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대에서

#기억

by 비루투스

점심시간은 남았는데,
속이 빈 듯이
허전했다

가방 속
구운 계란이 떠올라
껍질을
책상에 부딪혀 깼다

… 액체가 나온다
이게
상했을 리가…

노른자가
손에 묻는다

생계란을
구운 줄...

이거
어떡하나

쓰레기통은 멀고
승객들은
몰려오고

나는
눈 딱 감고
삼켰다

꼴깍

비릿한 느낌이
목줄 깊이
올라온다

얼굴을
찌푸리는데

여권이
내밀어진다

“안녕하세요.”


— 일상의 해학

“점심시간은 남았는데, 속이 빈 듯이 허전했다.”
이 첫 문장은 단순한 허기를 넘어선 감정의 공허함을 암시한다. ‘속이 빈 듯이’는 육체적 배고픔을, ‘허전했다’는 표현은 마음의 공허함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무의미함이나 정서적 결핍일 수 있다.

“가방 속 구운 계란이 떠올라 껍질을 책상에 부딪혀 깼다.”
여기서 계란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허전함을 달래줄 작은 위로이자, 일상 속에서 기대할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곧 산산이 부서진다.

“… 액체가 나온다. 이게 상했을 리가…”
껍질을 깨자 흘러나온 액체는,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상징한다. 구운 줄 알았던 계란이 사실은 생계란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확신’ 속에서 실수를 저지르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실수는 늘 가장 민망한 순간에 드러난다.

“이거 어떡하나. 쓰레기통은 멀고, 승객들은 몰려오고…”
이 장면은 개인의 위기와 사회적 역할이 충돌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공항이라는 공간, 다가오는 승객들, 그리고 ‘직원’이라는 정체성. 이 모든 요소가 화자의 선택을 압박한다. 그는 지금 ‘사람’이기 이전에 ‘직원’이다.

“나는 눈 딱 감고 삼켰다.”
결국 그는 ‘삼키는’ 선택을 한다. 여기서 ‘삼킨다’는 행위는 단순히 계란을 넘긴 것이 아니라, 당황스러움, 실수, 체면 손상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삼킨 것이다. 이 장면은 해학적이면서도 씁쓸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이걸 그냥 넘겨야 하나’ 싶은 순간.

“비릿한 느낌이 목줄 깊이 올라온다.”
이 구절은 단순한 미각적 묘사를 넘어, 감정의 역류를 상징한다. 부끄러움, 후회, 자책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그 감정을 표현할 틈도 없이, 현실은 다시 밀려온다.

“여권이 내밀어진다. ‘안녕하세요.’”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반전을 준다. 개인적인 위기 속에서도 사회는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는 여권을 내밀고, 화자는 다시 ‘직원’의 얼굴로 돌아가야 한다. 비릿한 감정을 꾹 삼킨 채, “안녕하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 이 짧은 시는 바로 그 ‘순간’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이 시의 진짜 묘미는, 황당한 상황을 담담하게, 그러나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데 있다. 생계란을 삼키는 장면은 우습지만,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겪는 ‘작은 재난’의 순간이다.



& 얼마 전, 가족과 함께 후쿠오카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공항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고, 출입국 직원들도 무척 친절했다. 숙소는 텐진역 근처였는데, 번화가치고는 한산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언어를 듣는 일은 묘하게 안도감을 준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복귀했을 때, 공항은 이미 외국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특히 일본인 승객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후쿠오카가 한산하게 느껴졌던 것도, 어쩌면 이들이 대거 한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거리 탓인지 일본은 물론, 중국과 대만 승객들의 수가 압도적이다. 나는 오전 11시에 출근하는데,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이미 대기 줄이 복도 끝까지 늘어서 있다. 연달아 심사를 하다 보면 오후 4시쯤 돼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다. 요즘엔 인천공항에서도 보기 드문 여권들이 들어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 내 직업을 말하면 “그쪽 직원들은 왜 그렇게 불친절하냐”며 다짜고짜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런 직원도 있다. 하지만 일을 하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늘 승객 수에 비해 인원이 부족하고, 교대도 자주 받지 못한다. 게다가 세상에는 정말 별의별 승객이 다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하루 종일 상대하다 보면 체력 소모는 상상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본 승객들을 좋게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먼저 기분 좋게 인사하고, 차분히 기다리며 예의를 지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 때도 인사를 빼먹지 않는다. 별일 아닌 듯해도, 그 한마디가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준다. 혹시 직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불평만 하기보다 먼저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 아무리 피곤해도, 먼저 인사하는 사람에게 인상 쓰는 직원은 내가 아는 한 거의 없다.

예전에는 국적별로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 한국인은 급하고, 일본인은 질서를 잘 지키며, 대만인은 조용조용하고, 중국인은 다소 시끄러운 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외국인들도 한국의 빠른 시스템에 익숙해졌는지 모두가 바쁘게 움직인다. 자동문 앞에서 조금만 늦어도 손을 흔들거나 노크를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적어도 공항 안에서는 한국어가 국제어처럼 느껴질 정도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다.

특히 외국인 여성들 중에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많다. 발음도 좋고, 입국신고서에 한글을 또박또박 예쁘게 써온다. 가끔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도 있어 놀랄 때가 있다.

심사를 하면 여권 정보를 읽고, 지문과 얼굴 정보를 취득한다. 그런데 가끔, 너무 빨리 엔터키를 누르면 찡그리거나 놀란 얼굴이 찍힐 때가 있다. 한 번은 핀란드 비치발리볼 대표팀이 입국했을 때였다. 사진을 그렇게 찍었다가 고개를 드니, 앳된 얼굴에 190cm는 족히 넘는 자이언트 베이비가 울상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K-팝의 영향으로 외국인 방문객이 많아진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최근엔 ‘케데헌’(코리아 데빌 헌터즈)이 그 열기에 불을 지핀 듯하다. 한 번 아이돌이 떴다 하면 공항은 순식간에 북새통이 된다. 연예인은 멀리서도 표가 난다. 모자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스타일이나 분위기에서 범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TV에서 보던 얼굴을 심사대에서 마주하면 반갑기도 하고, 가끔은 안부를 묻기도 한다.

지금까지 만난 연예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탤런트 정일우 씨다. 빨간 정장을 입고 “수고하십니다”라며 먼저 인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보통 연예인이 먼저 인사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평소에도 인성이 바르기로 유명한 배우였다.

가끔은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이 이렇게까지 몰려올 만큼 특별한 게 있을까. 하지만 매일같이 수많은 이들이 입국하는 모습을 보면, 몸은 힘들어도 나름의 자부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한국을 좋아해 주고, 마치 자기 동네처럼 여기는 외국인들을 보면, 이 나라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매력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는 침략이나 약탈보다는 균형과 공존을 추구해 왔다. 세계가 흔들릴 때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때로는 줏대 없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이다. 트럼프의 일방적인 패권주의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걸어왔다. 그건 분명, 평가받을 만한 태도다.

글을 마치기도 전에, 다시 발걸음 소리가 밀려온다. 커피를 들고, 나는 오늘도 세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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