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타카>, <보이후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일까? 나는 이 물음에 단연코 'YES'라고 할 수 있다. 삶은 공허하다.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으면 삶은 의외로 길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선 일종의 의미 부여할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하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 즉 꿈이 있다는 것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일어나서 할 일이 있고, 갈 곳이 있고 살만한 가치를 스스로 부여한다는 점에서 꿈이 있다는 것은 좋다.
"누구나 무엇을 이용한다. 공허한 삶을 '의미'로 채우기 위해서는 이용할 무엇이 필요하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일을 할 때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살 가치가 있다는 것..."
신형철_슬픔을 공부하는 슬픔中
철학자 칙센트미하이 역시 '행복한 인생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몰입'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 우리는 어느 정도 꿈을 설정하고 그 꿈을 위해서 달려갈 때, 몰입의 영역에 들어설 때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놀고 쾌락만 즐기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하다. 특출 난 천재가 아닌 이상,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SNS에 갓생 브이로그, 갓생 살기 챌린지, 동기부여 쇼츠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다들 이루고자 하는 에너지는 잠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판가름이 나는 것은 '꿈의 유무'다. 꿈이 있는 자는 그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꿈이 없는 자는 자연스레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영역이 없어진다. 요즘 같은 자기표현이 생존인 시대에 에너지를 분출할 영역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점은 큰 메리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영화 <가타카>에서 빈센트가 우주 비행 가는 것을 목표로 두고 치열하게 질주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무기력하게 눈만 껌벅이고 있는 주인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인공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꿈이 있는 삶은 비교적 꿈이 없는 삶보다 재밌을 수 있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은 같은 것을 다르게 보게 하는 능력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 하나의 '꿈'만을 맹신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로운가? 여기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보이후드> 속 올리비아는 오직 자신만의 힘으로 애 둘을 키운다. 그럼에도 더 나은 삶을 갈망한다. 열심히 공부한 끝내 올리비아는 결국 대학 교수자리까지 올라가게 된다. 분명 목표에 성공한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비아는 이렇게 말한다. "이젠 내 장례식만 남았어.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그토록 허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을 정하고 노력해 왔건만 성공 뒤엔 비로소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허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꿈을 인생의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 사용하는 것이다. 허무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단으로. 단계별로, 한 스텝 한 스텝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하는 것이다. 최종적인 결론.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꿈에 대한 맹신보단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게 수단으로써 적당히 활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