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일곱 번째 방. 외부인
9. 외부인
7월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친구는 비가 내리는 커다란 강남대로변에 양 손을 바지 주머니에 가볍게 꽂은 채 서 있었다. 내가 트렁크를 실은 택시를 타고 나타나자, 빌딩 밑에서 비를 피하고 서 있던 친구가 달려와 택시 창문 틈으로 집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그린 지도와 집 열쇠를 건네주며 말했다.
“얼굴이 그게 뭐고? 퇴근하자마자 갈 테니 집에 가서 따듯한 물로 씻고 쉬고 있어라.”
당시만해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친구가 새로 얻었다는 자취방을 친구가 그린 손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요 근래 그 어느 때 보다도 가벼웠다. 친구가 얻은 집이 꼭 내가 얻은 집 같았다. 친구의 방은 자양시장 안에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좁은 골목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택시 아저씨의 성화에 하는 수 없이 자양 시장 입구 큰 길가에 짐을 내렸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어둑어둑한 하늘 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가 그려준 지도대로 골목이 나타나질 않았다. 여기가 거기인가, 저기인가, 골목은 모두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근처 부동산에 지번을 물어 가까스로 친구의 집을 찾았다. 친구의 집은 4.5층 옥탑방이었다. 4층 위에 비스듬한 지붕을 덮어 올린 옥탑방. 4층은 아닌데 5층이라고 하면 불법이 되는, 기울어진 천장을 가진 방이었다. 일곱 번째 방에 짐을 풀었다. 여름 옷가지 몇 벌과 속옷, 양말이 전부였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방 한 켠에 이불을 깔고 누워 친구를 기다리며 한 숨 잤다. 밖으로 빗소리가 들리고, 아무도 없는 빈 방의 고요가 나를 다독였다. 이 방에서 넌 합격하고 나가는 거야. 다 잘 될거야. 암, 다 잘되고 말고.
퇴근하고 돌아온 친구의 손에는 통닭이 들려있었다. 이런 환대가, 이런 환영이! 나는 아주 오랜만에 큰 소리로 떠들며 친구와 하하호호 웃으며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친구가, 통닭이, 따듯한 방이, 뜨거운 물이, 아침 햇살이 있던 그 일곱 번째 방이 좋았다. 모든 것이 정말로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다음 날부터 친구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 또 다시 외부인의 신분이 돼 숨어들었다. 불안해할 틈도,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시험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한 번 청주에서 외부인이 돼 본적이 있던 터라, 고개를 숙이고 걷는 법,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지내는 법이 몸에 익어있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휴식을 취할 때에도 어떻게 하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는지 나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면 된다. 시선을 차단하면, 나는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내가 보이지 않으면 남도 내가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졌다. 공부는 그럭저럭 잘 돼갔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친구는 나에게 열쇠를 주지 않았다. 도서관은 친구의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기에, 이따금씩 들러 점심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열쇠가 없으니 답답했다. 딱히 친구가 없을 때에 친구의 방에 들어갈 일은 없었지만, 친구가 출근할 때 나와 친구가 퇴근할 때까지는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꼭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앉은 기분이었다. 두통이 심해 잠시 방에 가 눕고 싶을 때에도, 지갑을 놓고 나와 점심을 사 먹지 못할 때에도, 책을 잘못 가지고 나와 다시 책을 가지러 가야할 때에도 나는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친구의 화장대 서랍 속에는 방문 열쇠가 두세 개 더 들어있었다. 친구가 화장대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보이는 그 열쇠를 바라보면서, 서랍이 여닫히는 하루하루 만큼 친구가 멀게 느껴졌다. 가까운 사이였지만 차마 열쇠를 나 하나 주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친구가 내게서 멀어졌다기보다는, 아마도 내가 친구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잠자던 자존심이 눈을 뜨자 친구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미안해지기 시작하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불편해지기 시작하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눈치를 보기 시작하자, 그러자 점점 잠이 들기 어려워졌다. 친구의 방은 4층 위 옥상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ㄱ자 형태의 방이었다. 친구는 저쪽 창문 앞에 침대와 화장대 책상을 놓고 생활하고 있었고, 나는 이쪽 창문 밑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 아래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친구가 불을 끄면 나는 자야했다. 이불 속에 누워, 서로 잘 자라 인사를 하고나면, 정적이 흐르는데 그 정적이 못 견디게 불편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뜨면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다시 사물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아직 잠자고 싶지 않은 나는 뜬 눈으로 기울어진 천장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싱크대며 화장실 문, 창문, 벽지, 현관문 등을 쳐다보기도 했고, 색색 소리를 내며 잠이 든 친구의 숨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정확히 7월 14일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친구가 출근하기에 앞서 방을 나서고 있었다. 친구의 얼굴을 보는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친구의 집 4.5층 계단을 내려와 평소대로 자양시장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문 닫힌 상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 아침이었다. 늘어선 상점들의 닫힌 유리문으로 걸어가는 내 모습이 보이는데 걸음걸이가 굉장히 조심스러워보였다. 보는 이도, 깨울 이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내 마음이 그랬던 것이었겠지. 문득 서글퍼졌다. 건대입구역을 지나 도서관으로 들어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는데 오늘은 꼼짝없이 도서관 안에서 공부만 실컷 해야겠구나. 내심 비를 반겼다. 그러고나서 두 세 시간쯤 흘렀을까. 열람실 안으로 세 명의 대학생이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학생증 검사를 하겠습니다. 외부인은 나가주십시오.”
외부인은 나가주십시오. 그 소리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더니 의자 밑에서 헐떡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세 명의 총학생회 소속 간부 학생들은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걸어들어오며 학생들이 책상 위로 내미는 학생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서히 목이 조여오는 것처럼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지금 일어서서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나갈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입구에도 간부 학생 한 명이 서서 나가는 사람의 학생증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군사정권 시대에 신분을 들킬까봐 노심초사하는 프락치가 된 기분이었다. 그 몇 분의 시간은 마치 몇 시간처럼 느리고 길게 다가와 내 온 몸의 세포를 정지시켰다. 이윽고 간부 학생이 내 앞에 섰다. 잠시 기다리는 듯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작아지고 또 작아져 조그만 점이 돼 가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점이었으면, 차라리 내가 조그만 공벌레였으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간부 학생은 자기가 오히려 더 미안해하며 학생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가까스로 소리 내어 “학생증이 없어요,”라고 말했고, 간부 학생은 뒤이어, “아, 학생증 안 가져오셨어요?” 라고 의외로 다정하게 물었다. 아마도 내 표정이 겁을 집어먹은 아이의 표정이었기에, 안쓰러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예전의 나였다면, 작아지고 또 작아져, 조심하고 또 조심해 자신의 존재를 없애버리기에 익숙해져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배짱좋게, 학생증을 집에다 두고 왔다고 당당하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작아져있었다. 나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외부인이라서요.”
그 열람실에서 외부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미칠 것 같았다. 간부 학생도 당황한 눈치였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대충 둘러댔어도 됐을텐데, 내가 다 미안하네요.” 그런 표정이었다.
“죄송하지만 퇴실해주셔야겠습니다.”
그 간부학생은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웃으며, “아 네. 지금 바로 나갈게요.”라고 말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행동이었다.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당신이 지금 나보고 여기서 나가라고 해도 나는 갈 데가 천지에 널렸다는 듯이.
무슨 정신으로 짐을 챙겨 그 자리를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독서대며, 두꺼운 수험서, 방석, 물통, 연필꽂이, 온갖 공부살림을 지고 나오니 한 짐이었다. 열람실 밖으로 나오니, 나와 같은 신세의 초라한 행색의 무직자들이 여러 명 서성대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떤 장수생은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뻐끔뻐끔 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아 재수없게 오늘 학생증 검사를 하잖아, 씨팔, 재수없게”하고 욕을 섞어가며 하소연을 했다. 나도 그들 틈에 서서 멍하니 내리는 빗줄기를 한참 바라봤다. 우산도 없었고, 우산이 있다한들 우산을 들 손도 없었다. 7월인데도 태풍이 오려는지 바람이 많이 불고 비까지 내려 날씨가 꽤 쌀쌀했다. 친구의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간다한들 열쇠가 없으니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비바람이 불고, 날은 춥고, 도서관으로도 친구의 집으로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그 날은 핸드폰까지 친구의 방에 두고 나왔다. 한 30분쯤 서 있었을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너무 주눅들어 차마 고개를 들 엄두조차 못 내고 짱박혀 있던 나의 자아가 마지막 힘을 다해 빼꼼이 고개를 내밀었다. 더 이상은 그렇게 외부인으로 숨어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초라해도 난 주인공이고 싶지, 눈치 보는 더부살이 엑스트라 역할은 싫었다. 근처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의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114 안내를 받아 친구의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이름을 대고 바꿔달라고 했다. 사무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바꿔 받다가 송신인이 나임을 알고 놀라는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야, 나 오늘 나갈게. 짐 빼게 열쇠 좀 주라.”
그렇게 친구에게 열쇠를 달라고 말했다. 자존심은 상하지 않았다. 나는 당당히 나갈 거기에. 친구의 회사 앞으로 가 열쇠를 받아가지고는 짐을 챙겨 나갈 셈이었다. 친구는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주면 안되겠느냐고, 최대한 빨리 퇴근하고 가겠다고 했지만, 친구가 올 때까지 그 짐을 들고 마땅히 있을 곳도 없었을 뿐더러, 그러기도 싫었다. 하지만 굵어진 빗줄기를 철철 맞으며 앞뒤로 책을 지고 캠퍼스를 나가는 길은 처량했다. 지하철이 아닌 택시를 잡아탔다. 비가 내려 도로가 복잡했다. 미터기는 속절없이 올라갔지만 나는 오랜만에 속으로 배짱을 부려봤다. 그깟 택시비, 그깟 택시비.
친구는 일곱 번째 방으로 찾아왔던 첫째 날처럼, 회사 건물 밑에서 비를 피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밀린 탓에 공중전화로 약속했던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었는데 내가 연락할 핸드폰까지 놓고 나온 탓에 회사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짜증과 미안함이 뒤섞인 얼굴로 열쇠를 건네줬다. 열쇠를 진작 주지 않아 무거운 짐을 들고 회사 앞까지 찾아온 나에게 차마 화를 내지는 못했다. 나는 짐을 뺀 후 열쇠는 집 앞 화분 밑에다가 넣어두마, 얘길 하고, 택시 창문 너머로 친구와 작별했다. 친구는 이렇게 가서 어떻게 하냐고 했다. 나는 “이렇게 왔으니 이렇게 가는 거지” 하고 웃어 보이며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려 안간힘을 썼다. 택시를 돌려 일곱 번째 방을 향해 가며 창밖을 내다보는데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나대신 울어주는 것처럼, 하늘은 속이 시원하게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