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편집

소설을 읽으며. 독서를 생각하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서평

by 비루투스

나는 최근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판타지는 결국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막연한 설렘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또래와 어울리는 일이 불편했다. 오직 집에서 책을 읽을 때만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한글을 일찍 배운 나는 일곱 살 무렵, 어머니가 사촌 집에서 가져온 위인전과 세계문학전집을 셀 수 없이 읽었다. 책 속 이야기는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 특히 『일리아스』 속 헥토르의 모습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조국의 명예를 위해 전장에 나서는 그의 결단은 어린 나를 사로잡았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고, 공부도 그렇게 했다.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고 글짓기 상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와 암기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점차 책과 멀어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가 내가 읽던 책들을 불태워버린 사건이었다. 그 이후 나는 책을 읽지 않았고, 나의 장점들도 함께 사라진 듯했다.


다시 책을 붙잡게 된 것은 연이은 시험 실패 때문이었다. 무언가 의지할 것이 필요했고, 그때 불현듯 헥토르와 영웅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에 대한 오기가 생겼고, 이제는 눈을 부릅뜨고 세계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다니던 교회 대신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가기로 했는데,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 신문과 잡지를 읽었지만, 점차 관심은 나 자신으로 옮겨갔다. 철학과 심리학을 탐독하며 인상적인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좋은 문장을 받아 적을 때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림이 전해졌고,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었다.


내가 쓰는 글은 정신분석적 성향이 강하다.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나는 동시에 ‘내담자’이자 ‘상담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진실을 곧바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을 의지하게 만든 뒤 기대는 순간 넘어뜨리곤 한다.


소설 속 서점은 작가의 바람과 독자들의 환상이 만들어낸 판타지다. 실제로 이상적인 공동체가 오래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다. 독서모임이나 동네서점도 처음의 기대가 바람처럼 사라지거나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딴지를 걸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타인이나 단체에 투영하다 보면 그것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환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한다. 욕망은 결핍을 채워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잉여적 갈망이며, 타자의 시선과 언어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스스로 만든 환상 속에서 더욱 힘들어질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욕망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자,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드러내는 힘이기도 하다.


좋은 책은 언제나 현실을 비춘다. 읽을 때마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키워드가 떠오르고, 그 단어들을 좇다 보면 물음이 생긴다. 답을 찾기 위해 또 다른 책을 펼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떤 문장이 나를 붙잡는다. 결국 나는 그 문장을 따라가다 공백 속에서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책 읽기는 운동과도 닮았다. 신체의 협응 능력을 기르려면 부위별로 운동을 하듯, 책도 분야별로 섭렵하다 보면 어느 정도 카테고리화된다. 운동에서 코어 근육이 중심을 잡아주듯, 좋은 책은 삶의 축을 지탱해 준다. 내 기준에서 좋은 책은 ‘고전’ 혹은 ‘고전급’이다. 기준이 잡히면 정보는 그 카테고리 안에 채워 넣으면 된다. 인공지능의 퍼셉트론 이론처럼 맥락만 잡히면 지식은 그 토대 위에 쌓이기 마련이다.


좋은 책과 모임은 환상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결핍을 인정하고 서로를 마주하게 한다. 그 공백 속에서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볼 때, 우리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독서는 삶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축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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