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by 풍경달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도

모두다 나라네

당신에 대해선 이기적이고만 싶은 것도 나이고, 이런 나 때문에 부끄럽고 속상한 것도 나이고

북극곰이 걱정되는 것도 나이고, 일회용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도 나이고

외모만 꾸미는 것이 싫은 것도 나이고, 당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화장품을 고르는 것도 나이고

좁은 닭장에서 햇빛 한번 못 보는 닭에게 미안한 것도 나이고, 치킨을 좋아라하는 것도 나이고

나에게 주어진 일에 종종거리고 책임을 다하려는 것도 나이고, 며칠째 설거지를 쌓아놓고 늘어져있는 것도 나이고

동물농장을 보고 눈물 흘리는 것도 나이고, 남들 다 울 때 냉정해지는 것도 나이고

큰 소리로 웃고 수다떠는 것도 나이고, 낯선 사람들 틈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도 나이고


겁 많고 씩씩하고 차갑고 따뜻하고 비겁하고 용감하고 불안하고 든든하고 세심하고 둔감하고 기쁘고 슬프고 기억하고 잊혀지고 설레고 좌절하고 똑똑하고 멍청하고 이해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젊고 늙은 내가 나도 참 버거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웃으며 손 내미는 당신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내가

이 많은 나들을 모두 데리고 오늘도 조심조심 뚜벅뚜벅 가고 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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