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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Oct 02. 2017

검사받는 일기

솔직한 마음을 내뱉는 연습




특이하게(?) 나는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어른이 되고 싶다 생각한 적이 없다. 애초에 엄마, 아빠, 가족에 대한 동경도 없었거니와(소꿉놀이조차 지루했다.) 주위에 나의 성장을 촉진시킬만한 멋진 어른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한 번, 초등학교 졸업반 시절에 이제 중학생이 되면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살짝 설레긴 했다.



어렴풋하긴 해도 기억에 나는 일기를 제때 쓴 적이 없는데 솔직히 약 두 달 남짓의 방학 내내 일기를 매일 쓴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일기는 자고로 개학 일주일 전 두 달치를 몰아 쓰는 맛인데 나는 대부분 대충 발로 그린 그림일기로 때우거나, 밥 먹고 고모랑 남산에 다녀왔다는 꾸며낸 하루(가긴 갔는데 일기에 쓴 날엔 안 갔다)를 적거나, 어린이 시집을 그대로 베끼곤 했다. 










일기가 싫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일단 귀찮았고 일기를 검사받는 게 싫었다. 당시 성적표에 '보통'이 최고 등급인 줄 알았던 13세 미만의 동경이는 평소 구두약을 건드려본 적도 없지만 일기 속에서는 삼촌의 구두를 정기적으로 닦는 착한 조카였고 할아버지에게 대들지 않는 착한 손녀였다.



그렇다고 마냥 상상으로 가득 찬 일기는 아니었다. 하루는 할머니한테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가 밉다고 적었는데 선생님한테 불려 갔다. 그러면 안 된다고.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땐가 엄마가 찾아왔다고 적었는데 또 불려 갔다. 발표가 하고 싶어 질문에 대한 답을 교과서 빼곡히 채우고도 손 들 용기가 없어 주먹을 꽉 쥐고 말던 그 시절의 일기장은 그런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행복하기만 해야 했다. 독자가 존재하는 일기라니. 그런 사생활 침해가 또 없다.



하여간 나는 그렇게 꾸며낸 일기장을 6년이나 검사받은 후에야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일기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일기에 온전한 나를 담지 못했고 여전히 담지 않고 있다. 마치 누군가 들춰볼 것만 같달까.



그렇게 목매던 동그랗고 파란 도장처럼 찍어낸 과정을 겪어 어른이 된 나는 나름 솔직하다는 평을 받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극히 솔직할 수 있는 주제 안에서만 솔직한 나를 알지 못한다. 그저 재미없는 회사 상사의 유머에 안 웃을 배짱이 있을 뿐 정작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때때로 사랑하는 이에게 속을 모르겠단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나를.



그래서일까. 나는 이따금씩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도덕적으로 그른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도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어려운 이유 또한 가장 순수하다 표현되어야 할 그 시절부터 누군가에 의해 감정을 빼냈어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예컨대 나의 하루를 검사받던 일기장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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