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단순하시다. 계산이 필요 없는 분이시다. 옳다고 생각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분이시다.
아버지의 기억은 추석 때 씨름대회가 열리는 군북의 어디쯤이었는데 연승을 하는 젊은이에게 도전할 분 있느냐는 심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십 대의 아버지가 손을 들고나가신다. 세상 살기 싫다고 농약을 마시고 사경을 헤맨 지 얼마 됐다고 어머님이 모든 것을 버리고 살려놓았더니 추스르지 못한 몸으로 씨름판에 도전하는 무모한 기백 氣魄이 아버지였다.
팔만 원에 시골집을 팔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시작된 아버지의 삶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앙이 하나 있었다. 자식을 키운다는 거 잘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에 자존심을 버린 채 외상 봉지쌀과 약값을 월급날 계산하는 금호동 시절의 아버지는 보안관 保安官이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는 가난한지 몰랐다.
가난을 기억할 수 없었다. 비록 없이 살았을지라도 정신적 풍요는 희망을 품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