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눈을 통한 '감시와 처벌'

#감시와 처벌, #미셀 푸코, #권력, #인권

by 비루투스

* 즉, 우리들 재판관이 과하는 형벌의 주안점은 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근본목표는 '교정', '감화', '치료'라는 것이다.


권력이란


그 새로운 객체란, 힘을 갖고 있으면서 지속적인 자연 그대로의 신체이고, 그 자체의 질서, 시간, 내적 조건 및 구성요소를 갖춘 자연 그대로의 신체이다. 1)


권력은 원래 신과 그를 대리하는 자들에게 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은 권력의지의 표상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었고, 사실상 그를 대리하는 자들의 의지가 곧 법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의지들은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은 사회계약이라는 합리적인 이론을 통해 법과 제도를 고안하였다.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말한다. 권력은 크게 거시 권력과 미시권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거시 권력은 사회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국가의 통치구조와 연관된 힘을 말한다. 그리고 미시 권력이란 비공식적인 곳에서 발생하는 힘을 말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와 영향을 받는 당사자의 관계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사회 대부분의 제도들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국가구조를 합리적으로 성립시킨 것처럼 믿어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미시권력들이 개인을 구속하고,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권력자들은 보편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 권력의 행사자를 규정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규율을 통해 사람들을 특징짓고 분류하며 특정화해 버린다. 푸코에 의하면 그것은 감옥과 수형자의 관계에서 시작하여 학교, 군대 등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되어 적용되는 원리이다.


이방인


두 명의 사형수는 ... 걸어가면서 자신의 결백을 큰 소리로 말하고, 교수대로 올라가는 사닥다리 위에서도 마찬가지로 저항의 몸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처럼 신체형이 전례의 의식을 포기하도록 된 경우, 사형수에게 보내는 인간적 감정은 어떤 역할을 갖는 것일까? 2)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형벌이 신체를 파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규율과 감시를 통해 개인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형벌은 이제 죄를 지은 행위보다 그 사람의 성향을 분석하고, 사회에 적합한 존재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그것은 더 은밀하고 정교한 권력의 작동이다. 감옥은 단순한 수용시설이 아니라, 개인을 분류하고 분석하며, 사회에 적합한 존재로 재구성하는 권력의 장치다.

이러한 규율은 단지 법적 처벌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 의료, 군사, 행정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작동하며, 개인의 삶을 세밀하게 통제한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믿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관찰되고 평가되며, 규범에 맞춰 살아가도록 훈육받는다. 푸코는 이러한 권력의 작동을 ‘규율권력’이라 부르며, 그것이 어떻게 개인을 구성하고 사회를 유지하는지를 분석한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인다. 그는 처음부터 그럴 의도가 없었다. 강렬한 햇볕에 눈이 따가웠고, 그 순간의 충동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았고, 연인을 사랑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관행과 윤리를 무시하고, 변호사의 전략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행위보다 그의 존재를 단죄한다. 살인죄의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한 이웃들은 그의 사생활의 영역까지 소급하여 뫼르소의 죄와 엮어버렸고, 그는 살인죄로 처벌받는 것뿐만 아니라 존재 그 자체까지 부정당하게 되었다. 그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이 믿고 있는 신까지도 부정함으로 마지막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한다. 그저 자신이 사형을 받게 될 때 구경꾼들이 많이 몰려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푸코는 근대사회 대부분의 제도들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국가구조를 합리적으로 성립시킨 것처럼 믿어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미시권력들이 개인을 구속하고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권력자들은 보편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 권력의 행사자를 규정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규율을 통해 사람들을 특징짓고 분류하며 특정화해 버린다. 푸코에 의하면 그것은 감옥과 수형자의 관계에서 시작하여 학교, 군대 등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되어 적용되는 원리이다.

예전에는 신체형을 집행함으로 권위에 대한 선전효과를 누리거나 처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죄인에게 모욕적인 형벌을 가하거나 끔찍한 방법으로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간혹 뫼르소처럼 자신의 죽음으로 권력을 조롱하고, 그것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저항의지로 표출되어 사람들의 의식을 각성하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신체형은 군주의 무제한적 권력과 민중의 위법행위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계몽주의자들은 보다 인도적인 법집행을 위해서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 민중의 위법행위에도 모두 제한을 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의식의 발전은 마그나카르타의 제정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권과 형벌


역설적이지만, 영국은 신체형의 이러한 소멸에 가장 저항을 많이 받은 나라의 하나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영국의 형사재판이 배심원 제도와 소송절차의 공개 인신봏호 영장의 존중에 의해서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

존 왕은 선왕에게 물려받은 영지를 모두 잃어버리고 이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그는 과도한 세금과 형벌을 부과했고, 이는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귀족들은 반란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해 민중들의 지지를 필요로 했고, 그 결과 대헌장(Magna Carta)에 ‘왕이라도 의회의 허락 없이는 세금을 걷을 수 없다’, ‘평민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 조항은 단순한 정치적 타협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권력에 균열을 내는 첫 번째 문장이었고,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권력은 더 이상 신의 대리자에 의해 무제한적으로 행사될 수 없었고,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제한받아야 했다.


마그나카르타는 형벌과 그 집행방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역사상 가장 많이 사용된 사형의 수단은 ‘참수형’이었다. 그러나 목은 많은 뼈로 구성되어 있어 쉽게 잘리지 않았고, 사형집행인의 힘과 기술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달라졌다. 이러한 방식은 지나치게 처참했고, 사형수에게는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프랑스혁명 시기 기요탱 박사에 의해 새로운 사형 도구, ‘기요틴’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죄수는 계급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며, 사형수의 경우에도 처형 방법까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요틴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형벌의 평등성과 인도성을 상징하는 도구였고, 계몽주의적 법집행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기요틴은 기요탱 박사의 독자적인 발명품이 아니었다. 이미 16세기에 나무로 된 틀 속에서 칼날이 낙하하도록 설계된 장치가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마나이아’, 영국에서는 이를 개량하여 ‘질레트’라 불렀다. 이러한 장치들은 기술적 진보의 산물이었지만, 그 법적 적용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기요틴은 결국 새로운 부르주아 사회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했다. 법은 가난한 노동자들이나 힘이 없는 민중들의 편에 있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평등한 처형이라는 명분 아래, 권력은 더욱 정교하게 작동했고, 형벌은 더욱 은밀하게 개인을 규율했다.


기요틴은 인도적 처형이라는 명분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정교한 기술이었다. 형벌은 더 이상 공개적인 고통이 아니라, 은밀한 규율로 작동하며, 개인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한다. 법은 평등을 말하지만, 그 적용은 계급적이며, 권력은 그것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한다.


형벌은 정의의 실현이지만, 동시에 권력의 작동 방식이기도 하다.


감시와 처벌


아마도 개인이라는 것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적'표상의 허구적 원자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또한 '규율'이라고 명명되는 권력의 특유한 기술에 의해서 제조되는 현실의 모습인 것이다. 4)


푸코는 개인이 본래부터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기술에 의해 구성된 산물이라고 말한다. 즉, 개인은 규율의 대상이자 결과이며, 권력은 신체와 행동, 사고방식까지 침투하여 ‘사회에 적합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살인범으로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구금된다. 푸코의 해석에 따르면, 재판관은 뫼르소의 공격적 행위에 대해 재판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통해 그의 성향을 재판하는 것이다. 증인들 또한 살인죄에 대해서 증언하기보다,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을 싸잡아 비난한다. 그가 그렇게 비난당하는 이유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지켜야 할 법과 도덕이라는 것이 있는데, 뫼르소는 그것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위를 전혀 뉘우치기는커녕 비웃었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우발적 충동범이었지만, 양형 과정에서 그는 계획적인 살인범으로 규정된다.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사회의 법을 공격하는 자는 더 이상 시민이 아니며, 국가의 적이다. 행정법 이론에 따르면 그는 재판을 받을 때까지는 국민으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형이 확정되고 나서부터는 특별권력관계의 수범자로서 영조물 사용관계에 있다. 즉 그는 계약관계가 아닌, 일개 수형자에 불과하며, 자유를 박탈당하고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앞으로 뫼르소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 때까지는 수형자 번호가 그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의 근본적 목적은 수형자의 개선과 사회복귀이다. 따라서 뫼르소를 처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죄를 짓게 만든 성향을 교정하기 위한 것이다. 징벌로 하여금 법을 존중하도록 만들고, 규율을 통해 그를 교정하여 사회에 걸맞은 능력을 가진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 권력이 법을 통해 발현하려는 힘의 의지다.

그들은 그러한 규율을 통해 뫼르소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굴복하여 복종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가 반항한다면 철저하게 분리하고 분석하여 구분해 버리고, 필요할 정도의 개체성에 이를 때까지 그를 분해하려 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격을 박탈하고, 그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것이다. 그는 관찰의 대상에 불과하다.


뫼르소는 처음에는 항소도 하지 않았고, 감옥생활에 순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빌미로 신에게 귀의할 것을 권유하는 사제의 말에는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더는 굽히지 않고 반항한다. 권력은 신체를 통해 그를 구속했지만, 그의 영혼까지는 복속시킬 수 없었다.

그의 저항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규율에 굴복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것은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택이었다


관행과 변화


규율 중심적인 모든 조직의 중심에서는 소규모의 형벌 구조가 이루어진다. 이 구조에서는 자체의 고유한 법이 있고, 위법행위들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으며, 특유한 제재행태와 재판 심급도 마련되어 있어 일종의 재판 특권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규율의 제도는 일종의 '하위의 형벌제도'를 확립해둔다. 5)


푸코와 카뮈의 책을 읽으면서 어려운 이해를 필요로 하는 영역들은 어쩔 수 없이 나의 군대생활과 결부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난 의경이었기 때문에 군 생활을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했다. 예전에 사고를 한 번 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극상과 관계된 것이었다. 당시 경찰서는 파출소별로 의경마다 서열이 나뉘었는데, 난 줄이 잘 풀려서 일경 때 파출소 차석을 달았다.


경찰서에 소집되면 서열대로 막졸차석과 막졸이 사역이나 설거지를 맡아야 되었는데, 난 차석이었기 때문에 열외를 받았다. 나보다 한 달 위에 있었던 선임의 눈에는 그것이 거슬려 보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취침시간에 갑자기 내 뺨을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홧김에 멱살을 잡고 그를 들어 올렸는데, 그 모습이 적발되어 선임들한테 불려가 정신없이 맞았다. 맞는 것보다 더 억울한 것은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비난의 이유가 되는 것이었다. 변명도 통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더 괘씸하게 보이는 듯했다.

영창에 안 가는 대신 한 달 동안 반성문을 쓰고, 관물이라는 것을 당했다. 관물이란 관물대를 줄인 말인데,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을 받으며 감옥에 있는 것처럼 갇혀있는 벌이다. 소대 안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만 허락을 받고 나갈 수 있는 아주 치욕적인 처벌이었다.


내가 선임의 멱살을 잡았던 것은 그간의 관행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었고, 선임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였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을까? 소원수리 같은 제도가 행해지기는 했으나, 절차가 너무 투명했고, 그냥 맞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관행에 혼자서 저항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고, 그 후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았다. 부당한 관행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선임들 개인 사역에 동원되거나, 승진할 때마다 상납하는 것도 있었고, 당시 경찰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졌던 부당한 것들이 경찰도 아닌 의경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횡행하곤 했었다.


내가 선임의 멱살을 잡았던 것은 그간의 관행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었고, 선임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을까? 소원수리 같은 제도가 행해지기는 했으나, 절차가 너무 투명했고, 그냥 맞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관행에 혼자서 저항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고, 그 후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았다

부당한 관행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선임들 개인 사역에 동원되거나, 승진할 때마다 상납하는 것도 있었고, 당시 경찰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졌던 부당한 것들이 경찰도 아닌 의경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횡행하곤 했었다.


그 후에도 사건사고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었는데, 선임의 폭행으로 인해 후임의 어깨뼈가 탈골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하필 후임의 아버지가 전직 경찰이었기 때문에 부대 전체가 흔들릴만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선임은 결국 영창에 갔고 합의금을 물어줘야 했다. 아이러니했던 점은 한때 나도 폭행의 피해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관행이 학습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당한 관행들은 완전히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간요원들도 언젠가부터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소집이 있을 때에는 개별 면담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의 선임들 중에서도 그러한 관행에 직접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으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는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잘못된 관행에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분명 아니었고, 그 순교자도 그리 좋은 성향은 아니었다고 기억되지만, 어쨌든 목적을 달리하는 여러 가지 의도들이 모여 긍정적인 변화들을 이끌어내었다.


변화는 언제나 완전한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균열의 발견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나는 군대의 질서유지라는 관행의 취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사적인 이해관계나 개인의 일탈로 관행이라고 정당화되는 일들은 범죄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한 모습들을 군 생활 중에는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에게서, 택배 상하차를 했을 때는 작업반장에게서, 아파트 경비로 일했을 때에는 주민대표라 불리는 사람들에게서, 공무원이 되어서는 인권단체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문자 그대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것에 다른 의도가 담겼을 때, 어떤 것이 되는지 당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제한받지 않는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이 글에 영향받게 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이러한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매서운 눈으로 견제해주기를 바란다.


권력의 속성


권력의 속성 범죄의 존재는 다행스럽게도 '인간성의 강인함'을 나타내며, 그런 만큼 실제의 범죄에서 보아야할 것은 유약함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굽힘없이 솟구치는 에너지, 즉 모든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매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인간 개인의 강력한 저항'이다. 6)


푸코는 권력을 가치중립적으로 서술하였다. 권력은 사회유지적인 측면에서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견제되지 않는 상태로 사람들을 규율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런데 그의 책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이나 방법들을 서술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권력을 어떤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할까? 권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규율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뫼르소는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그가 실제로 행한 범죄의 구성요건을 명백히 밝히고, 납득할 만한 이유로 처벌해야 한다. 법은 감정이 아닌 이성에 근거해야 하며, 관행을 참작할 수는 있더라도 그것이 법률의 명확한 규정보다 앞설 수는 없다.

그러나 뫼르소는 법을 어긴 자가 아니라, 관행에 반항한 자로서 단죄되었다. 그는 살인범을 넘어 파렴치한, 패륜아, 심지어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사탄’으로 낙인찍혔다. 이러한 재판은 푸코가 말한 규율권력의 전형이다. 법은 뫼르소의 행위보다 그의 성향을 문제 삼았고, 사회적 규범에 어긋난 그의 태도를 처벌했다. 뫼르소는 법정에서 단지 범죄자가 아니라, 규범을 위반한 존재로서,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위협하는 이질적인 타자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뫼르소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신에게 귀의하라는 사제의 권유를 거부했고,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세상의 부조리함을 받아들였다. 그의 저항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는 규율에 굴복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의 침묵과 고독, 그리고 마지막의 반항은, 바로 그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간 존재의 강인한 증거다. 그것은 법과 도덕, 관행과 규율이 인간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권력을 거시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개인들에게는 압도적인 힘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시적인 측면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되면 그 사이사이에서 균열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권력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그것에 객관성을 투영할 수 있다면, 권력은 함부로 개인을 규율하지 못하고, 또한 함부로 측량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평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은 법과 제도 속에, 관행과 질서 속에, 그리고 우리의 말과 행동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균열을 발견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가 될 때, 권력은 더 이상 침묵과 관행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을 단순히 억압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그는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고, 그것이 어떻게 개인을 구성하고 규율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권력의 작동을 인식하고, 그것을 성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저항의 시작이며, 변화의 가능성이다.


뫼르소의 침묵과 고독, 그리고 마지막의 반항은, 바로 그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간 존재의 강인한 증거다. 그는 규율에 굴복하지 않았고,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지켜냈다. 그의 존재는 법과 규범이 인간을 완전히 포획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형식에 맞추지 않았고, 그로 인해 단죄되었지만, 그 단죄의 틈에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은 빛났다.


우리는 그 틈을 인식해야 한다. 권력은 완전하지 않으며, 그 작동에는 언제나 균열이 존재한다. 그 균열 속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저항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며, 이러한 메시지가 왜곡되지 않고 독자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그것은 단지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눈을 통한 '감시와 처벌' 』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서론 – 푸코와 카뮈를 통해 권력과 존재에 대한 문제 제기

– 글을 쓰게 된 동기: 규율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지킬 수 있는가


Ⅰ. 권력의 본질과 구조: 푸코의 시선

– 권력은 단순한 억압이 아닌, 신체와 정신을 구성하는 기술

– 거시 권력과 미시 권력의 구분

– 규율권력의 작동 방식과 일상 속 제도들


Ⅱ. 뫼르소의 재판: 존재의 단죄

– 『이방인』의 뫼르소가 받은 법적·사회적 평가

– 행위보다 성향을 단죄하는 재판의 구조

– 규범을 위반한 자로서의 낙인과 사회적 배제


Ⅲ. 규율과 교정: 형벌의 목적은 무엇인가

– 형벌의 목적은 응징이 아닌 교정과 복종

– 수형자의 사회적 재구성 과정

– 반항하는 자에 대한 분해와 제거의 논리


Ⅳ. 죽음 앞에서의 저항: 뫼르소의 선택


– 사제의 권유 거부와 신에 대한 반항

– 죽음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

–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


Ⅴ. 군대에서의 체험: 권력의 미시적 작동

– 의경 시절 경험한 서열, 폭력, 관물 제도

– 관행에 대한 저항과 그 대가

– 부당한 관행의 학습과 재생산

– 점진적 변화와 균열의 가능성


Ⅵ. 권력의 균열과 인간의 존엄

– 권력은 완전하지 않으며, 그 작동에는 틈이 존재함

– 그 틈에서 질문과 저항이 가능함

– 뫼르소의 반항은 그 가능성의 증거

– 인간은 규율을 넘어서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음


Ⅶ. 결론: 글을 쓰는 이유

– 푸코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지만, 성찰을 요구함

– 권력을 인식하고, 그 틈을 바라보는 것이 저항의 시작

– 뫼르소의 존재는 법과 규범이 인간을 완전히 정의할 수 없음을 보여줌

– “그 틈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며, 이러한 메시지가 왜곡되지 않고 독자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 참고서적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나남, 2020.04.20>

1) 244p

2) 114p

3) 40p

4) 302p

5) 281p

6) 440p

7) 465p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읽기, 심재원, 세창출판사, 2021.08.12>

<이방인, 알베르 카뮈, 민음사, 2019.09.02>



복잡한 권력 관계와 도구, 다양한 '감옥' 장치들에 의해 예속화된 신체와 힘, 그러한 전략의 구성요소인 담론의 대상들 사이에서, 곧 중심적이고 중앙권력 지향적인 사람들 틈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7)



< 아웃사이더 >


그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좇고 싶어 하고

그들은 모두 똑같은 말만 믿고 싶어 하지.


저항은 선택받은 자의 조건,

썩어가는 상처를 불로 지지고

진물나는 염증에 재를 뿌리지.


반항은 선택하는 자의 운명,

막지 마! 내버려 둬! 바람처럼 날 수 있게!

어두운 길일지라도 꿈꾸는 것은 나의 자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나만의 방식으로

밟힐수록 강해지고 밟을수록 빨라지지.


그것은 나의 절망이자 희망

그것은 나의 고통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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