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감정

by 비루투스

당신을 그리고 싶지만
나는 한 줄의 선도 그을 수 없네요.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는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어요.

당신이 앞에 있다면
나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 있어요.

당신이 없는 날은
아주 먼 미래 같고,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는,
과거대로 흘려보내면 되죠.

나는,

이 환상 속에
계속 머물고 싶어요.

당신이 떠오르면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빨간 태양을 바라보겠어요.

“오늘, 나는 그녀를 만난다.”

그렇게 외치면
더 바랄 건 없어요.

그러면
모든 것이
희망 속에
잠길 테니까요.



— 환상을 통해 사랑할수 있다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의 부재가 한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베르테르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그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의 슬픔은 시대를 넘어, 사랑의 본질을 묻는 질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한다. 사랑이 현실이 아니더라도, 그 환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존재의 선택이 된다.

“당신을 그리고 싶지만 / 나는 한 줄의 선도 그을 수 없네요.”
이 구절은 베르테르의 무력감과 닮아 있다.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그 대상은 너무 멀다. 하지만 이어지는 “나는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어요”는
베르테르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환상 속에서는 바라왔던 가능성을 품을수 있다.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그 감정은 더 애틋하게만 느껴진다.

“당신이 없는 날은 / 아주 먼 미래 같고 /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 구절은 시간의 감각을 뒤흔든다. 베르테르에게도 시간은 고통이었지만, 시적 화자는 그 고통을 오늘이라는 결단으로 붙잡는다. 그리고 마지막,
“그러면 / 모든 것이 / 희망 속에 / 잠길 테니까요.”
베르테르가 선택한 죽음 대신, 시적 화자는 희망 속에 머무는 삶을 선택한다.

이 시는 베르테르의 슬픔을 패러디하면서도,
그 슬픔을 현대적 감정으로 재해석하고,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사랑이 현실이 아닐지라도, 그 환상이 오늘을 살아가게 만든다면 그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 책을 읽다가 문득 신승훈의 노래 〈사랑해서 헤어질 수 있다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이 네가 될 수 없잖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샤롯데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능력 있고 책임감 있는 약혼자 알베르트를 두고 있다. 감성적이고 이상을 좇는 베르테르는 신분과 현실의 장벽에 자주 부딪힌다. 처음에는 샤롯데를 대신할 다른 사랑을 찾으려 하지만 현실에 좌절하고, 결국 샤롯데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장면들을 요약하면서 마음 한편이 아릿해졌고, 동시에 인권교육 시간에 들었던 비판도 떠올랐다. 그 수업에서는 이 작품이 여성의 감정과 선택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남성의 고통과 욕망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한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 지적에 적잖이 당황했다.


작품을 읽을 때는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관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르테르는 근대적 자아의 좌절을 상징하는 인물이며, 그의 고통은 개인적 비극을 넘어 당시 시대의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남성 작가가 남성의 시선으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작품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젠더의 시선을 넘어서 욕망의 구조로 작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라캉의 이론은 그 해석의 유효한 틀이 될 수 있다.


라캉의 관점에서 샤롯데는 베르테르의 욕망과 이상이 투사된 이미지에 가깝다. 그녀는 독립적 주체라기보다 베르테르 내면의 결핍을 드러내는 대상으로 기능한다. 반면 알베르트는 사회적 규범과 제도를 대표하며, 베르테르가 넘지 못하는 경계로 작용한다. 샤롯데는 가까이 있지만 결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결핍을 채워주기보다 오히려 그 결핍을 지속시키고, 베르테르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실재의 균열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러나 꼭 베르테르는 죽어야만 했을까. 브람스와 클라라,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처럼 가까운 곳에서 우정을 지켜가는 선택도 가능했을 것이다. 사랑을 소유하려는 태도는 결국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된다. 만약 그가 사랑을 소유가 아닌 ‘존재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더라면 다른 길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며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구상했다.


또다시 노래가 들려온다.

“사랑해서 헤어져야 한다면, 헤어져도 사랑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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