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15.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는 점점 공부하는 눈과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예민한 귀만 있는 사지 절단된 벌레가 돼 가는 기분이었다. 등은 구부정하고 딱딱한 껍데기처럼 굳어갔고, 늘 앉아있기만 한 허벅지와 종아리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마비돼가고 있었다.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머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신체부위는 도태돼갔다. 모든 에너지는 오로지 눈으로 읽고 머리로 외우고 귀로 듣는 데에만 쓰여야 했으므로, 얼굴로 느껴지는 공기의 감촉이라든지, 사랑하는 너를 만나고 싶고 얼굴 부비고 싶은 마음이라든지, 친구를 만나 정답게 이야기 나누고 싶은 수다에의 욕구라든지, 하다못해 잠시 거리를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나뭇잎이 연한 연두에서 짙은 초록으로, 다시 붉은 단풍에서 결국 고개를 떨구고야 마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일은 용납될 수 없었다. 점점 머리통과 그 머리통을 지탱하기 위한 상반신만 남아있는 새로운 벌레처럼, 나는 매일 형광등 불빛 아래 몸을 굳혀가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면 어떤 때에는 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다. 귀청이 터져라 매미가 울었다. 7년을 땅에서 기다리고 인내해 마침내 뭍으로 나온 매미는 푸른 나무 아래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하며 사랑할 또 다른 매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7년의 밤을 견디어, 7년의 시간을 인내하여, 마침내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나왔노라, 매미는 파랗게 높아져 가는 여름하늘을 향해 목숨을 다해 노래하는 중이었다. 그런 매미가 어쩌자고, 태양빛에 몸을 쪼이고 있어야 할 매미가 어쩌자고, 이 독서실 안 형광등 불빛 안으로 들어와 우는 것이냐.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저녁, 야간자율학습시간에 교실 안으로 잘못 날아들어 온 매미는 형광등 불빛 아래 뒤집어져 그렇게 울었었다. 그 울음은 고3을 앞둔 우리 같은 학생들에겐 용납될 수 없는 울음이었다. 매미는 점점 더 크게 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매미의 울음이 뚝 그쳤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누가 죽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소리가 멈춘 순간 구부정하게 공부를 하던 우리들의 등도 멈칫 멈췄다. 우리는 모두 알 수 있었다. 매미가 죽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누구도 매미를 왜 죽였냐고,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고 말하지 않았다. 매미는 우리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 죽는 순간까지도 몸부림쳤을 것이다.
열 번째 방으로 이사 온 후 나는 종종 그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특히 이렇게 고요하다못해 고독한 침묵의 공간에 혼자 들어앉아있을 때에는 더욱 크게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매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울어댔다.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나는 머리가 윙윙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속이 울렁거려 그 자리에 앉아있기가 거북해졌다. 매미는 자꾸만 더 크게 울며, 나에게 다그쳤다.
"그때 네가 날 죽였지, 그때 죽어가는 나를 너는 그냥 바라만 봤지, 너는 다 알고 있었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눈을 감았지. 7년을 참았는데, 7년을 기다렸는데, 길을 한 번 잘못 들어섰다는 이유로 나는 그렇게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울다 죽어야 했어. 그날 저녁 나의 잘못된 단 한 번의 선택은 나의 운명을 갈라놓았지. 자 이제 네 차례야. 그날,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날 저녁 너는 길을 잘 못 들어섰지. 또 어떤 날, 살려달라는 아빠의 말을 외면하고 집을 떠났던 날 너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 이미 잘못 들어선 길, 돌아갈 수도 없는 길, 돌아갈 곳도 없는 길 위에서, 넌 울지도 않고 서 있네? 난 적어도, 최선을 다해,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힘을 다해 울기라도 했어. 죽기 직전까지도 살아있었다고. 그런데 넌 뭐지? 산 송장 같네. 왜 울지도 않고 서 있는거지? 이 봐, 살아는 있는건가. 자, 또 선택해봐. 이제 무얼 선택할거지?"
매미가 자꾸만 다그치면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1998년의 매미는 2007년의 나에게 이제 무엇을 선택할거냐고 물었다. 과거의 유령 같은 목소리는 매미의 울음소리와 뒤섞여 나를 자꾸만 몰아세웠다. 나는 갈 수 있는 길이라곤 내 몸뚱이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어둡고 담장 높은 이 골목길뿐인데, 자꾸 무얼 선택하라고 하느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모두 다 지나갔다고, 탈 수 있는 버스는 놓쳐버렸고, 날은 저물었으며, 이제 나는 이 길을 따라 걷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그저 걸을 뿐이라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고, 너무 오래 걷다보니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이 어디인지,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만큼 더 가야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그저 살아가야 하니까,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이 길이 무슨 길인지도 모르고 그냥 걸어갈 뿐이라고. 매미에게 답했다. 더 이상 내게 남은 선택지 같은 것은 없다고. 시험은 모두 끝났고, 나는 모든 시험에 떨어진 낙오자라고.
열 번째 방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어두웠다. 하루 종일 매미와 씨름을 하면서도 나는 독서실 의자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앉은 채로 그 모든 것을 견디어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를, 실패에 너무 익숙해져 합격이 아니라 불합격을 위해 공부하는 장수생의 절망을,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생활고를,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부재감을, 친구 하나 없는 외로움을, 거울을 볼 수가 없는 자괴감을, 그 자괴감을 이기려 애써 웃음지어 보는 희미한 자존감을, 그래, 삶의 무게 같은 것들을.
열 번째 방에서 나는 여러 종류의 시험을 닥치는 대로 치렀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갖고 시험을 치렀다. 1년에 일고여덟 개의 공무원 시험이 시행됐지만 나는 그 중 어느 하나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합격선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시험을 거듭할수록 점수는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었다. 그 쯤 되자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마라톤 정신으로, 혹은 출석도장 찍으러 다니는 것처럼 시험장에 다녔다.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나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험이 없으면 나는 살아갈 힘이 없었다. 합격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했는데, 나는 죽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다.
죽지 않으려 공부를 하다보니, 자꾸만 죽어가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7년 겨울이었다. 공부를 시작한지 3년이 지나는 새 나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밤 열두시 독서실 문을 닫을 때까지 나는 독서실 의자에 악착같이 버티고 앉아 죽음에 맞섰지만, 열 번째 방으로 돌아가는 그 어두운 길을 걸을 때마다 곧잘 죽음과 맞닥뜨리곤 했다. 독서실을 나와 생과일 주스를 파는 가게 옆 작은 언덕길로 올라서면 오른편에 허름한 복사집이 있었다. 그 복사집 앞에는 조그만 놀이터가 있었고, 그 위로 조금 더 비탈진 길이 이어졌는데, 그곳에는 작은 포장마차가 있었다. 그리고 또 독서실과 고시원과 원룸이 이어진 길이 나오고, 조금 더 언덕길을 올라가면 세탁소가 나왔고, 그리고 어둠. 그 어둠을 뚫고 또 한참을 더 올라가면, 그 녹두거리 끝자락에 나의 열 번째 방이 있었다. 나팔꽃마저 시들어버린,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그 불 꺼진 방에 들어서서,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우두커니 앉아있곤 했다. 어둠에 익숙했고, 움직이지 않는 것에 익숙했고, 말하지 않는 것, 웃지 않는 것에 익숙했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어느 날 이런 소식이 들려왔다.
"누가 누가 자살했대. 시험을 치고 와 방에 있다가, 그러다 죽었대."
누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누가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 곳에 있는 장수생이라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시험을 치고 온 후 찾아온 절망감 때문에 충동적으로 죽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매일 매일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으며, 그가 누워 잠자고 일어나던 바로 그 방에서, 점점 자신을 옥죄어오던 죽음과 마지막 결투를 벌이다 지고 말았다는 것을. 모두들 남의 일인 양 눈살을 찌푸리며 흘려 말했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의 흔들림을, 불안감을, 밤마다 찾아오는 죽음에의 유혹을. 모든 것을 제발 끝내고 싶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으로 가고 싶은, 어둡고 진한 그 유혹을.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그 열 번째 방에서보다 더 죽음에 가깝게 다가섰던 적은 아직 없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썼다. 밤마다 그 방에 누워, 내가 죽어야 할 이유를 생각해가면서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니, 차라리 죽어야 할 이유를 생각해보자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적어도 나는 살아있을 테니까. 그러다보면 어느새 나는 잠들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눈을 뜨면,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다시 아침을 맞이할 테니까.
죽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다 잠들고, 아침에 눈을 떠 다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지옥 같은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열 번째 방으로 향하는 어두운 골목길 때문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냈다. 그렇게 나는 가까스로, 아주 가까스로 죽음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열 번째 방을 나와 열한 번째 방으로 떠났다. 좀 더 밝고 환하며,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거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