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편이 귀엽습니다.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서 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 마>
라디오에서 들리는 익숙한 노래를 동시에 따라 부르고는 까르르 웃었다. 연애 초기는 상대가 숨만 쉬어도 좋을 때니까. “이 드라마 보려고 숙제 진짜 열심히 했어요. 오빠도 드라마 좋아했어요?”
잠깐의 침묵 끝에 전 애인이자 현 남편은 답했다. “드라마는 안 봤어요. 술집에 가도 당구장에 가도 이 노래만 나와서......”
“...... 양아치였어요?”
“성인이 술집에 가는 건 나쁜 짓이 아니에요.”
조용히 라디오를 껐다. 차라리 양아치였다고 하지.
우리는 열 살 차이 나는 부부이다. 생각해 보면 내 입장에서는 보통 손해가 아니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남편은 세 번의 연애를 했다. 우리가 미래를 약속할 경우 내 인생에 연애는 한 번뿐이다. 짝사랑과는 손을 잡지도, 포옹을 하지도, 결정적으로 입맞춤을 하지도 않는다. 이 말은 내 인생에서 이런 경험의 상대가 전 애인이자 현 남편이 처음일 것이고, 헤어지지 않는 한 마지막 상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친구들도 대체로 이런 이유로 반대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짝사랑을 쉰 적이 없었다. 고백은 없었다. 혼자 이별을 고하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줬다.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래야 더 애틋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이니까. 아니, 사실은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나의 외모, 장애, 부모님, 가정형편.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도 부끄러웠다. 마음을 들켜 상대가 알게 되는 게 범죄인 양 겁이 났다. 원래의 나는 최악이고, 그중 하나라도 들키면 버림받을 거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짝사랑은 나를 경멸하고, 그럼 난 그런 나를 더욱 혐오하는 엉망인 결과를 낳을 뿐이라 여겼으리라.
2002년이었다. 월드컵으로 세상은 미쳐있었다. 나도 미쳤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남편을 만났다. 예의 있고, 적당히 웃기고, 무엇보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다정한 예의와 배려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 포장해 주는 것 같았다.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이 남자를 놓치면 평생 그리워하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침없이 지저분하게 매달렸다. 월드컵 버프가 끝나고 또다시 자기혐오로 가득 찬 나는 결국 이 미친 짓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낸 마지막 용기는 그에게 구애를 그만두는 이유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의 사실에 가깝게 고백했다. 놀랍게도 그날 밤 우리는 첫 키스를 했다. 진짜 내가 미쳤지. 얼굴에 빠져서는.
남편은 한결같이 다정한 사람이다. 다만 정신연령이 나이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남편의 농담이 늘 재미있지는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그 농담에 피식거리는 내가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역시 얼굴에 미치면 답도 없지. 연애 11년, 결혼 생활 12년 해서 23년이다. 내 나이 기준 인생의 반 이상을 남편과 보냈다. 그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우리는 아직은 늘 손을 잡고 다니고, 서로를 귀엽다고 말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까마득하지만, 어제도 귀엽다는 말을 들었고, 오늘 아침에도 그가 귀여웠다.
내가 회사에서 깨졌을 때, 엄마랑 싸웠을 때, 심지어 내 잘못으로 상황이 나빠졌을 때도 남편은 네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고 한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었다. 그때 고백을 왜 거절했냐고. 처음엔 자기 스타일이 아니어서 거절했고, (못생겼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부터는 말할 때마다 너무 어른스러워서 싫었단다. 자기는 학력도 짧고 나이도 많은데 너랑 있으면 바보가 되었다고. 하지만 멋있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주먹을 쥐면 동그란 구슬동자가 되어서 반했다고도 덧붙였다. 내 주먹이 좀 귀엽긴 하다.
나는 사실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다. 작은 실수에도 관계가 망가질까 불안하다. 원인과 상관없이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를 탓하고 그로 인해 과거에 한 모든 실수까지 꺼내어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갈 때가 많다. 아직 그때의 내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친다. 이 관계가 망가진다고 해도 나는 무너질 일이 없고, 일이 잘못되어도 어쨌든 옳은 답을 찾을 사람이다. 아는 한 가장 다정한 어른이 인정한 좋은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 믿음과 지지는 얼마나 큰 용기를 내게 하는가. 용기 내서 연애를 시작한 2002년 그날이 확실한 증거이다.
사실 다정함의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마음이 아닐까. 이를테면, 거친 길을 걷는 누군가의 발끝에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우거나 길을 잃어 지친 사람에게 산책하는 귀여운 강아지를 만나게 하는 정도의 다정함을 지닌 사람이 되면 좋겠다. 꽃을 무심코 밟거나 하필 강아지가 똥을 싼대도 상관없다. 하찮지만 한결같은 다정함의 힘을 믿으니까.
아이유 콘서트 표 예매 실패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결연한 의지로 나는 연가를 내고 남편은 꾀병까지 부려 피시방에서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부부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우리 지은이 만나기(남편의 표현)’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우리의 플레이리스트는 상당 부분 겹친다. 노래를 들을 때 떠올리는 기억도 비슷하다. 다른 시간을 살아온 우리에게 생긴 공통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로에게 더 귀여워 보이기 위해 스스로에게 다정해진 마음도 있다. 안타깝게도 ‘질투’만은 극복할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