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빠, 저 좀 살려주세요. 저는 날고싶다고요.
7. 아빠, 저 좀 살려주세요. 저는 날고싶다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옮기 두 번째 방에서부터 나의 인생은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고공비행하던 비행기 한 대가 이상한 기류에 휩쓸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추락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마음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하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한다면 금방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거라 믿었었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나는 공부보다는 연애가 하고 싶어 엉덩이 들썩거렸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더욱 연애에 매달렸다. 급기야 나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두 번 째 방에서 나와 세 번째 방으로 이사를 했다. 세 번째 방은 학교 앞 하숙방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나는 공무원 시험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너를 더 자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네가 살고 있는 똑같은 하숙집에 방을 얻었다.
너는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나를 보고 불안해했다. 그래선 안 된다고, 조금 더 이성적으로 너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나를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하지만 나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너는 함께 있어서는 도저히 합격을 할 수가 없을 것이라며.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너의 고향으로 내려갔다. 덩그마니 혼자 남은 나는 며칠 밤을 찔찔 울다 깨달았다. 너를 다시 만나는 길은 빨리 시험에 합격하는 길 뿐이라는 것을.
나는 짐을 쌌다. 네가 없는 하숙집에, 네가 없는 서울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었다. 네 번째 이사. 나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네 번 째 방에서 나는 나의 인생의 두 번째 플롯 포인트를 마주치게 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으니, 고향 집에서 그렇게 몇 달씩 머무르는 것은 7년 만의 일이었다. 7년 만에 돌아간 집에서, 나는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불화의 온상을 다시 마주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짓누르던, 내가 언제나 숨 쉬던 그 불화의 공기. 엄마와 아빠의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과 아빠의 횡포와 엄마의 눈물과 동생의 주눅 든 표정. 차마 울지 못하는 겁 먹은 눈동자 같은 것들. 나의 정신을 산란하게 하거나 혹은 나의 머리를 윙윙거리게 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으면 눈인지 머릿속인지가 노란 오줌같이 찝찝한 액체가 가득 찬 것처럼 불쾌해 벗어나고 싶은 느낌. 그 불화의 공기.
아빠는 며칠 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은 한껏 신경이 곤두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풍선처럼 예민했고, 어쩌다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온 다음 날은 아빠를 출근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고등학교에 막 진학한 막냇동생은 그 예쁘던 얼굴에 근심과 수심과 주눅을 가득담은 채 점점 어두워졌고, 그런 그늘을 동생의 얼굴에서 볼 때마다 나는 숨이 막혔다.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너는 집에 내려가 열심히 공부해 이번 연도에 꼭 합격하자며, 그럼 우린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약속을 내게 심어주고 고향에 내려갔는데, 어쩐지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너와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나는 자꾸만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면 받는 네가 있어, 그런 하루하루를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 날 나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빠는 며칠 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엄마는 지칠 대로 지쳐 자리에 누워만 있었다. 매일 밤 아빠가 들어올까 안 들어올까,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내일은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 불안해하던 어느 밤에 나는 강시처럼 눈을 뜨고 눈에 보이는 대로 짐을 꾸렸다. 어디든 불화의 곰팡이가 가득 핀 이 집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행선지도 없이 짐을 싸놓고 어디로 가야할 지 생각해봤다. 아마 여동생이라면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청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여동생의 작은 자취방에서라면 나는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달 밖에 안 남았으니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내겐 남아있지 않았다.
박스에 테이프를 붙여 공부할 책들을 먼저 챙겨 넣고, 눈에 보이는 옷가지 아무것이나 트렁크에 쑤셔 넣었다. 짐은 책이 든 박스 2개와 옷가지를 넣은 트렁크 1개가 전부였다. 거실 한 켠에 짐 3개를 내놓고 나서야 나는 잠 들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이사를 앞둔 그 아침, 며칠 동안 집을 비워 온 집구석을 불안의 늪으로 만들어버린 아빠가 나타나 말했다.
“저 짐은 뭐냐?”
“나가려고요.”
“왜 나가는데?”
“몰라서 물어보세요?”
아빠는 한숨을 내쉬더니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아빠가 잘 할게.”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되겠나?”
“이게 까지 드린 기회만 해도 충분하실텐데요?”
아빠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땅바닥을 보며 말했다.
“아빠를 한 번만 살려주라.”
“아빠,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아빠는 날 더러 살려달라고 했다.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누가 누굴 보고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인지, 누가 누굴 보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인지. 기회를 얻고 싶은 건, 살고 싶은 건 나였다. 금방 오겠다는 그 말을 믿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언제나 오지 않았던 아빠. 그러다가 한밤 중 도깨비처럼 나타나서 엄마와 나와 동생을 괴롭히던 아빠. 기다림과 체념, 배신과 불신과 거짓말과 뻔뻔함과 또 더 많은 나쁜 것들,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자신의 현재와 미래, 엄마와 나와 동생들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모두 꿀꺽 삼켜버리는 아빠.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는 날고 싶다고요.
아빠에게 동생이 있는 청주로 데려달라고 했다. 김천에서 청주로 가는 2시간 동안 아빠와 나는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화가 난 듯, 잠시도 쉬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 시속 140킬로미터는 족히 넘는 과속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나에게, 또 자신에게, 세상에게 화를 내며 질주했다. 나는 무서웠고, 분했고, 억울했고, 슬펐고, 서러웠지만 울지 않으려 뒷문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오줌이 마려웠다. 차를 세워달라고, 좀 천천히 가자고, 무섭다고,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대신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시는, 두 번 다시는 이 집으로, 이 방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눈물이 떨어질까봐 자꾸만 주먹을 꽉 쥐며.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두 번째 플롯포인트를 화가 난 듯 지나쳐버렸다. 그때 아빠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줬더라면, 아빠는 살 수 있었을까. 내가 아빠에게 기회를 줬다는 그 힘으로, 그 조그만 기다림의 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