 거울이다. 그 비는 고독을 두드리고, 그리움을 끌어올린다. “기약도 없이, 누군가를 마주하고 싶었다”는 문장은 외로움의 깊이를 드러내며, 시선은 길 건너편의 작은 꽃집으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품에 안은 백합은 단순한 꽃이 아니다. 젖은 꽃잎에 맺힌 빗방울은 흘러내리지 못한 감정처럼 보이고, 방 안을 가득 채운 향기는 잊고 있던 기억을 연기처럼 피워낸다. 이 정물적 이미지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움직일 수 없는 감정들이 고요히 흔들리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왜 나는, 좀 더 일찍 돌아갈 수 없었을까?”라는 자문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시간에 대한 절절한 회한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작은 일에도 웃을 수 있었다. 세상이 아름다웠고, 그 곁에는 ‘너’가 있었다. 이 ‘너’는 구체적인 인물일 수도 있고, 잃어버린 자아나 순수함일 수도 있다. 시인은 그것을 명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의 여백을 남겨둠으로써, 독자 각자가 자신의 기억을 투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꿈은 곧 깨지고, 머리는 지끈거린다. 현실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방 안을 서성이다가 백합 곁으로 다가가 향기를 들이마신다. 이 행위는 단순한 감각적 반응이 아니라, 감정을 다독이고 기억을 되새기려는 자기 위로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나는, 빗소리에 갇혀 격리되고 싶었다”—는 이 시의 정서를 응축한 문장이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감정 속에 잠기고 싶은 욕망.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평온을 향한 갈망이다.
「비와 정물」은 정물이라는 제목과 달리,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시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들 속에, 움직일 수 없는 감정들이 고요히 흔들린다. 이 시는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도, 비에 잠긴 적이 있는가. 향기 속에서 기억을 되새긴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이, 당신을 잠시나마 위로한 적이 있는가.
&유독 내가 글의 소재로 삼는 작가와 작품에는 'Made in Japan '이 많다. 왜 그런가하고 생각해보니, 나는 꽉 채워진 것보다는 뭔가 여운이 있고 의미부여가 되는 문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모든 작가와 작품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소설과 영화들은 선이 굵고 뭔가 꽉꽉 채워진 느낌이 든다. 독립영화까지도 작가의 의도가 짙게 배어든 느낌이 난다. 반면 일본작가와 작품들은 드러내기보다 감추면서도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느낌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몰라도 일본작품들은 볼때마다 감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국작품보다는 같은 작품을 여러번 읽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