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한양도성길 밟기

#기억

by 비루투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라!
푸르지 않아도, 하늘은 여전하네.

새벽이슬, 햇살 아래 반짝이며,
나뭇잎은 바람을 타고 흔들리네.

큰 행복은 작은 것에서 시작되고
소소한 기쁨이 그 속에 깃들어 있네

온기를 품은 포근한 빛
친숙한 길이 이어진 그곳에서,
온 세상은 그리운 고향이 되네.


— 공동체, 역사, 그리고 기도

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은 격변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날, 필자는 마라톤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22km에 달하는 한양도성길을 걸었다. 이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나 취미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의 길함을 기원하는 집단적 기도이자, 몸으로 새긴 의식이었다.

한양도성길은 조선의 수도를 둘러싸던 성곽길로, 역사적 상징성과 공간적 연속성을 동시에 지닌 장소다.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밟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되짚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행위다. 나는 그날의 경험을 시로 기록했고, 그 시는 걷기의 의미를 자연과 감정, 공동체의 풍경 속에 담아냈다.

시의 첫 구절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라!”라는 외침으로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다짐의 표현이다. “푸르지 않아도, 하늘은 여전하네”라는 구절은 외부의 혼란과 상관없이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이어지는 자연의 이미지—새벽이슬, 햇살, 나뭇잎, 바람—은 그날의 풍경이자, 정서적 회복의 상징이다.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함께 흔들리는 나뭇잎은, 공동체의 움직임과 자연의 리듬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거울이다.

시의 중반부에서는 “큰 행복은 작은 것에서 시작되고 / 소소한 기쁨이 그 속에 깃들어 있네”라는 구절을 통해, 걷기의 본질을 되짚는다. 22km를 걷는 행위는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마음의 지속성을 시험하는 과정이다. 함께 걷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 땀, 숨소리, 웃음은 소소한 기쁨이 깃든 공동체의 풍경이었다.

마지막 연에서는 “온기를 품은 포근한 빛 / 친숙한 길이 이어진 그곳에서 / 온 세상은 그리운 고향이 되네”라는 표현을 통해, 한양도성길이 단순한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정서적 귀향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단순한 자연의 온기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기와 기억의 울림이다.

이 시는 탄핵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그날의 걷기와 그날의 기도는 시의 행간에 깊이 새겨져 있다. 「한양도성길 밟기」는 걷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역사와 마음을 함께 짊어지는 기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기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깊어지고 더 멀리 간다.


& 대선날, 마라톤 동호회 한 분이 ‘한양도성길 22km 완주’를 제안했다. 마침 비번이기도 했고, 언젠가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던 코스라 주저 없이 참가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다. 아마 제안한 분도 이렇게까지 규모가 커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트레일 러닝은 자연 속 비포장길을 달리는 운동이다. 고도 변화가 크고 지형이 불규칙해 로드 러닝처럼 속도감을 느끼긴 어렵지만, 그만큼 더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래서일까,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소처럼 친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달렸다. 누군가 앞에서 “조심!” 하고 외치면, 뒤따르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게 서로를 챙기며 길을 나아갔다.


아침 일찍 시작한 러닝. 나뭇잎 위엔 새벽이슬이 아직 머물러 있었고, 그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며 이슬은 빛을 머금고 반짝였다.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오늘은 6월 3일, 대선이 다시 치러진 날이다. 나는 사전투표 시작과 동시에 투표를 마쳤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가 지켜온 자유와 민주주의는 군화발에 짓밟혔을 것이다.

아직도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하며, 회복의 기회를 날려버린 이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우리 사회를 좀먹는 사단들—사이비 정치, 사이비 이념, 사이비 종교, 사이비 교육—이들은 끊임없이 발목을 잡아왔다.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방법은 단순하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 ‘돈줄’을 끊으면 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왜 지지부진한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결국 행위대로 돌아가리라 믿고 기도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우리나라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 이만큼 살기 위해 이토록 많은 것을 요구하는 나라가. 돈과 권위가 없으면 무시당하는 건 세계적 현상이겠지만, 우리나라는 하나를 잘해도 다른 걸 못하면 모든 것을 비난받는다. 그 점이 특히 답답하다.

마지못해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그래도 우리나라가 잘되면 기분 좋고, 남이 욕하면 괜히 열받는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어쨌든 오늘 한양도성길을 탑돌이하듯 돌며,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켜온 ‘얼’과 ‘정신’에게 감사했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진심으로 빌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에 가려 푸르지는 않았지만, 하늘은 여전히 하늘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길이 있었다. 그 길은 또 다른 길과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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