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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느림 Feb 23. 2021

혼자의 식탁

적당한 게 뭔가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 예를 들면, 맛있는 걸 눈 앞에 두고 참아보려 눈을 감아도 코가 제 기능을 해준 덕분에 결국 내 손엔 수저가 들려있다. 아마 애초에 참을 생각도 없었겠지만. 한동안 인터넷에서 다리 찢는 법을 찾아 열심히 연습했는데, 최선을 다해 벌려봐도 내 다리는 여전히 90도. 솔직히 이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라고 말하기엔 양심상 조금 부족하긴 하다. 그리고 겨울에 태어난 거랑 전혀 상관없이 추운 건 질색인데, 있는 대로 꽁꽁 싸매도 손 발은 항상 차가운 나에게 지인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가 봐"라며 다소 식상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위로의 말을 한다. 나름대로 반신욕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보고, 수면양말을 신으면서 손발 집중 공략을 해보지만, 별 짓 다 해봐도 추운 날 핫팩 없이 외출하면 손발을 잃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리고 하나 더. 먹고 싶은 게 한번 떠오르면 그걸 먹기 전까지 그 음식이 계속 생각난다. 보통 사람들은 한번 먹고 싶은 게 있어도 그 시기가 지나가면 잊히거나 다른 음식이 먹고 싶다던데, 식탐이 강한 건지 식욕이 왕성한 건지 먹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에 꽂힌 음식은 "돼지갈비찜"이었다. 거의 2~3주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 '사 먹어야지', '해 먹어야지'를 무한 반복하다가 운동 중에 부상을 입고 운동 금지 처방을 받았던 어느 날, 우울한 나를 달래줄 건 돼지갈비찜뿐이었다. 그냥 사 먹자니 동네 시장에서 2인분에 14,000원 정도. 딱 봐도 혼자 한 끼면 끝날 거 같은데 2인분이라니! 그렇다고 해 먹자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라서 미뤄왔는데, 이번엔 꼭 먹어버리기로 다짐하고 시장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1인분 같은 2인분 갈비찜을 파는 동네 시장의 한 국 가게. 시장 골목 초입의 정육점 입구에 "돼지갈비 2근 반에 만원"이라는 문구가 스치듯 보였지만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갈비찜만 없다니. 명절 연휴가 지나고 난 뒤라 지금은 없으니 이틀 뒤에 다시 오라는 국 가게 사장님의 안타까운 표정에 덩달아 비슷한 표정으로 아쉬움을 토로하고는 이건 해 먹을 운명이라며 스치듯 지나친 정육점을 떠올렸다.


우선 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대파 1단에 4800원? 이게 무슨 일인지 고작 세 알이 들어있는 양파도 6천 원이라니! 장바구니에 채소를 담자니 손이 후들거렸다. 인터넷 장바구니는 그렇게도 쉽게 채우던 나의 손에 들린 아날로그 장바구니의 그 물리적, 심리적인 무게는 이 시국을 반영하듯 새삼 만만치 않았다. 갈비찜 한 번에 2-3만 원은 나에게 사치였으니, 결국 할인 코너에 있던 갈비찜 양념 500g 한 병과 구색을 맞춰줄 파랗고 빨간 청양고추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정육점에서 세일 문구를 붙여 둔 고기는 냉동고기였다. 어차피 뭐든 사기만 하면 얼려버리는 자취생 신분이니 저렴한 냉동고기는 오히려 반갑다. 갈비찜용 냉동 돼지고기를 만 원어치 주문했다. 귀여운 정육점 청년의 조금 넘었는데 괜찮냐는 말에 야박하게 칼같이 맞춰달라고 하지 못하고 적당히 상술에 속아주면서 세 근정도를 받아 들었다. 어느 정도 나눠서 냉동실에 넣어 둘 생각이었던 이 많은 고기들은 손에 들어온 지 약 20분 만에 집에 있는 가장 큰 냄비에 모두 부어졌다. 냉동실에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두 번 요리할 자신은 더 없었고, 사실 그냥 많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핏물 따위 빼지 않았다. 그냥 정육점에서 얻은 월계수 잎을 넣고 한번 끓여 물을 버린 후 재료를 있는 그대로 다 때려 넣었다. 양념은 반통 조금 넘게 붓고, 청양고추 다섯 개를 꼭지만 따서 넣고, 먹다 남은 레드와인도 콸콸콸 정도 넣은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식은 대충 만들수록 맛있다. 역시 손맛이라며 조금 달지만 처음치고 만족스러운 돼지갈비찜이 완성됐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김치를 돌돌 말아 예쁘게 썰고, 뭔가 허전해서 김도 꺼냈다.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녹여 한상 차리고 나니 그럴싸한 식사가 완성됐다.


이렇게 매일 두 끼씩 나흘을 먹고 나서야 길고 긴 돼지갈비찜의 날이 끝났다. 너무 먹고 싶었고, 정말 맛있었지만 이제 한동안 돼지갈비는 생각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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