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번 등장하여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모든 행위는 그러한 발생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류에게 남은 것은 인간적 사건들의 본질 속에 놓여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푸틴은 악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게는 전쟁의 책임이 없을까? 전쟁의 명분은 러시아의 부흥과 재건을 위한 것이었다. 푸틴은 나토의 영향력이 자국의 안보와 영토를 위협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고, 전쟁은 즉흥적인 감정으로 내린 결단이 아니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여러 번 경고했었고, 네오나치 집단을 응징하겠다고 말했다.
푸틴이 말하는 네오나치는 돈바스 전쟁이 한창이던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네오나치, 극우 성향으로 결성된 민병대로, '아조프 연대'라고 불리며 정규군에 편입되었다. 이들은 실제로 신나치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내세우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민자들과 자신들의 신념과 반대되는 이들을 폭행하고, 우크라이나 내 소수집단에 대한 무장공격도 자행하였다. 네오나치들은 수류탄과 화염병을 사용하여 러시아계 주민들을 건물밖에 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 질식사나 추락사를 유도하였고, 당국은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다. 러시아는 이러한 행동을 자국에 대한 도발행위로 간주하였고, 이를 양국 간의 종전을 위해 체결했었던 민스크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 판단하여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책임을 물었으나, 그들은 자국에 대한 간섭으로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스탈린 치하에서 집단농장 정책으로 대규모의 기근과 아사를 경험하였고, 이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감옥으로 끌려가거나 굶어 죽었다. 하루 평균 1만 5000명씩 아사자가 나오는 현상이 8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이 기간에 인구의 12%가 사라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를 신뢰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었지만, 서로의 이해관계와 입장 차가 달랐다. 그러한 불만들이 쌓여가면서 전쟁은 다시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명분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사실 폭력은 대화와 타협이 아닌 힘으로 차이를 지우려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그들은 이러한 규칙 위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고, 그러한 경쟁이 많아질수록 전쟁은 더욱 참혹하고 폭력적인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렇게 증오하던 스탈린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도록 하자. 스탈린이 처음부터 악감정을 품고 의도적으로 그러한 정책을 집행했을까? 사실 '강철 인간'이란 별명을 가졌던 스탈린은 그리스 정교회 소속 신학교에서 착실하게 성직자 교육을 받았었고, 신앙심이 바탕이 된 이상을 꿈꾸던 젊은이였다. 스탈린은 민중을 압제하던 제정 러시아에 반감을 가졌고, 레닌을 동경하여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공산주의의 이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현하고 싶었고, 타락한 자본주의 국가를 넘어 공산주의 연방이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공업 정책을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였다.
이상을 꿈꾸던 젊은 청년은 낙후한 농촌지역을 혁명정신으로 모두가 함께 노력하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래 왔듯이 악은 선한 의도로부터 시작된다.
스탈린은 제정 러시아의 몰락은 착취적인 정치체계와 경제구조가 초래한 것으로 보았고, 자본주의 또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타락하여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올바른 사상과 교육을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면,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그러한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했던 가장 큰 실수 중의 하나는 문명의 발전은 사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나온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고, 그 자신은 그러한 대상에서 예외라고 생각했던 점이다. 결국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던 이상주의는 소비에트의 몰락뿐만 아니라 이상 그 자체에도 커다란 흠집을 내었다. 하지만 '이상' 그 자체에는 숭고했다는 점에서는 비난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의 실현 방법에 있어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이다.
히틀러와 유대인
이제는 푸틴과 유대인들이 그렇게 증오하던 히틀러와 나치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자. 히틀러는 민주주의 정권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인물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힌덴부르크는 경제와 정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히틀러는 독신자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하층 시민의 열악한 생활을 알게 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당시 독일 경제를 주름잡고 있었던 유대인에게 그러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불만은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공산주의 역시 사회를 어지럽히는 주범이었고, 그 중심에는 유대인이 있다고 보았다. 히틀러의 생각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유대인은 고리대금부터 시작하여 연예산업과 유흥산업에까지 광범위하게 진출했었고 부르주아의 위치에서 독일 민중들을 착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주요 인물 또한 유대인 출신이 많기도 하다.
히틀러 역시 독일의 재건이라는 순수한 목적에서 정치를 시작하였다. 독일 민중들은 자신들의 불운은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의 근본적 원인은 사회적 모순 속에 있었지만, 독일 민중들은 모든 책임이 유대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권세가들은 이러한 군중심리를 잘 이용하였고 이러한 의심은 대중이 믿어버릴 때 확신이 되어버렸다.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 악한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통해 비로소 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기독교 문명국가에서는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배은망덕한 집단이므로 그들을 박해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었고 유대인 박해는 히틀러 이전부터 일상적인 일이었다. 나치의 정책은 처음에는 유대인을 약속의 땅으로 보내주는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했었고, 처음에는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고 추방하였다. 아이히만 역시 자신의 업무를 신성한 의미로 받아들였었고, 헝가리의 유대인 재산 약탈에 대해서 강하게 비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고, 필요한 전쟁물자가 많아지면서 독일은 유대인의 재산을 약탈하기 시작되었고, 수용소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아이히만 재판
먼저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의 법정 구성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타국에서 통보도 없이 그를 납치하였고, 결국 아이히만의 재판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다. 재판을 진행하는 이들은 유대인이었고, 이를 보고 있는 방청객들도 유대인이었다. 재판은 법적 논리와 공정한 절차가 아닌 '감정법'으로 진행되었고, 따라서 시작과 동시에 판결은 예정되어 있었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했고, 부당한 절차에 대해서 항의했다. 유대인들의 공정치 못한 판단은 나치 전범들에게 정의를 실현했다기보다 그들을 부당한 재판에 항거하는 순교자로 만들어버렸다. 아렌트의 지적처럼 그들의 범죄는 공정한 절차 속에서 진행되어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었어야 했다. 그러나 아이히만의 재판은 예루살렘 법정에서 집행되었기 때문에 객관성과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였고 또한 그의 행동은 독일이 패전국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범죄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하여 아이히만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그의 책임은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함에 있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함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악의 평범성
"아이히만의 경우 성가신 점은 바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다는 점,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도착적이지도 가학적이지도 않다는 점, 즉 그들은 아주 그리고 무서울 만큼 정상적이었고 또 지금도 정상적이라는 점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사악하고 냉혹한 인물로서 받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가정에 충실하였고 주변과의 유대감을 중요시한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유대인들을 적대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실, 유대계 친척들을 좋아했었고 도움을 주기도 했으며, 독일계 유대인과 지식계층들을 추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들을 예우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아이히만은 그들과 가깝게 지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치스는 유대인들을 비인격화하기 위하여 국적을 박탈하고 그들에 대한 상투어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감각들을 마비시키려 하였다. 아이히만은 국적인 없는 유대인에게는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고, 그들을 박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동물에게 행해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그는 법정에서도 그러한 상투어 없이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는 유대인들을 비인격화하였지만, 자신까지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버렸다.
아이히만은 반복만 되던 단조로운 일상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고, 당에 충성하는 것은 곧 그의 업무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아이히만의 죄는 신념을 다해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충실한 것이었다. 즉 아이히만의 입장에서는 그 자신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가올 죽음에 만족하며,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죄는 상식을 결여하는 법과 명령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집행하였다는 것에 있었다.
아렌트는 이러한 점들을 지적하였지만 분노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은 그러한 논리를 수용할 수 없었고,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했던 유대인들 역시 힘을 가지는 의치에 있었을 때, 악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는 선만 존재하는 완벽한 장소가 아니며 누구든지 권력의 지점에 따라 악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선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악에 대한 것까지도 구별 없이 섭렵하여야 할 것이다. 악은 평범한 것이므로 선과 겹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악의 보편성
"피고들이 법적 범죄를 저지른 이러한 재판들에서 우리가 요구한 것은 인간들이 자기를 이끌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판단뿐이고, 게다가 그 판단이 자기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간주해야만 하는 것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일 때조차도, 사람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의 보편성은 사실, 편향성에 있다.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에만 쏠려 행동하다가 보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되고, 이상은 점차 권력이 변하여 그 자체가 현실을 억압하게 되어버린다. 이러한 편향성이 생기는 이유는 목적의 달성에 필수적인 과정을 견뎌내는 것을 피하려 하고, 그러한 것들을 죄악시하여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지라도, 현실과 부딪치게 될 때, 그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하다 보면 언제든지 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가능성 자체가 악이라고만 볼 수만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생각들과 공존하게 될 때,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다 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처음에는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시스템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착취적인 정치와 경제제도로 귀결되고 내분과 내전이 잦아지면서 몰락을 자초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그에 반해 민주주의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분명 아니지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가지더라도 최악으로 가는 것은 막을 수는 있다. 왜냐하면 악의 본질은 앞서 말한 것처럼 편향성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그러한 편향성을 타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로서, 민주정체에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그것이 집단의 이해에 반할 수 있더라도 그러한 과정은 충분히 검토되어야 하며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가 받아들여져야 한다.
아렌트의 표현처럼 악은 평범한 것이고, 또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으며, 나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악에는 언제나 선으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특성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잣대를 강요하는 것은 악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려 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그것은 항상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한길사, 2006.10. >
< 자유로의 도피, 에리히 프롬, 홍신 문화사, 2006.06. >
< 존엄성 수업, 차병직, 바다출판사, 2020.06. >
< 헌법의 탄생, 차병직, 바다출판사, 2020.06. >
<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돌베개, 2017.01. >
< 역사의 교훈, 윌 듀런트, 을유 문화사, 2005.08. >
동물은 거리낌 없이 서로를 잡아먹는다. 문명화된 인간은 법의 올바른 과정에 따라 서로를 소비한다. < 역사의 교훈, 윌 듀런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