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지금은 새벽 세 시
내 의도와 상관없이
너무 일찍인가 싶어
베개에 얼굴을 묻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다시 잠이 들긴 했지만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다.
일어날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 사이로
어느새 30분이 지나고
하루를 허투루 버릴 수 없어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스트레칭을 빡세게 하고
플레이리스트를 고른 뒤
조금씩 지면의 감각을 느끼며
온몸의 근육을 일깨워 나간다.
아침부터 햇살이 강하게 비추는데
아차, 선크림을 바르는 걸 잊었구나!
하지만 이만큼 달려왔으니,
여기서 다시 돌이킬 순 없지.
궁합 잘 맞는 커플처럼
좋은 날씨와 달리기는
너무나 찰떡같은 조합이지.
단백질 음료를 한 번에 들이켜고
시원한 샤워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
—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 시는 새벽 세 시라는 정적인 시간에서 시작해, 운동과 샤워로 이어지는 아침의 활기찬 순간까지를 따라간다. 겉보기엔 단순한 일상의 흐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의지, 그리고 감각의 회복이 섬세하게 녹아 있다. 시는 마치 일기처럼 자유로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시적인 긴장과 리듬이 살아 숨 쉰다.
“지금은 새벽 세 시”라는 첫 문장은 시간적 배경을 명확히 하며, 독자에게 고요하고도 약간은 불안한 분위기를 암시한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 너무 일찍인가 싶어”라는 구절은 화자의 수동적인 상태를 드러내며, 의도치 않은 각성과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게 한다. 이어지는 “일어날까, 말까 / 망설이는 마음 사이로 / 어느새 30분이 지나고”라는 표현은 누구나 겪는 아침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처럼 시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화자의 심리적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결국 화자는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라고 결심한다. 이후의 연들은 신체적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스트레칭을 빡세게 하고 / 플레이리스트를 고른 뒤 / 조금씩 지면의 감각을 느끼며 / 온몸의 근육을 일깨워 나간다”는 구절은 감각의 회복과 몸의 각성을 묘사한다. 이는 단순한 운동의 묘사를 넘어,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특히 “아차, 선크림을 바르는 걸 잊었구나!”라는 대목은 일상의 소소한 실수조차도 생동감 있게 그려내며, 현실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좋은 날씨와 달리기는 / 너무나 찰떡같은 조합이지”라는 표현은 자연과 인간 활동의 조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날씨 묘사를 넘어, 외부 세계와의 조화를 통해 내면의 활력을 되찾는 과정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단백질 음료를 한 번에 들이켜고 / 시원한 샤워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는 결말은 일상의 루틴이 단조로움이 아닌 활력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며, 하루를 능동적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 시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상호작용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새벽의 고요함, 망설임, 결단, 그리고 몸의 각성을 통해 화자는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흔히 겪는 무기력과 싸우는 태도를 상징하며, 독자에게도 일상의 순간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시는 결국,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작은 실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무언가가 자신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것을 ‘행복’이나 ‘행운’이라 부를 수 있지만, 막상 그 실체를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는 이는 드물다. 어쩌면 사람들은 특별함의 실체보다 단지 지금과 다른 어떤 상태를 막연히 꿈꾸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어딘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 ‘다름’의 형상은 분명하지 않다.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나는 나의 일상적인 루틴이 계속되기를 원한다.”
이 말은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 특별함을 바란다면서 왜 평범을 고집하느냐고 묻겠지만, 나에게 루틴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하는 구조이자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의식이다. 정해진 시간의 예배처럼,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정돈한다. 피곤하고 귀찮아도 그것을 하지 못하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 감정은 강박이 아니라, 중심이 흔들릴 때 오는 불안이다.
비번날의 루틴은 독서와 운동이다. 요즘에는 집안일도 그 목록에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과 체조로 몸을 깨우고, 청소와 설거지를 한 뒤 빨래를 널어둔다. 이 과정은 단지 집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 번 게을러지면 집은 금세 어지러워지고, 그 혼란은 곧 몸과 정신의 나태로 이어진다. 그 악순환을 여러 번 겪은 기억이 나를 다시 루틴으로 이끈다.
새벽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귀찮다. 그래서 나는 루틴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든다. 일어나면 스트레칭과 복근, 아령운동으로 몸과 정신을 깨우고, 샤워 후에는 헤드셋을 끼고 보이스북을 튼다. 하나의 행동이 다음 행동을 부르고, 연결된 루틴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그렇게 하면 집안일도 덜 귀찮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함이 남는다.
물론 시스템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다. 흐트러지고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지키려는 의지다. 루틴은 나를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가끔 루틴을 거역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그러나 그 충동을 따르면 결과는 늘 같다. 더 피곤해지고, 더 무기력해지며, 결국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정신은 오히려 더 말똥말똥해진다. 잡생각은 지루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해도 그조차 힘들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약속이 없으면 운동할 때를 제외하곤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외출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사람을 만나고 공간을 바꾸는 일은 자극이지만, 동시에 내 루틴을 흔든다. 그래서 나는 외출 전 의식을 해소하고 나가려는 편이다. 해야 할 일을 마친 뒤에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흐트러짐은 예전의 습성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글을 퇴고하는 요즘, 이 균형에 더 민감해지곤 한다.
루틴이 항상 장점만 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 그중에서도 이성과의 사이에서는 충돌이 생기기 쉽다. 문제의 원인이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리려 애쓰는 옛 모습이 드러날 때 내가 무심결에 욱하게 되고, 그 감정이 말이나 표정으로 새어나가 상대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다. 표현하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오해가 쌓이고, 작은 갈등이 쉽게 증폭된다.
아마도 내가 루틴에 집착하는 모습은, 맞닥뜨리는 상황을 통제하고 범주화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통제는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방어막이 되어 타인과의 연결을 가로막기도 한다.
"어떤 행동이 거짓이 되는 것은 새로운 거짓 루틴이 생기기 때문이다. 변화한 상황에서도 기존에 유효했던 루틴을 계속 사용하기 때문이다." *
글을 퇴고하거나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루틴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규칙적으로 글이 써지거나 기록이 꾸준히 좋아지는 일은 거의 없다. 루틴은 기반을 다져주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때로는 루틴을 의도적으로 흔들어야 하고, 불편함을 참아내며 순간의 혼란을 견뎌야만 비로소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끌어낼 수 있다. 그 불안과 혼란을 견디는 과정이야말로 글쓰기와 달리기에서 느끼는 묘한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루틴은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제공하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해답은 아니다. 오히려 루틴은 발생 가능한 변수를 인식하고, 그 흐름에 때로는 자신을 내맡길 때 더 큰 발전을 만든다.
결국 루틴은 고정된 틀이라기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준비 상태로서의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숨겨져 있는 매개 변수가 있다. 어쩌면, 그래서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87p, 어크로스, 2025.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