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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Feb 04. 2020

이별을 대하는 방법

잊고 싶은 것만 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잊고 싶은 것만 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별을 대하는 방법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갔을 때, 그와 더 이상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게 됐을 때, 그리고 가족보다 가까웠던 사람이 한순간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을 때처럼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늘 이별의 대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잊으려 애를 쓰곤 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잊고 싶은 기억’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을 대하는 방법은 잊는 것이 유일하다 생각했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와의 추억을 잊기 위해 함께한 모든 장소들을 피하고, 이별의 아픔을 마취하기 위해 그들로부터 받았던 무궁한 사랑과 충만한 감정들을 잊으려 했으며 더 나아가 있다가, 없음에서 오는 공허함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십수 년의 시간을 통째로 지우려 힘썼다.


그런데 언젠가 당장 덜 아프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나의 역사를 조금씩, 혹은 뭉텅이로 지워 도리어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정은 온데간데없고 결과만 남겨진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은 나를 꽤나 건조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던 것이다. 사실 건조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마음이 일렁일 때마다 도망가는 입맛을 구태여 찾을 필요도 없었고 그리움이란 감정을 마비시키기 위해 하릴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도 줄어들었다. 감정의 동요가 없다는 것은 때때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기로 한 사람이 아니던가. 과정을 잊은 사랑과 무미건조한 마음은 나에게 있어 축복이자 동시에 최고의 불행이었다. 펜을 쥐고 노트를 펴도 적어 내릴 것이 없었다. 모든 게 다 괜찮았으니까. ‘괜찮지 않음’을 병적으로 피해온 나는 작가로서 전혀 괜찮지 않았다.


텅 빈 노트를 한 반년쯤 바라보다 문득, 이제는 망각을 향해 걸어가지 않기로 했다. 말 그대로 그들이 내 삶에 나타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려 애쓰기보단(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인정하고 그 기억들로 하여금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마음속 기억의 방을 잘 정리해보기로 했다. 슬픔과 행복과 같은 감정의 결과는 별개로 좋았던 것은 언제고 또다시 꺼내 쓸 수 있게 가까운 곳에, 아팠던 것은 눈물이 마를 수 있게 마음 깊은 곳에 잘 넣어두고 이따금씩 꺼내어 변화를 지켜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칭찬이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응원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소리 내어해 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망각에 기대지 않을 것이며 나의 모든 감정과 기억 위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저 슬픈 만큼 슬퍼하고, 아픈 만큼 아파하며 그 모든 것이 내 삶 안에 차곡차곡 쌓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방법을 강구해볼 예정이다. 당장의 이별이 슬퍼 사랑을 잊다보면 나의 역사는 늘 처음에 머물러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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