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돌뱅이 詩人
1
내 삶의 뿌리는 가난이었지
가난이 준 가치 價値는
성실 誠實을 지탱하더군
성실 誠實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는
삶의 진실 眞實을 만들고.
가난은 했지만
부끄럽지 않았어
엄마라는 위대한 여자가
온달 같은 아버지를 꼬셔
더 이상 군북이라는 곳은
살 수가 없으니(염치 廉恥와 체면 體面때문에)
야반도주 夜半逃走 하자고.
8만 원의 집 판 돈을 가지고
서울이라는 곳에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온갖 노동 勞動을
조건 없이 48세에 도전장을 내고.
그 세월 歲月이
꽤 길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15년밖에 되지 않았네.
애당초 부모님은
큰돈을 벌자고 서울에 온 것이 아니라
4남 1녀를 반듯이 키워보자고
목표를 잡았으니
15년은 성공한 삶 자체였어.
2
내 삶의 뿌리 가난 안에
근면 勤勉, 성실 誠實, 진실 眞實이라는
무기를 가슴에 품고
돈을 벌자고 결심했지.
둘째 형수의 집을 담보로
700만 원을 대출받아
은행 커미션 30만 원을 지급하고
봉제공장을 550만 원에 인수하고
잔여금 120만 원을 종잣돈으로
잠자는 시간 외
모든 삶은 철저히
바닥부터 시작했지.
돌다리 두드리듯
삶을 재단 裁斷했지
기술은 노력의 결실 結實이고
직원들은 함께 살자고 종용 從慂했지
외롭고 고독 孤獨하다는 말은
배때기 기름 찰 때까지 사치 奢侈였어.
언제부턴가
기름칠이 느슨해졌고
회의감 懷疑感이 들었지.
불혹 不惑의 중심에서
탁구를 시작했지
이 막의 삶을 준비한 거지
치열 熾烈했던 일 막의 삶보다
더 깊숙이 자학 自虐했지.
적어도
하루 5시간 이상 5년이란 세월 歲月을
갈고닦아
계급장 떼고 국가대표들도 출전한
50대 1부에서
우승이라는 믿기지 않는 결과물도 만들었지.
지금까지 밥줄이니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어
아직도 자부심 自負心을 느끼니까.
3
정상에 서 보니
정상의 지름길이 보이더군
그저 주어진 대로
한 발 한 발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목표 目標는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제는
나잇값 하는 시 詩를 쓰고 싶어
늦었다고 생각들 때
그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것은
이미 터득한 터.
주어진 하루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몸이 기억하는 시어 詩語를 찾고 있어
현란 絢爛한 기교 技巧보다
묵직한 울림이 있는
하이쿠처럼
한 줄의 시 詩를 남기고 싶어.
시작 노트
장돌뱅이가 되도록 노력했다
돈이란 세계에 비겁하지 않게 정면도전을 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게 나의 모든 것을 지워야 했다
자존심 自尊心이나 스며든 모든 것을 잊고
다시 배워야 했다.
이 시 詩는 내 바닥의 치부 恥部를
가감 加減없이 드러낸 거울이다
부끄러워 못내 감추다
육십이 넘으니 떳떳해지더라
적나라하게 쓰는 것도 용기 勇氣더라
“젊은 날
장돌뱅이 짓 하다 보니
도움받은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감사하며 살자고
그 선한 눈빛을 詩로 담고 있습니다”
숱한 말들 지우고
광진문학 신인대상 소감 所感으로 갈음한 것이 “장돌뱅이”라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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