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섯 번째 방. 등이 구부정하고 딱딱한 까만 벌레의 안녕.
8. 여섯 번째 방. 등이 구부정하고 딱딱한 까만 벌레의 안녕.
여섯 번째 방에는 입이 튀어나온 여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박스 2개와 트렁크 1개를 들고 나타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만치서 나를 발견하더니 훽 뒤돌아 걸었다. 동생은 꼬리를 자르듯 나를 저만치 앞서 걸어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동생을 놓칠세라 쭐래쭐래 따라가며, 무직의 초라한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생각했다. 잘.못.왔.다.고. 하지만 이 곳 말고 달리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갈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험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어쩌란 말이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동생을 따라가던 그 때, 나는 이미 다 컸으니 눈물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때, 나는 겨우 스물 다섯, 동생은 스물 둘이었다.(그 어리고 가여웠던 나와 동생을 한 번 다독여준다.)
동생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초라함을, 자신이 있던 곳의 궁색함을, 자신이 자라난 곳에서부터 불어오는 불화와 불안의 공기를. 그러니 버젓이 온갖 초라함으로 무장한, 길을 잘못 들어서 되돌아가지도 빠져나가지도 못하는 고장난 자동차같은 언니가, 친구와 꿈과 낭만이 가득한 자신의 대학 캠퍼스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싫었을까. 얼마나 내가 미웠을까. 나는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 동생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새도 없이 미안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나는 동생의 자취방이었던 그 여섯 번째 방, 보배빌라 203호에서 내내 모자를 벗지 않았다.
시험을 2달 앞두고 동생이 다니는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쓰여있는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쓰고 있던 모자를 더 깊게 푹 눌러썼다. 어쩌다가라도 동생을 마주칠까봐, 마주치면 알은체를 하기도 안하기도 그래서, 모두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모두가 ‘저 사람은 누구지? 못 보던 사람인데?’ 하는 그 눈길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내 몸뚱아리에 달린 수천 개의 귀가 그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아침에 동생이 일어나기 전에 방을 나가 동생이 잠들면 돌아왔다. 동생이 일찍 나가는 날에는 동생이 나갈 때까지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동생에게 미안해서, 동생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땅만 보고 걸으며 혼자 밥 먹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쉬던 날들이었다. 배가 고파도 사람을 맞추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밥 때가 지나가길 기다려 도서관에 달린 구내식당에 가곤했다. 스무 살 혹은 스물 두 살의 대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수다와 웃음이 이어지는 여름날의 시냇물같은 행복한 소리들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밥을 삼키면 왠지 목이 메어오곤 했었다. 나는 점점 등이 구부정하고 딱딱한 까만 벌레가 돼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발자국 소리를 내선 안되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다녀선 안 되고,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되고, 최대한 보이지 않게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동생의 생활 반경 안에 절대로 들어가는 안됐다. 나는 조용히 상처받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동생은 종종 베개를 들고 옆방에 있는 친구네 집에 가서 잠을 자고오곤 했다. 그 밤에 나는 혹시 동생이 수다를 떨다 밤 늦게라도 방으로 돌아오지 않을까해 잠에 잘 들지 못했다. 눈을 한참 감았다뜨면 깊은 밤인데도 방이 훤했다. 달빛이, 넘실넘실 노란빛이 보배빌라 203호 베란다 가득했다. 나는 그 달빛을 보며 주루룩, 눈물을 흘리곤 했다. 마음이 달빛처럼 넘쳐흘렀다. 나도 그렇게 그냥 어디로든 흘러가고 싶었다. 어릴 적 읽었던 빨간머리 앤이 작은 배를 타고 누워 강물을 따라 넘실넘실 흘러갔듯이, 나도 그렇게 몸을 맡기고 어디로든 영원히 흘러가고 싶었던 그 밤들.
너무 외로워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그 밤에, 또 그 낮에, 나는 콜라 한 캔을 사 마시곤 했다. 달고 톡 쏘는 청량감이 ‘난 아직 살아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콜라 한 캔을 마시고 나면 너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했다.
“나 사랑해?”
“공부 안하니?”
“나 사랑하냐고.”
“왜 또 그래. 공부 안하니?”
“나 사랑하냐고 묻잖아.”
“사랑하지. 그러니까 가서 빨리 공부해. 그래야 우리 빨리 만나지.”
너에게 그 모든 말들을 할 수가 없었다.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밑도 끝도없이 자꾸만 나를 사랑하냐고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 내가 하고 싶었던 유일한 말, 내가 듣고 싶었던 유일한 말은 ‘사랑’이었다. 나는 그 말에 겨우 매달려 하루하루 연명하듯 버텼던 것인데, 아무 영문도 모르는 너는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나를 걱정하며, 제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사랑하냐는 물음에 공부하라는 답, 그 말이 곧 사랑한다는 말일 거라며 나는 나를 다독였다. 너는 나를 사랑한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생이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말했다.
“언니, 언니, 언니!”
동생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것 같았다.
“7월 1일부터 도서관 공사한대!”
나를 그토록 부르며 달려온 동생은 그렇게 말했다. 도서관 공사한다고. 그 말은 즉 나는 더 이상 그 도서관에 다닐 수 없다는 말, 내가 일곱 번째 방을 찾아야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도서관 공사를 시작하기 전날 밤, 나는 도서관 책상 한 구석에 쌓아둔 수험서들을 한 짐 지고 털레털레 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노란 빛이 나의 왼발을 비추고 있었다. 가방에 책을 한 짐 지고, 두 손에도 책이며 독서대며 방석 같은 짐들을 담은 커다란 비닐 백을 들고 걸어가는 내 등 뒤를 달빛이 비춰주었다. 그대로 그림자가 된 그 달빛은 내 눈앞에서 계속 나를 따라왔다. 동생의 방을 올려다보니 불이 켜져 있었다. 선뜻 들어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나는 청주교대 캠퍼스에서 동생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는 벤치의자에 주저 앉았다. 의자 앞에는 작은 슈퍼가 있었다. 언제나 불이 켜져있는 슈퍼였는데 항상 학생들이 붐벼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던 슈퍼였다. 그 슈퍼에 들어가 맥주 두 캔을 샀다. 앞으로는 캠퍼스가 보이고 뒤로는 동생의 방이 놓여있던 그 의자 위에 책가방과 잡동사니가 든 비닐 백을 내려놓고 잠시 앉았다. 맥주 한 캔을 따는데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마치 우주 전체로 울려퍼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맥주를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맥주의 쌉싸름한 청량감이 나를 위로했다. 나는 아마도 무표정하게 앉아있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더 했다가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에, 악착같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당장 내일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다섯 번째 방으로는 되돌아갈 수가 없고, 네 번째 방으로도, 세 번째 방으로도, 두 번째 방으로도, 첫 번째 방으로도 돌아갈 수가 없는데. 일곱 번째 방을 찾아야만 하는데, 핸드폰을 열어 연락처 목록을 아무리 여러 번 들여다보아도, 전화걸 곳도 내가 갈 곳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망연자실.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며 두 번째 맥주 캔을 따는데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한 줄기가, 그 다음에 또 한 줄기가, 그러다가 여러 줄기가 마치 미역줄기처럼 눈에서 뻗어 나와 내 얼굴에 긴 발을 드리우듯 쉼 없이 흘러내렸다. 6월이었는데 반바지를 입은 다리가 시렸다. 시간은 11시를 넘겨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무척, 그보다 더 외로울 수 없게 외로웠지만 또 동시에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이곳에 나를 보고 알은체를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안심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어렵게, 어렵게, 가장 친하다고 여기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시험을 치를 때까지 두 달만 너의 집에서 지내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다. 내 목소리를 개미목소리처럼 작았다. 나는 갑 앞에 선처를 바라며 서 있는 허리 구부정한 을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는 대번에 말했다.
“친구야, 뭘 고민하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연락하지 그랬나. 당장 내일 우리 집으로 와라. 차비는 있나.”
친구가 있다는 것이,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등을 기대고 앉을 친구가 있다는 것이, 엄마보다 아빠보다 동생보다 더 가깝게 나를 지탱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그날 밤 모처럼 단잠을 잤다.
여섯 번째 방에서는 한 달 남짓 머물렀다. 일곱 번째 방에서는 두 달이 예정돼 있었다. 두 달 후 일은 그 때 생각하기로 마음을 다독이며 불안의 꼬리를 자르고 또 잘라냈다.
친구의 집으로 책이 든 박스 2개를 택배로 보내고, 옷가지를 담은 트렁크를 들고 동생의 방을 나섰다. 버스를 타려면 동생의 학교 캠퍼tm를 가로질러 나가야 했다. 인적이 뜸한 아침 일찍 나온다고 나왔는데도 이미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덜덜덜덜 트렁크 바퀴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동생은 트렁크를 끌고 가는 내 뒤를 쭐래쭐래 따라왔다.
“뭐하러 나와. 안 나와도 돼. 친구들이 보면 어쩌려고 해.”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얼른 들어가. 친구들이 보면 어떡해. 얼른 들어가.”
동생에게 창피를 주기 싫은 언니 마음에 동생에게 들어가라고 채근하는데 동생이 말했다.
“언니 미안해…….”
“그런 소리 하지 말아. 언니가 미안하지 네가 왜 미안해. 언니 걱정하지 말아. 이번에 합격할거니까.”
울먹이는 동생에게 웃어보였다. 걱정하지 말아, 이번에 합격할거니까.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었다. 걱정하지 말아, 이번에 정말 합격할거니까. 그럼 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버스가 왔다. 청주시외버스터미널, 행선지를 확인하고 무거운 트렁크를 버스에 끌어올려 싣고 내 몸도 실었다. 창밖으로 6월의 청주교대가, 나의 스물다섯 가장 외로웠던 한 때를 보냈던 교정의 푸른 나무들이 떠나가는 외부인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안녕.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6월이여. 안녕!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