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by etoile



누구에게나 처음은 존재한다. 처음 불꽃놀이를 구경한 때라든가, 공원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처음 본

때라든가, 처음 비행기를 탔던 순간 등등 각각의 사연이 있는 처음 말이다.


내가 처음 경험한 미술관은 과천 현대미술관이다. 과천 현대미술관으로 향하는 서울랜드의 뒷 길에서 유모차를 끄는 엄마 옆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던 장면은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미술관에 대한 첫 기억인 동시에 인생의 첫 기억인 셈이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나와 자매들을 데리고 과천 현대미술관을 자주 방문했다. 미술에 대단히 조예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외가에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는 듣기는 했지만 부모님이 우리를 2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미술관에 데려간 것은 접근의 용이성 때문이리라. 지금처럼 키즈카페가 발달한 시대도 아니었고, 과천 현대미술관 근처엔 동물원과 서울랜드가 함께 있으니 주말에 아이들을 데려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유명 화가의 전시가 열릴 땐 예술의 전당을, 당시 아이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인체의 신비 전시를 가는 등 각종 박물관을 함께 다녔다. 여행을 갈 때조차도 박물관이 보이면 그게 무엇이든 방문했다.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특별히 흥미를 느끼는 아이는 아니었다. 물론 현대미술관만큼은 자주 가는 곳이니 이유 없이 마음 가는 작품이 여럿 있고,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볼 때면 그 크기와 번쩍이는 화면에 압도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미술관을 가는 일은 없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은 여유가 없었다. 나 역시 관심이 있었던 분야는 아니었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미술관은 내게서 멀어졌다. 한 번도 가까웠던 적 없는 것처럼.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한 과목의 선생님께서 자유 주제로 발표를 하고, 수행평가를 대체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자유주제인 만큼 과목과 전혀 관련 없어도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제각기 무슨 주제를 할 것인지 토론을 하는 와중에 내 머릿속엔 한 가지만 둥둥 떠올랐다.


반 고흐.


어릴 적 부모님이 나를 데리고 관람했던 전시 중에는 당연히 반 고흐도 포함이었다. 그 기억이 주제 선정에 영향을 주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그냥 그 순간 반 고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반 고흐의 삶은 불행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동생 테오의 지원을 받고, 정신병원을 들락거린다.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 고갱은 그의 곁에서 견디다 못해 떠난다. 고갱을 고흐 옆에 두기 위해 테오가 고갱에게 돈까지 쥐어줬는데 말이다. 반 고흐가 살아있는 동안에 판매한 그림은 고작 한 점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의 불행한 삶에 비해 그의 그림은 찬란하기 그지없다. 밝고, 따듯하고, 안정감을 주기까지 한다. 특히 그가 정신병동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그의 내면 속에 소용돌이 치는 감정이 묘사되어 있지만 빛과 희망도 함께 존재한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빛나는 희망을 그렸다.


발표를 위해 반 고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나는 그의 그림과 사랑에 빠졌다. 그의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았고, 희망을 가졌다. 그때부터였다.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 물으면 망설임 없이 반 고흐라 대답하게 된 것은.


반 고흐의 그림이 담긴 엽서를 벽에 붙여두고, 그의 그림을 직접 보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일 년도 안 돼서 찾아왔다. 예술의 전당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전시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혼자서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반 고흐의 미공개 자화상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전시된 공간으로 들어간 순간 내게 깊은 평안이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느꼈던 익숙한 미술관의 공기,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나를 감싸 안은 것이다. 전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림 앞에 서는 순간 그 공간에 혼자 있는 것처럼 고요함이 찾아왔다. 붓 터치가 살아있는 그림을 가까이서 보고 화면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한 가지 다짐했다.


언젠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꼭 별이 빛나는 밤을 내 두 눈으로 보리라.


그 다짐은 당시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도 못 보고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나는 그 뒤로 마음이 불안정할 때면 미술관을 찾았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기 시작했다. 아는 것이 없어도 그냥 봤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게 찾아오는 고요함이 좋았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을 땐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걸로 된 거다. 꼭 모든 작품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운 좋게도 일 년에 한 번은 반 고흐 그림을 볼 기회가 찾아왔다. 인상주의 컬렉션에 반 고흐의 그림 몇 점이 함께 전시될 때도 있었고, 반 고흐의 미공개 작품 한 점을 전시할 때도 있었다. 반 고흐 작품이 전시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게 어디든 갔다.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고흐의 그림을 봤을 땐, 오르세는 단번에 내 최애 미술관으로 등극했다.


전시 관람은 어느새 내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반 고흐를 비롯한 시냑, 세잔, 르누아르,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이름을 보지 않고도 대충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마음먹으면 뉴욕에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건 내게 하루빨리 달성해야 하는 목표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잘도 흘렀고, 난 일년동안 캐나다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미국은 비행기 열 시간을 넘게 타고 가야 하는 곳인데, 캐나다에서 미국은 마치 한국에서 대만이나 일본을 가는 것처럼 가까웠다.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둘 다 그랬다. 주말이나 휴일이 겹치면 미국에 들러 여행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뉴욕에 가게 되었다.


뉴욕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현대미술관에 가는 것. 메트로폴리탄도 좋지만, 현대미술관에는 내 오랜 꿈이 있다. 뉴욕에 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보다는 초조함이 밀려왔다. 내게 '언젠가'라는 것은 당장 내일이 될 수도 50년 뒤가 될 수도 있는 기약 없는 미래였는데, 그 '언젠가'가 며칠 뒤로 다가온 것이다. 생각보다 별로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너무 오래 바라왔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의 감동이 없을까 봐 두려웠다.


물론 그 걱정은 기우였다. 인상주의 작품이 가득 찬 층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음 깊은 곳에서 감정이 치고 올라왔다. 나는 잘 울지 않는 편이다. 얼마 전 한국을 휩쓸었던 '폭싹 속았수다.'를 볼 때도 울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눈물이 났다. 일행에게 들키지 않으려 떨어져 걸으면서 눈물을 참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이 감각을 오래오래 새기고 싶었다. 어디로 눈을 돌리든 내가 사랑하는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이 걸려있다. 정말 천국 같았다.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은 불친절했고, 인종차별이 노골적이었고, 물가가 비쌌고, 사람들이 많았지만 뉴욕에 현대미술관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 모든것이 용서가 되었다. 뉴욕시의 시민들이 미친듯이 부러웠다. 할수만 있다면 미술관을 통째로 한국에 가져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대미술관은 과천이든 서울이든 뉴욕이든 같은 전시관처럼 큐레이팅이 같다. 뉴욕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익숙한 공간에 내가 사랑하는 그림들이 걸려있는 기분 좋은 낯섦. 편안함과 색다름이 공존한 그 공간은 오르세를 제치고 내 마음 속 1위 미술관이 되었다.


Van Gogh_IMG_8124.JPG


한눈에 봐도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 내가 찾던 그림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천천히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가 현재가 된 순간, 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 그림을 보고 위로받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다짐, 과거의 경험들이 하나 둘 모여 나를 그 자리에 있게 한 것이다. 사진을 찍어준다는 일행의 제안을 거절하고 오래도록 그림을 눈에 담았다. 너무 좋으면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있다가 전시실을 나섰다. 나가는 동안에도 자꾸 뒤를 돌아봤다. 그러다 금세 앞을 보고 걸어갔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 나는 이제 그러한 원동력이 없어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나름의 어른이 되었으니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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