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감정

by 비루투스

어머니 품 안에서 처음 별을 보았을 때처럼,
그 추억들은 어스름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녀는 나를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나는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는데, 나는
이름 없는 슬픔에 가슴 아려오는데, 나는

그녀의 전부를,나의 모든 것을,
감춰진 모든 것을 말하고 싶다.

내게 어딜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녀는 내 존재도 모를 것이다.

저녁노을처럼 말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한 번이라도 빛을 보고 나서 눈이 멀었으면,


내게는 그럴만한 조건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바라건대 그대의 오라비가 되던,
바라건대 그대의 아버지가 되던,

그저 이웃 사람의 인연이라 할지라도,
그대를 보고, 목소리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대만을 위해 무엇이든 되고 싶다.



사랑의 불확실함과 존재의 고통


시는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서 출발하지만, 그 세계를 그대로 옮겨오지 않는다. 시인은 뮐러의 고백적 정서를 통과하면서, 자신만의 언어로 사랑의 거리와 존재의 울림을 재구성한다. 그 결과는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사랑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낸 독립적인 작품이다.

시의 첫 구절은 기억의 이미지로 시작된다.
“어머니 품 안에서 처음 별을 보았을 때처럼, / 그 추억들은 어스름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사랑의 시작을 가장 순수한 기억과 연결시키며, 사랑이란 감정이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감정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사랑의 불확실성과 존재의 고통이 교차한다.
“그녀는 나를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나는 /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는데, 나는 / 이름 없는 슬픔에 가슴 아려오는데, 나는”

이 반복은 사랑의 일방성과 감정의 불투명함을 드러내며, 시적 화자가 자신의 감정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 사랑은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피어나고, 그 거리 속에서 화자는 자신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된다.

“그녀의 전부를, 나의 모든 것을 / 감춰진 모든 것을 말하고 싶다. / 내게 어딜 그럴 자격이 있는가? / 그녀는 내 존재도 모를 것이다.”

이 고백은 사랑의 본질을 묻는다. 사랑이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격은 어디서 오는가?
그녀가 자신의 존재조차 모른다는 사실은, 사랑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동시에 얼마나 순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의 후반부는 소망과 체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저녁노을처럼 말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 한 번이라도 빛을 보고 나서 눈이 멀었으면, / 내게는 그럴만한 조건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 구절은 사랑의 실현보다, 사랑을 바라보는 순간의 찬란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사라지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빛을 볼 수 있다면—그것이 사랑의 전부일 수 있다는 시적 화자의 절절한 태도가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 연은 사랑의 형태를 넘어선 존재의 바람이다.
“바라건대 그대의 오라비가 되던, / 바라건대 그대의 아버지가 되던, / 그저 이웃 사람의 인연이라 할지라도, / 그대를 보고, 목소리 들을 수만 있다면, / 나는 그대만을 위해, 무엇이든 되고 싶다.”

이 고백은 사랑의 소유가 아니라, 사랑의 존재로 남고자 하는 바람이다. 그대의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형태라도 괜찮다는 이 말은,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무조건적이고, 얼마나 깊은 헌신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그대를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대만을 위해 무엇이든 되고 싶다.”

워즈워드의 시 「고지의 소녀」에서 비롯된 이 구절은, 《독일인의 사랑》이 품고 있는 정서를 관통하는 메타포다. 사랑은 감정이기 이전에 존재의 방식이며, 상대를 위해 나를 바꾸고자 하는 깊은 열망이다.


교회 특송을 준비하며 친구들과 찾은 노래방. 기타를 치던 친구가 부른 Mr. Big의 노래에서 들려온 한 구절—“I'll be your daddy, your brother, your lover and your little boy”—은 단박에 귀를 사로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화의 ‘중독’이라는 노래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반복된다. “그녀 곁에 있다면 누구라도 되고 싶어요.”

그렇다면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의 교류를 넘어서, 타인의 세계로 향하려는 존재의 의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들과 주먹질하던 시절에 처음 이 소설을 접했다. 이성과의 감정은커녕,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때였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추상’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이었다. 시를 인용해 감정을 은은하게 전달하는 문장들은, 어린 나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작의 딸 마리아는 동생들에게 반지를 하나씩 끼워주다가, 마지막 남은 반지를 ‘나’에게 건네려 한다. 그 순간, 나는 말한다.

“그 반지는 네가 끼고 있어. 너의 것은 곧 나의 것이니까.”

마리아는 조용히 대답한다.

“너는 아직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

이 짧은 대화는 사랑이 단순한 소유가 아님을 암시한다.


어른이 된 후, ''는 마리아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는다. 예전처럼 격의 없이 지낼 수는 없었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마리아의 병세는 악화되고,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에게 반지를 돌려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당신의 것은 나의 것입니다. 당신의 마리아.”

이 말은 사랑이 소유를 넘어 존재의 합일로 나아가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사랑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서로에게 존재로서 다가갔던 사랑이, 소유가 되는 순간 사라지는 그 감정의 여운. 나는 그 찰나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영원으로 기억되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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