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나들이

#기억

by 비루투스

오늘은 아침부터

봉사활동을 했다.


연탄이 까맣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

겉이 이렇게

미끈하고 차갑다는 건

오늘 처음 알게되었다.


집게로 연탄을 집어

오르막길을 올랐다.


팔이 조금씩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할머니가

창고 문을

삐걱—

열었다.


우리는

연탄을

차곡차곡

서툰 손으로

쌓아 올렸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했다.


발가락 사이에

검은 연탄물이

까맣게 들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맑고

개운해졌다.



-검은 연탄과 맑은 마음


우리는 종종 ‘봉사’라는 단어를 도덕적 의무나 사회적 책임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떤 경험은 그 이상의 것을 남긴다. 한 편의 시가 보여주듯, 봉사는 단순한 선행을 넘어, 몸과 마음을 동시에 흔드는 깊은 체험이 될 수 있다. 이 시는 연탄 봉사라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육체적 고단함 속에서 피어나는 정서적 맑음과 내면의 변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시의 화자는 아침부터 연탄을 나르는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연탄이 ‘까맣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미끈하고 차갑다’는 감각은 처음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사물의 재발견을 넘어, 익숙한 것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봉사는 단지 남을 돕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몰랐던 감각과 감정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연탄을 집게로 집어 오르막길을 오르는 장면은 봉사의 육체적 고됨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팔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고통은 과장 없이 담담하게 서술되지만, 그 속에는 묵직한 현실감이 배어 있다. 그러나 이 고단함은 곧 전환점을 맞는다. 할머니가 ‘삐걱—’ 소리를 내며 창고 문을 여는 순간, 봉사의 대상이 구체적인 인물로 다가오고, 그 만남은 봉사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연탄을 ‘차곡차곡 서툰 손으로 쌓아 올리는’ 장면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정성과 마음이 담긴 행위로 그려진다. 이때의 ‘서툰 손’은 단지 기술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낯선 일을 향한 진심 어린 태도, 그리고 어색하지만 진정성 있는 마음의 표현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 연이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며 발가락 사이에 남은 ‘검은 연탄물’을 발견한 화자는, 이상하게도 ‘마음은 맑고 개운해졌다’고 말한다. 이 대조는 시 전체의 정서를 응축한 핵심이다. 겉은 더럽혀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정화된 것이다. 이는 봉사가 타인을 위한 행위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 시는 봉사를 미화하거나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담백하고 사실적인 언어로, 봉사의 본질을 조용히 드러낸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연탄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삶의 진실이, 이 짧은 시 속에 고요히 담겨 있다.



& 그날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봉사활동은 예전에 점수 때문에 해본 적이 있지만 일부러 찾아간 적은 없었다. 딱히 약속도 없었고, 주말에 철학책을 펼칠 기분도 아니어서 러닝크루에서 주최한 연탄봉사에 참가 버튼을 눌렀다. 1만원이면 연탄 열 장을 기부할 수 있는 행사였다.


집합장소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보였고, 다른 봉사단체도 함께해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도착하자 하얀 방호복 같은 작업복을 나눠주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었고, 나는 크루가 아닌 가족들 틈에 얹혀 차를 타고 갔다. 현장에 서니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와 닮아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 동네는 재개발로 예전 모습이 사라졌는데, 언젠가 이곳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동네에서 연탄보일러를 쓰는 분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아 연락이 닿지 않으면 직접 방문한다고 했다. 고독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을 무겁게 했다. 그래도 돌보는 손길이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첫 번째 집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이 없었다. 연탄을 나를 장비가 보이지 않아 사람들끼리 한 줄로 서서 창고까지 두 장씩 전달하며 차곡차곡 쌓았다. 내 옆에는 아빠와 함께 온 중학생이 있었는데, 키가 맞지 않아 힘들다며 자세를 낮춰 전달해 달라고 했다. 잠깐 머쓱해져 자세를 낮춰 연탄을 건넸다. 나이를 물으니 중학교 1학년이라고 했다. 봉사학점이 필요해 아빠를 졸라 같이 왔다고 했다. 과학고를 목표로 한다는 아이의 눈빛이 똘망했다.


두 번째 집은 오르막길에 있었다. 연탄 트럭과 거리가 있어 걸어서 연탄을 날라야 했다. 할머니는 차가 들어오지 못한다며 미안해하셨다. 연탄집게를 집어 양손에 여덟 장씩 들고 올라가자 업힐 구간에서 장딴지 뒤쪽 근육이 저려왔다. 생각보다 운동이 되는 것 같았다. 차가운 연탄에 뜨거운 불씨가 스며드는 것처럼 날씨는 쌀쌀했지만 몸은 금세 후끈해졌다.


언덕을 몇 번 오르내리락 하는 동안 일이 먼저 끝난 팀들이 합류했고, 일손이 많아지니 금방 마무리되었다.

연탄 배달을 마치고 대표자가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주었다. 까만 연탄을 나르고 길거리에 둘러앉아 먹는 짜장은 평소와 다른 맛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누웠는데 피곤했는지 거의 기절하듯잠들었다. 눈을 뜨니 오후 다섯 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오늘 있었던 일을 글로 정리하기로 했다.


올해 겨울은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 23화6월 3일, 한양도성길 밟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