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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Sep 21. 2019

그래서, 나의 20대 끝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조금 미리하는 걱정과 위로


조금 미리하는 걱정과 위로

그래서, 나의 20대 끝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2019년 9월. 나는 여전히 떠나와 있다.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것이 없다. 샌드위치 한 조각에 5km는 거뜬히 걷던 체력은 정신력으로 바뀐 지 오래. 든든히 한 끼를 챙겨 먹어도 십리도 못가 발병이 나니 많은 계획들이 정적인 쪽으로 흘러가고, 멋대로 던져진 한마디에 날카롭게 반응하던 마음의 날은 나도 모르는 새 많이 닳은 모양인지 이제는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는 걸 넘어 종종 수긍을 한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그럴 수 있는 나이'의 끝자락에 서있는가 보다.



떠나기 위해 보낸 시간과 떠나온 시간,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 시간과 잊기 위해 보낸 시간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나의 20대를 가득 채워 어느덧 길고 긴 인생의 한 꼭지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다. 가만 보면 시간이란 녀석은 늘 개개인의 의지를 전혀 감안하지 않아 그 언젠가 꼭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분명 모두의 월요일은 느리게만 흘러갔을 텐데, 나는 어쩌다 앞자리가 바뀔 위기(?)에 처해 있느냔 말이다.



copyright 2019. 동경(insta@id1992) all rights reserved. [한국/서울]



사실 29살 마지막 밤의 압박감에 비해, 30살의 아침은 허무하리 만큼 다를 게 없는 것을 익히 들어 안다.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는 요즘 세상에 고작 서른이 뭐라고 그리 유난을 떠느냐 싶겠지만, 책에도 목차가 있듯 길고 긴 우리 인생에도 목차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여.



그래서, 나의 20대 끝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남은 것보다 없는 것을 먼저 생각해보자면, 차곡차곡 쌓인 합리화와 자기애로 똘똘 뭉친 나의 삶에는 (아직까지) 후회란 것이 없다. 나에게는 부모님을 선택할 권리는 없었으나 주어진 삶을 직접 그릴 자유는 있었기에 (감히) 질릴 만큼 여행도 하고, 책도 내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산 것 같다. 아마 10년 전으로 돌아가 20대의 시작선에 다시 설 기회를 준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다만, 후회가 없는 만큼 수중에 남겨진 돈도 없으니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니 신기하리만큼 주변에 온갖 사람들이 다 부러워지기 시작하는데, 이게 참 무서운 게 내가 그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자기애의 벽을 금방이라도 무너트릴 것 같은 힘이 있는 듯했다. 단적인 예로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나의 친구는 어느새 집을 사고, 그 집의 주차장엔 차가 있으며 안방엔 배우자가 있다. 그런데, 나는? 주변인들과 오직 경제적 능력을 두고 삶의 가치를 저울질하다 보면 이렇게 암울할 수가 없다.



copyright 2019. 동경(insta@id1992) all rights reserved. [한국/서울]



누군가와 법적으로 가까워질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내가, 평생을 혼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문득 눈 앞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그 아득함은 때때로 우울함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적잖은 밤을 그리 보내고 나니 나의 자기애를 지켜줄 하나의 방법(혹은 또 다른 합리화)을 찾았다.



게임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면, 나라는 사람의 캐릭터 A는 재력, 건강, 경험, 능력의 스킬 중 경험에 아주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인 캐릭터. 나는 10년이란 시간 동안 재력에만 몰두한 캐릭터 B의 금전적인 능력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반대로 B는 나의 풍부한 삶의 경험을 따라오기 힘들 것이다. 쉽게 캐릭터를 생성하고 리셋할 수 없을 뿐, 공을 들여 만든 캐릭터의 능력치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게임과 인생은 별반 다를 게 없다. A와 B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상대를 마주할 때마다 부러워할 테지만, 사실 레벨이 오를수록(나이가 들수록) 능력치를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순간과 기회는 우리에게 있었고 지금의 나의 삶은, 그리고 나의 모습은 그러한 내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20대의 끝에서, 인생의 한 목차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무엇이 남았든 간에 나는 그저 내 10년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나의 크고 작은 선택과, 그 선택에 의해 필연적으로 잇따라 오는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의 연속.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 선택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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