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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Aug 10. 2024

최선을 다하기 싫었어요

그림책 <수수바의 여름 마당에서>를 읽고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최선'이란 말이 싫어졌다.('싫다'가 아니라 '싫어졌다')


  예로부터 타고난 재능이나 뒷받침해 주는 배경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미덕은 성실과 최선이었다. 그 '최선'이란 것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잘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내일을 꿈꾼다. 나 또한 그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다.


  학창 시절 엉덩이로 공부하는 대표적인 학생이었고, 독서실에서 제일 늦게 나오는 학생, 다 펼쳐보지도 않을 책들은 가방에 바리바리 넣고 다니며, 연습장 앞장에는 늘 진인사대천명을 주문처럼 써놓고, 다른 사람이 책을 3번 본다면 나는 4번 이상을 봐야 겨우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던.... 돌이켜보면 참 미련스럽게 공부하던 그런 학생이 나였다. 별 수 없지 않은가? 그것 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 만큼 융통성 있는 성격도 아니었으니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달리고 또 달리는 수밖에....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가질 때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최선을 다해 이 짧은 다리(진짜 짧다 T.T)로 삶의 허들을 쉴 새 없이 넘었다. 헥헥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하다 보면 모든 것이 능숙해지고 덜 힘들어질 거라고, 그래서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지치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계속해서 달리고 또 달렸었다.


 그러다 결국 꽈당 넘어졌다.


 세상의 허들에 넘어졌다기보다 꼬인 내 다리에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이다. 발목을 접질렸던가? 뼈라도 잘못된 걸까? 대자로 크게 넘어진 나는 손 하나 까닥하지 못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고, 다시 달리고 싶지 않았다. 숨차하며 헥헥거리고 싶지 않았다. 넘어진 내 옆으로 여전히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다리도 보고 싶지 않아 질끈 눈을 감았다. 하늘도, 트랙도, 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 내 뼈를 갈아 넣는, 그래서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라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야. 결국엔 이렇게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던 '최선'을 내 맘대로 미워하기 시작했다.('최선' 입장에서는 열성팬이 안티팬으로 돌아선 황당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그렇게 넘어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여전히 내 주위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보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화가 나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얼른 일어나 나도 그들처럼 다시 달려야 하나 고민하고 반복할 내가 싫었다. 그러면서도 외롭고 무서웠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기 싫었다. 나는 어딘가 단단히 고장이 났다.



  한참을 그렇게 혼자 누워있다 설핏 잠이 들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붕붕거리던 사방이 고요해지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새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조심스럽게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파란 하늘에 몽실몽실 떠있는 구름이 귀엽다. 살랑살랑 지나가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그 사이로 햇빛이 반짝인다.


 참 예쁘고 대견하네!


 그 순간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림책 <수수바의 여름 마당에서> 그리는 여름은 싱그러움이 넘쳐흘러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현실은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찜통더위지만,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한낮의 소나기를 듬뿍 맞고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쑥쑥, 높이높이, 마음대로 풀들이 자라는 여름! 가을 겨울이 오기 전에 자라고 싶은 만큼 양껏 커지고 자라는 풀들의 에너지가 넘쳐서 청량하게 노래한다. 시원한 이 비를 맞을 수 있을 때, 강렬한 햇빛을 받을 수 있을 때 더 많이 맞고, 더 많이 받고, 제 마음 가는 대로, 자라고 싶은 대로, 커지고 싶은 대로 그렇게 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계절을 최선을 다해 기쁘게 누리고 있다.


  풀들은,

  쑥쑥 자랄 수 있는 여름이 좋겠지.

  높이높이 커질 수 있는 여름이 좋겠지.

  마음대로 자랄 수 있는 여름이 좋겠지.


 그림책을 보는데 내 마음속에도 풀들이 일으키는 미묘한 바람이 불어왔다.

 '최선'만을 미덕이라 여기며 달리다가 제풀에 넘어진 내가 애꿎은 '최선'에게 화를 냈었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멈춰버린 나에게 '최선'이란, 그저 살을 깎아먹고 뼈를 갈아 넣으며, 끊임없이 애쓰고, 참을 없을 때까지 인내하고, 있는 힘없는 힘쥐어짜게 만들어 결국엔 화라락 재가 되어 사라지게 하는 일종의 사회적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했다. 무력한 개인이 하기 싫어도 수밖에 없는 희생을 '최선'이란 단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강요했다는 생각을 지울 없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랬던 내가 그림책 속 한여름의 풀들을 보면서 미워하고 밀쳐냈던 '최선'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최선'에는 마음대로, 마음껏이란 의미도 들어있구나.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 마음이 하고픈 만큼, 양껏, 씩씩하게, 쑥쑥 제 힘을 펼치는 것이구나.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내 의지대로 온전히 누리고, 자라고, 커지고, 즐기는 것이 '최선'의 또 다른 의미일 수 있겠구나.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 뜻대로 내 몸과 마음이 하고픈 대로 내 삶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신나고 일인지 이렇게도 느껴지는구나. 그렇게 최선을 다해 마음껏 자란 경험으로 풀들은 초록색 여름을 생각하며 추운 겨울 땅속에서 잘 버텨낼 수 있겠구나.

  

  그리고 또 여름이 오면, 쑥쑥 자라나겠지. 맘껏 자라나겠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무더운 여름날 파리 올림픽에서는 각국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경기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최선'은 어떤 의미일까? 땀 흘리고 긴장하고 숨을 고르고 헉헉대는 그 순간에 마음 가는 대로, 맘껏, 쑥쑥 준비한 기량을 펼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들의 삶에 빛나는 여름으로 기억되어 추운 겨울을 나고 새로운 여름에 또다시 마음 가는 대로, 맘껏 자라나기를 지구 반대편에서 기원한다.


  또한 이 기원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보내고 싶다. 당신과 나의 최선이 괴로움과 처절함이기보다는 부디 자유로움과 온전함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1. 이 글을 쓰는 동안 맴맴맴맴, 매~~~~ 앰! 매미가 쩌렁쩌렁 제 존재를 증명한다. 나도 이 여름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그러니 너도 주어진 너의 시간을 마음껏 살아 보라고! 귀청 떨어질 정도로 커다란 매미 소리가 싫지 않다. 매미도 태양도 열매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 여름, 그래 나도 기쁘게 마음껏 살아야겠다. 물론 너~~~ 무 더워서 마냥 기뻐할 순 없지만 이 시간도 지나가고 가을이 올 것이다.


2. 대학 때 친구는 키 작은 농구 선수가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골을 넣는 것보다 타고난 체격과 능력으로 키 큰 선수가 시원하게 덩크슛을 넣는 게 더 멋있다고 했다. 한창 '최선'에 빠져있던 나는 친구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때 내 친구는 혼자서 많이 힘들고 지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3. 그림책 <수수바의 여름 마당에서>는 조미자 님이 그리고 쓰셨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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