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상담소 엔조이커플 편을 봤는데, 딱 나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장면을 봤다. 전부 동일한 건 아니었지만 예민함을 받아들이는 정도에서는 손민수 님이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좋은 영상이라 예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누구나 마음 안에는 크기가 다른 그릇이 있고, 민수 님은 불안과 예민함을 담는 그릇이 작은 것뿐이다. 그 그릇은 금세 차오르기 때문에 그릇의 크기가 큰 사람들에 비해 빨리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하고, '동굴'에 들어가는 것이 민수 님에게는 예민함의 그릇을 비워내는 방법일 뿐이다. 그릇이 꽉 차면 너무나 사소한 것, 한 방울만 떨어져도 감당을 못 하고 넘치기 때문에 '동굴'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예민함을 담는 그릇
기분이 안 좋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분이 블랙홀이라면 바닥을 찍는 순간 나의 모든 에너지와 기운을 전부 끌고 깊고 깊은 나락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이 안 좋아지고 에너지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예민함의 지수는 올라간다. '그릇'이 차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사소하게 느껴졌던 것들도 그릇이 차면 찰수록 2배처럼 느껴진다. 빨리 그 '그릇'을 비워야 하는데 집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릇을 비울 수 없게 된다. 점점 더 빠르게 예민해지고 결국 셧다운을 겪게 된다. 포기다.
포기라고 하면 뭘 포기했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눈물과 주저앉음이다. 그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의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온다. 나는 요즘 내 자신을 핸드폰 배터리로 비유하는 편인데, 집에 가서 눕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 완충까지 1시간도 안 걸리는 초고속 충전이 가능한데 컨디션 조절 실패로 결국 밖에서 셧다운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고, 완충까지 6시간씩 걸리는 slow charging 모드로 충전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주저앉아 있으면 30분 후 다시 느릿느릿 움직일 수 있긴 하다. 진짜 핸드폰 같지 않나? 대신 그 초고속 충전 모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말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 나에게 쉼이란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 온전히 나밖에 없는 시간이 쉼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름 기분 회복력이 좋은 편이다. 한 30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거나 아니면 샤워를 하면 기분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 이 글을 적으면서 생각해 보니 샤워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라 그런 것 같다. 샤워하면서 전화를 받거나 가족의 부름을 들을 필요가 없잖아? 그 외에도 내가 그릇을 빨리 비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까르보불닭이나 마라탕 먹기 정도? 근데 이건 전부 소통하지 않는다가 기본 전제이다. 나에게 소통과 충전은 공존할 수 없는 문제 같다. 물론 누구와 소통하냐에 따라 배터리 소모 속도가 달라지긴 하지만 어쨌든 민수 님처럼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자극을 받고 예민해지는 나에게는 하루 11시간 이상 밖에 있으면서 '그릇'이 다 차면 정말 작은 진동이 닿기만 해도 물이 흘러넘칠 것을 알기에, 극단적으로 보일지라도 소통을 단절하며 그 어떤 진동조차 내 그릇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정말 궁금한 건 말이다, 이 그릇을 어떻게 키우지? 나도 덜 힘들고 싶다. 힘들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눈물 흘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시는 7~8월처럼 매일 퇴근 후 눈물 흘리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매일 밤 너무 지친 상태로 집에 와서 30분~1시간가량을 침대에서 '충전' 하는 데 버리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출퇴근으로 인해 매일 길바닥에 3시간 이상을 버리고 있는데 거기에 추가로 1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체력과도 어느 정도 관계있는 것 같아 체력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거 외에는 잘 모르겠다. 그나마 저 영상과 그 아래 댓글들을 보면서 위안이 되었던 점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도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노력하고 버티며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