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정의한다.

#인권의 문법, #조효제, #사회계약론, #합리적 이성

by 비루투스

*인권을 목적으로 간주할 경우 우리는 권리주장만으로 이상적인 인간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 권리를 철저히 행사하는 사회가 반드시 좋은 사회일까?


인권의 정의


인권이란 단어는 1215년 대헌장에서 명시적으로 등장했으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하여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권의 성격은 명사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를 말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 법에서는 이를 구체화하여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 비준한 국제 인권조약 및 국제 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라고 하였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는 인권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해 가면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해 가면서 바라는 것, 희망하는 것, 요구하는 것들을 권리의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정의하여 인권의 능동성을 강조하였다.

헌법 10조에서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성격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선언하고 있고, 이와 같은 인권보장 의무를 인권의 존중, 보호, 실현 의무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1조 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의 성질을 권리의 측면에서 볼 경우, 적용범위와 우선순위에서 국민과 외국인간에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여기서 '권리'란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는 힘을 뜻하고, '권력'은 권리의 협의적 측면에서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말한다. 그러나 헌법의 주체는 대한 국민이고, 국체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모든 권력은 국가나 정부가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인권은 자연법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인간의 역사는 인권발전의 전개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연법은 절대자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들 사이에서 원칙적으로 지배-복종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법을 토대로 형성된 인권은 천부성을 기점으로 보편성, 항구성, 불가침성 등으로 확장되는 성격을 가지며, 역사의 단계 때마다 권리를 위협하는 침해행위에 대항하는 사상의 원천이기도 했다.


인권과 사회계약


인권은 루소의 사회계약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여기서 계약이란 대등한 쌍방 간에 권리와 의무를 수반되는 것을 말하며 그러한 사회의 동의를 얻어 법과 제도가 파생되었다. 따라서 계약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가 어느 정도 제약받게 되는 것을 수용범위 내에서 동의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루소는 정념이 아닌 이성을 추구하는 시민이라면 공동선에 대한 의무를 스스로 부과한 의무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일반의지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경우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홉스는 민주주의의 제한과 국가 권력의 확장을 통해 인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인권의 목표와 작동방식, 과정이 모두 인권적일 때 인권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지만 시민들이 사적인 삶에 몰입하여 도덕성이 무너진다면 위정자들과 권세를 가진 자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인권의 연혁


키루스 대왕은 정복자든, 피 정복인 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며 세계 최초로 인권을 선언하였다. 그는 세상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는 이념 아래 모든 종교들을 존중하고 노예제를 폐지했으며, 군인이 점령지 백성을 약탈하는 걸 금하고, 빚 때문에 종이 되는 것에 반대하였다. 또한 인간들을 억압하지 말고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급여를 지불하라고도 했다. 마그나카르타가 귀족의 권리를 재확인하는 것에 그쳤고, 프랑스 인권선언의 자유, 평등, 박애는 중산계급 이상의 남자에게만 수용되는 권리였다는 사실과 비교하여 볼 때 그의 사상은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키루스 선언은 제국주의를 정당화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의 서거 이후 인권의 보편성이 계승되지 못했다는 점에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키루스의 선언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로마 공화정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인권 역사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인권을 가질 권리는 권리를 가질 권리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생산하는 권리임과 동시에 공동체를 위협하고 침해하는 것들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마그나카르타의 등장으로 국왕의 권한이 줄어들면서, 귀족의 권리신장과 함께 의회의 탄생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시민권의 형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 이유는 왕권과 의회가 대립할 때, 왕의 전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에서는 생명권, 저항권과 같은 인권 개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프랑스 대혁명은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기 때문에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를 계기로 '불가양', '천부인권'같은 자연권 개념이 정립되면서, 정치적 자유의 확대, 고문 폐지 등의 개념이 강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연합 총회에서는 각 국가별로 발전되어 온 인권기준을 국제적 차원에서 집대성하여 '세계인권선언문'을 작성하였다.


인권의 분류


인권은 크게 자유주의에 기초한 제1세대 인권, 사회주의에 입각한 제2세대 인권으로 나누어지는데 권리의 성질에 따라 분류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바사크는 프랑스혁명의 세 가지 구호에 따라 분류했다, 제1세대 인권은 자유를 중심으로 천부인권을 강조하며 이는 시민권과 정치권, 생명권과 재산권까지도 포함한다. 제2세대 인권은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두며, 이는 의식주, 교육, 의료 등에 관한 권리이다. 제3세대 인권은 연대와 인류애 중심으로 지역, 사회, 국가에까지 확장되는 권리이다.

세계 각국은 법 전통과 정치체제, 제도가 다르고, 또한 사상과 이념의 차이점으로 인해 인권에 대하여 제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은 보편적인 개념이지만 국가라는 틀 내에서 궁극적으로 실현되며 그러한 권리가 누구에게 속하는지에 대한 소유권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의 목록은 서로 나눌 수 없고, 전체가 하나를 이루며 그 중요성에 대해 서열을 매길 수는 없지만 불가피한 상황을 감안하여 우선순위를 정할 수는 있다.

인권은 크게 인신권, 절차권, 자유권, 복지권으로도 분류할 수 있으며, 인신권은 시민의 신체안전과 인격 보장에 관한 것을, 절차권은 법 앞에서의 평등, 공정한 진행, 무죄추정 원칙 등을 다루고 자유권에서는 표현과 사상, 출판과 신앙, 집회 결사 수호 등을, 복지권에서는 거주, 교육, 의료 서비스 보장 등을 다루고 있다.


인권이란


현대 인권이 지향하는 인권은 인간의 역량을 자력화하고 그것을 규범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도 권리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합과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며, 그것이 법적 권리인지 아니면 개인의 이익인지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즉 서로 다른 것들을 획일적으로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권의 적용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독점할 수 있는 권리란 없다.

인권은 그러한 간극을 메워주는 윤활유 역할을 해왔으며, 역사의 고비 때마다 발생하는 저항 담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 혁명으로 인한 결과가 좋았다고 하여, 그 틀에 맞춰 사상을 주입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로 봐야만 한다. 오히려 인권 자신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인권을 유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폐해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고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권이 완벽한 이론체계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현실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권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해가기 위한 이념이다. 그것은 보편적이면서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기도 하므로 인권에도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배분적 정의가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이론적으로 인권을 비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인권이 인권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들과 가치관이 협상의 테이블 위로 올라와야 하고, 각기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인권교육은 진영의 입장에 따라 편 가르기 또는 제로섬 게임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보다 건설적인 인권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이상형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경합과 충돌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그에 대한 타협 속에서 인권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권은 굳어버린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살아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 인권의 문법, 조효제, 후마니타스, 2007.06.30. >

< 인권 오디세이, 조효제, 교양인, 2015.02.23. >

< 인권 사회학의 도전, 마크 프레초, 교양인, 2020.02.28. >

< 인권의 대전환, 샌드라 프리더 먼, 교양인, 2009.10.05. >

< 불편한 인권, 박홍규, 푸른 들녘, 2018.06.26. >

< 키로파에디아, 크세노폰, 주영사, 2012.07.11 >

<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돌베개, 2017.01.23. >

< 헌법의 탄생, 차병직, 바다출판사, 2022.02.28. >

< 존엄성 수업, 차병직, 바다출판사, 2020.06.05. >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하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곳으로 갔다.

<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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