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하루키, #도시, #청년
달빛 비치는 산길을 걷다 보면,
보이지 않던 사소한 장애물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전체 윤곽은 점점 뚜렷해진다.
평면화되어, 고립된 사물 사이로,
무섭고 섬뜩하게 보이는 얼굴들이
라이트를 켜서 그곳을 밝게 비추어 보지만,
어둠 속에서 환영들은 하나씩 사라져 버린다.
멀리 구석에서 가만히 응시하는 슬픔을,
다가가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어버렸다.
메말라버린 소금기를 남겨놓은 채,
슬픔은 낯선 곳으로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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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곳이었다. 달력의 붉은 숫자가 찍히면 이른 오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저녁이면 거리는 숨 쉴 틈 없이 활기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날, 휴일의 피크타임임에도 거리는 조용했다. 청년들의 모습은 드물었고, 그 공백은 더 크게 다가왔다. 내가 기억하던 풍경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흩어진 걸까.
간판 불빛은 하나둘 꺼져가고 있다.
뉴스는 수도권 집중을 말하고, 온라인은 지방을 조롱한다. 입시 문턱이 낮아졌다는 기사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였다. 청년이 머물 이유가 없는 도시는 미래를 잃는다. 지역을 떠받치던 산업은 쇠퇴했고, 몇몇 중견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정책과 정치의 공백은 사람들의 선택지를 좁혔고, 그 결과는 거리의 적막으로 되돌아왔다.
갈 곳 없는 그림자 하나가,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지나는 발걸음에 밀려나도
그저 멍하니 서있기만 하네!
정치는 어디에 있었는가. 도시를 이끌어야 할 이들은 무엇을 했는가.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졌는가. ‘정(情)의 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왜곡된 정(政)이 정(正)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비판은 분노로 끝나지 않고, 절망과 체념으로 이어졌다.
나는 지금 수도권 인근에서 외지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 올라왔을 땐 계획이 많았다. 직장과 가까운 방을 구하고, 취향이 맞는 모임을 찾아다니며 워라밸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주거비와 생활비는 감당하기 어려웠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으면 모든 계획은 무너졌다. 삶은 계획이 아니라 생존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나는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그 땅의 지리와 관습에 익숙했고, 정보와 네트워크를 자연스럽게 흡수한다. 부모의 집을 기반으로 자산을 쌓고 기회를 확장해간다. 반면 지방 출신은 연고 없이 홀로 시작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연애와 결혼, 삶의 선택들까지 그 격차의 영향을 받는다. 희망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건 나이와 피로뿐이었다.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외로움과 슬픔 그 속에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희망과 꿈
누군가가 알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줄까?
어느 날, 서울에서 모임을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즐거운 시간이 끝난 뒤였지만, 아무도 없는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네온사인의 조명이 젖은 포장에 반사되어 번들거렸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이미 멀리서 잦아들었다. 그 화려함 속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그곳엔 내가 머물 자리가 없었다.
네온사인은 화려하게 비치고 있는데,
어둠은 여전히 그곳에 쓸쓸하게 남아있네.
저편 어딘가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늘 그래왔듯 고개를 돌렸고, 모른 척 지나쳤다. 그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발걸음은 느려졌고, 외로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문득 누군가의 인정이 그리워졌다.
그림자는 다가와 말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포근한 온기가 천천히 등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는 조용히 내리고, 와이셔츠는 서서히 젖어들었다.
그림자를 뒤로한 채 이 도시를 나서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내리는 빗방울
어깨 위에 조금씩 젖어드는 촉촉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