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삶이 자신의 이름을 상실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질문들에 대답해야만 한다.
어차피 삶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러한 파편들을 그러모으는 것이 앎
자기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리는 이는
새롭게 태어날 가능성에 몸을 맡기고
과거와 미래가 뒤얽힌 시공간에 홀로 머물러
온몸으로 마주하고 양팔로, 그것을 얼싸안아
감정의 흐름에 손을 휘젓고 단어를 건져내어,
이성은 정해진 뼈대에 맞추어 살을 붙여내고,
무한한 관계의 연결 속에 자신을 던져놓는다.
우리는 종종 ‘시작’을 단순히 무언가를 새로 여는 행위로 이해한다. 그러나 시 「시작」은 그 단어를 훨씬 더 깊고 복합적인 층위로 끌어올린다. 이 시에서의 시작은 단순한 출발이 아니라, 상실을 전제한 재탄생이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곧 정체성을 잃는 일이며, 이는 존재의 근본을 흔드는 사건이다. 하지만 시적 화자는 그 상실을 끝이 아니라 질문의 문턱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그 질문들에 대답해야만 한다”는 구절은, 상실이 곧 자기 탐구의 출발점임을 선언한다.
삶은 본래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파편들을 그러모으는 과정이 ‘앎’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앎은 완결된 지식이 아니라, 흩어진 조각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맞춰가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흥미로운 것은, 시가 상실을 단순히 회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리는 이는 새롭게 태어날 가능성에 몸을 맡기고”라는 구절은, 상실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열쇠임을 역설한다. 이는 실존주의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 완전히 무너진 자리에서만 전혀 다른 형태의 자아가 태어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시의 후반부는 창작 행위에 대한 메타포로 전환된다. 감정의 흐름 속에서 단어를 건져내고, 이성으로 구조를 세우며, 무한한 관계의 그물 속에 자신을 던지는 모습은 시인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드러낸다. 창작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와 자신을 다시 엮어내는 작업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가 뒤엉킨 시공간 속에서 온몸으로 마주하고 껴안는 행위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결국 「시작」은 두 겹의 의미를 품는다. 하나는 창작의 시작이다. 감정과 이성이 만나 언어를 빚어내는 순간, 시는 태어난다. 다른 하나는 삶의 시작이다. 상실과 혼돈을 지나 새로운 자아로 나아가는 출발점, 그것이 곧 시작이다. 이 두 의미는 서로를 비추며,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시작’을 되묻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름을 잃는다. 그것이 사회적 지위일 수도, 관계 속의 역할일 수도, 스스로 믿어온 자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상실의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시작이 가능해지는 자리다. 시 「시작」은 그 자리를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의 공간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우리가 파편을 모으고, 질문에 답하며, 다시 세계 속으로 몸을 던질 때 비로소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