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열 번 째방. 새들도 날아가고 호박꽃도 떨어지는 날들.
14. 열 번 째방. 새들도 날아가고 호박꽃도 떨어지는 날들.
그 곳엔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 회색빛 거리가 곧 신발이 되고 신발이 곧 다리가 되고, 다리가 곧 몸뚱이가 되고, 몸뚱이가 곧 얼굴이 되어 머리부터 발 끝, 땅 끝까지 회색인 사람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는 거리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언제나 거리를 왔다갔다 끊이지 않는 걸음을 옮기며 종종거리고 있었다. 독서실에서 고시식당으로, 고시식당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다시 스터디룸으로, 스터디룸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다시 독서실로, 독서실에서 다시 고시식당으로, 끊임없이 이어진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 거리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추리닝을 입었고, 슬리퍼를 신었다. 거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방인마냥, 그 어떤 편안한 옷차림을 해도 민망하지 않은 거리, 혼자 밥을 먹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식당, 모두가 적어도 한 개의 독서실 또는 스터디 또는 고시원에 적을 두고 있는 소속 있는 사람들.
5톤 트럭을 타고 그 거리로 들어서는데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열 번째 방은 녹두거리라는 비탈길에 있는 작은 원룸이었다. 엄마가 그 즈음부터 한 달에 30만원을 지원해주겠다고 해 얻은 방이었다. 트럭을 사이로 사람들이 양 옆으로 비켜서고 그 틈으로 나는 가까스로 그 거리에 진입했다. 방은 아담했지만 화장실도 있었고 깨끗한 싱크대 밑에 드럼세탁기도 달린 신축원룸이었다. 나는 그 방이 몹시 좋았다. 곤로를 피우며 몸을 녹이던 1970년대에서 2000년대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그 방을 정갈히 꾸몄다. 하얀 벽지, 새로 깐 깨끗한 장판, 책상과 침대, 옷장. 열 번째 방에서 나는 정말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이 거리에서 어깨 펴고 활짝 웃으며 주인공이 되는 일상을 마음껏 즐기리라. 나는 한껏 들떴다.
독서실은 쾌적했다. 공부하기에 이 보다 더 편할 순 없겠다 싶을 정도로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환기를 시키고, 산소발생기로 산소를 내뿜는 기계도 있었으며, 너무 졸리지 않도록 열람실 내 전체조명도 켜두었다. 신발장도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곳은 소음관리가 잘 되는 곳이었다. 그 안에서는 다른 이들의 공부를 방해할만한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됐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무질서한 거리였지만, 단 한 가지 용납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독서실 내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내면 안됐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다른 이의 귀에도 들리므로, 나는 최대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무음의 인간이 되어야 했다.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늘 양말을 신어야했고 슬리퍼를 신었을 경우에는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주어 슬리퍼를 움켜쥐고 걸어야 했다. 볼펜 똑딱이는 소리, 샤프심을 누르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의자에서 앉고 일어서는 소리,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 포스트잇을 떼어내는 미세한 소리,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 그 곳에서 휴대폰 진동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컸고 코를 훌쩍 들이마시는 소리는 폭포소리처럼 울렸다. 나는 그 곳에 들어앉아 보내는 긴 하루 동안 마치 인간에게서 얼마나 많은 소리가 나는가를 관찰하는 사람처럼 예민해졌다. 숨을 죽이고 듣기 위해, 누가 누가 무슨 소리를 내는가를 알기 위해 그 곳에 오는 사람처럼, 오로지 귀만 존재하는 그런 사람처럼.
모두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었고 자리에는 번호가 있었다. 나는 그 번호에 소속돼 있었다. 123번이라던가 59번이라던가 하는 그 자리가 내 이름이었다. 독서실 총무는 나에게 온 수험서가 택배로 도착하거나, 누군가가 나를 방문해 찾을 경우 나를 ‘123번님’, ‘59번님’이라고 불렀다. 나도 그 이름이 진짜 내 이름 세 글자 보다 편했다. 진짜 내 이름은 숨기는 쪽이 편했다. 그 거리에선 모두가 익명이 되기를 자처했다. 익명의 사람들은 오후 12시 저녁 6시가 되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고시식당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섰다. 모두가 하나같이 슬리퍼나 추리닝 차림이었다.
한 번은 점심을 먹고 나서 1시쯤 소화를 시킬 겸 배가 너무 불러 독서실 옥상에 올라가 거리의 풍경을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 회색빛 거리로 회색빛 사람들이 쉼 없이 어딘가로 오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끊임없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한 사람이 이 골목에서 나와 내 시야를 가로질러 저 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사라진 골목에서 또 누군가가 나와 내 시야를 가로질러 또 다른 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러면 그 또 다른 골목에서 또 다른 이가 나와 걸어가는 식으로, 나는 끝없이 사람들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 밥 때가 되었다.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거리의 인파가 오후 5시 30분쯤 되자 부쩍 늘어나더니 6시가 가까워지자 고시식당에 줄을 선 사람들로 꽉 찼다. 저 많던 사람들이 모두 독서실 안에 들어앉아 있다가 배를 채우기 위해 튀어나온 것이다. 독서실에 들어앉아 무엇을 했는지는 모른다. 나처럼 옥상에 올라와 멍 때리기를 했는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내는 소리 듣기를 했는지, 아니면 지하 휴게실에서 유선방송으로 밀린 드라마를 이어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스터디룸에서 히히덕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했는지, 아니면 점심을 먹고 졸려 엎드려 자다가 깨어보니 또 저녁 때가 돼 나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그들은 하나같이 독서실 안에 있다가 한꺼번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쏟아져 나왔다.
고시식당은 대부분 지하에 있었고 모두 뷔페식이었다. 지대와 인건비는 최대로 낮추 돼 모든 비용은 화려한 반찬에 집중됐다. 뷔페의 만찬을 즐긴 고시생 하나가 지하에서 빠져나오면 줄을 서 있던 또 다른 고시생 하나가 지하로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하루 종일 독서실에 갇혀 있다가 고시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고시생들은, 마치 닭장 속에 갇혀있다 잠시 비료나 사료를 먹으러 마당으로 나온 닭들 같았다. 구구구구, 비둘기 같았다. 그렇다면, 나 역시 닭이거나 비둘기였다. 아니, 어쩌면 비둘기보다도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나는 자꾸 작아져갔다.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내 마음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러다 외로워지면 자꾸만 새들과 대화를 했다. 안녕, 참새야. 넌 좋겠구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녀서. 안녕, 비둘기. 넌 좋겠구나. 구구구구 마음껏 떠들 수 있어서. 잠시 바닥이나 전신주, 의자 따위에 내려앉은 참새나 비둘기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너희들은 좋겠구나. 자유로워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어서. 그러다 참새나 비둘기가 푸드득 하고 날아가 버리면 나는 곧잘 허탈감에 빠졌다. 그러다 사물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집 앞 세탁소 앞 스티로폼 박스 안에 호박꽃이 하나 피어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 독서실로 가는 길에 피어있는 그 꽃이 너무 살갑게 느껴졌다. 안녕, 호박꽃, 너 참 예쁜 노란빛을 가졌구나.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피어있는 호박꽃을 보며, 안녕, 호박꽃,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났단다. 인사를 했다. 그러다 호박꽃이 떨어진 어느 날 밤, 그 열 번째 방에서 나는 울었다. 새들도 날아가고 호박꽃도 떨어지는 그런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작은 화분을 사 나팔꽃을 심었다. 창틀을 휘감고 올라가 아침마다 밤마다 나를 반겨주렴, 소망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