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가장 깊게 고민한 주제는 '영원한 사랑'이다. '영원'이 존재한다고 묻는다면 나는 곧바로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하물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도, 일상적으로 들이마시는 공기도, 한 낮이면 밝게 비추는 태양도. 모든 것은 유한하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A라는 사람이 어떤 B라는 사람을 만나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사랑했다고 치자. 죽는 순간 A의 감정은 사라지고 만다. 사랑이 끝난 것이다. 물론 그가 남긴 사랑의 흔적들을 보며 B는 A가 없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그의 사랑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삶이 다하는 그 순간 끝이 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영원한 사랑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영원한 사랑' 속 '영원'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을 약속한다. 죽는 그날까지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영원이라는 말로 속삭이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한 사람을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해서 시시때때로 변한다. 나는 변덕이 심한 사람이다. 사람을 잘 믿지 않으며, 곁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당연히 사랑에 빠지는 일도 드물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더러 있었지만,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나면 1-2년 뒤에는 금방 식는다. 좋은 부분만 보이는 연예인을 좋아할 때도 몇 년이 채 안 되어 마음이 변하는데,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 영원한 사랑을 믿어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남은 인생동안 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결혼을 하는데 제각기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겐 사랑이 없다면 결혼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사람들을 몇 년 간 연애를 하고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다음 스텝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난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혼하고도 이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결혼이라는 제도 없이도 지속적인 사랑을 이어가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완성이다.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나 스스로를 비혼주의자라고 규정하지 않는 것은 인생은 너무 예측 불가능하고, 앞서 말했다시피 난 변덕이 심한 사람이기에 어느 날 결혼을 결심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비혼주의자라고 말을 했다가 나중에 결혼이라도 해버리면? 한국 사회는 오지랖이 넓어서 비혼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런 시선을 견디고 꿋꿋하게 비혼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폐를 끼치는 일이 아닌가. 비혼주의자라는 단어를 남용하고 싶지 않다.
이십 대 초반이야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가능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 연애라는 행위가 삶의 필수 요소라기 보단 선택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연애' 자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이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연애를 목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가 연애를 한다는 것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감히 영원을 믿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의. 그런 상대와 장기연애를 했다. 아마 평생을 이 사람과 계속 만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큰 마음이었는데 특별한 계기도 없이 식어버렸다. 정말 말 그대로 식어버렸다. 단순히 오래된 커플의 편안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소중한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사랑은 아니었다. 사랑이 아니라면 연애를 지속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헤어짐을 고했다.
헤어진 뒤에 난 내게 큰 불신이 생겼다. 내가 가졌던 마음 중 가장 큰 마음이었는데, 내 마음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이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랑이 아무리 뇌의 호르몬 작용이라지만 그 유효기간을 넘기고도 사랑했던 내 마음은 무엇인가.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긴 하는 건가. 계속해서 생각했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증거들이 무수히 많은데 나는 영원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사랑에 관한 서적을 읽고, 뇌 과학자의 강의를 보고, Chat GPT와 대화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 누구보다 영원한 사랑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영원히 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있다는 걸 알았다. 모든 게 명쾌해졌다.
어쩌면 영원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이 사랑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후회는 없다.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영원이라는 불가능을 믿으면서 사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