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자기 몸 안에 자기를 숨기는 달팽이처럼.
13. 자기 몸 안에 자기를 숨기는 달팽이처럼.
아홉 번째 방은 다니던 대학교 앞 시장 골목에 있던 주택 3층이었다. 월세 20만원이라면 웬만한 고시원보다 더 싼 방이었다. 한 달 고시원 방값이 30만원을 웃도는데, 취사 가능한 방이 월 20만원이라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바로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남은 방이 있냐고 하자, 남향 방이 하나 남아있다며 집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나타난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시장골목으로 들어갔다. 계절은 가을이었는데 자꾸만 겨울 같은 날씨였다. 1층에는 백반집이 있었고 2,3층이 살림집이었는데, 남았다고 하는 방은 3층이었다. 현관문을 따고 들어서자 어두운 거실이 나왔다. 거실 왼쪽에 방이 하나, 위쪽에 방이 하나, 그리고 오른 쪽에 방이 하나 있었고, 현관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었다. 살림집 하나를 개조해 각 방에 싱크대를 하나씩 들여놓는 것으로 주인은 월세방 3개를 만들어 세를 놓고 있었다. 완전한 독채는 아니었지만 방 안에서만큼은 독립된 생활이 보장되고 취사도 가능하니 월 20만원에 이런 3층 남향 방은 괜찮은 조건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쓰고 다음 날 바로 이사를 했다. 책이 든 박스 2개와 옷가지가 든 트렁크 하나가 가진 짐의 전부였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홉 번째 방은 해가 잘 드는 방이었다. 그 햇살 때문에 박스를 세워 만든 간이 책장이나 행거에 걸어둔 옷가지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생활비는 과외와 논술첨삭을 하는 것으로 충당했다.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며 나는 그 방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침을 거르지 않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나를 위한 밥을 짓는 수고를 했고, 빨래도 청소도 미루지 않았다. 궁색해질수록 방만큼은 정갈히 하고 싶었다. 마치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더 이상 씩씩할 수는 없다는 듯, 나는 이를 악 물었다.
그 집은 낮이었는데도 거실은 어두웠다. 방문을 닫으면 빛이 들어오는 창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형광등을 켜지 않는 한 그 거실은 하루 종일 어두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싫었다. 그것은 다른 두 개의 방에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가까운 곳에서 잠들고 일어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옆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려다가도 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었다. 우리들은 같이 살고 있었지만 동시에 같이 살지 않고 있었고, 나는 그들 때문에 외로웠다가도, 너무 혼자인 것 같은 밤에는 그들이 저 방문 너머에 잠자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곤 했다.
그 아홉 번째 방에서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급격히 변해가는 것을 견뎌야했다. 엄마는 곧잘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여동생은 연락이 잘 닿지 않았으며, 남동생의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행방불명됐던 아빠는 돌아왔지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고 있었다. 그 방에서 나는 매일 밤 가족들과 함께 잠자고 가족들과 함께 눈뜨는 환영에 시달렸다.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면, 엄마가 옆에 와서 눕는다. 엄마는 하루종일 식당에서 일을 하고 와 피곤하고 지친 마음을 누인다. 엄마는 남동생 때문에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모든 시선과 모든 수군거림을 견디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 것이다. 엄마 옆에 남동생이 눕는다. 남동생은 열일곱.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순진한 남동생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누나…누나…누나…나 어떻게 살아가야해? 나도 답할 수 없는 물음을 던지며 내 품에 안겨 엉엉 울던 남동생의 마지막 모습. 나는 울기 시작한다. 남동생 옆에 여동생이 눕는다. 내성적인 성격의 여동생은 받은 상처를 안으로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누워 있다. 여동생은 울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몇날 며칠을 그렇게 돌아누워 있다. 이렇게 내 쪽으로 돌아누워봐, 언니 얼굴 좀 봐봐, 동생의 등을 두드려도 영영 돌아눕지 않는다. 동생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모두의 발치에 아빠가 눕는다. 아빠는 지금 막 죽음으로부터 가까스로 구출돼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발을 모으고 등을 구부려 새우잠을 자고 있다. 혼자인 나는 어둠 속에서 다시 가족들과 함께 누워있다. 볼 수는 없지만, 만질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우리들은 언제나 함께였음을,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다시는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고 나서야, 비로소, 헤어짐이란, 끝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함께 밥 먹을 수 없다는 것, 함께 잠을 잘 수 없다는 것, 함께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것,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이, 동전의 양면을 한 번에 볼 수 없듯이, 반드시 엄마와 아빠, 둘 중 하나는 부재여야 한다는 것, 엄마와 함께 있을 때에는 아빠의, 아빠와 함께 있을 때에는 엄마의 부재를 느끼며 아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단순한 부재감이 아니었다. 마치 내 몸 하나하나가 모두 해체되는 듯한 정신적 고통이 따랐다. 단지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을 뿐이었는데도, 나는 마치 내 몸뚱이와 영혼이 두 동강이 난 것처럼 아팠다. 나의 근원이, 내가 속했던 곳이, 반쪽으로 쪼개져 하나는 저쪽에, 하나는 이쪽에 있었다. 나는 이쪽과 저쪽에 다리를 하나씩 걸치고서는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그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무게를 버티고 서서 내가 곧잘 했던 일이란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었다. 나는 가족들을 느끼느라 밤마다 쉬이 잠들지 못했고, 아침에도 가족들과 함께 눈을 떠 하루 종일 가족들과 함께 돌아다녔고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잠드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책했다. 내가 그때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아빠의 빚을 다 갚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라면, 내가 그때 아빠가 제발 살려달라고 말했을 때에, 그때 아빠의 소원대로 집에 머무르며, 도대체 아빠가 나에게 살려달라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조금이라도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했다면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라면, 내가 맏이로서 제대로 역할을 했더라면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식이었다. 나는 모든 과거의 사건들을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막지 못했던 플롯포인트로 연결지으며 나를 죽이고 있었다. 과거의 유령들의 손가락질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넌 그때 최악의 결정을 했어! 지금의 고통은 너의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대가야!”
그런 과거의 유령 목소리가 들릴 때 마다 나는 이를 악 물었다.
“그래! 그랬어. 그것이 나의 최선의 선택이었어! 지금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할 거야!”
하지만 언제나 싸움에서 지는 쪽은 나였다. 나는 결국 과거의 유령 목소리에 백기를 들고,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그 곳에 나 같은 사람은 나 혼자뿐이란 외로움이었다. 학교 앞 자취방이었기에 아직 한 번도 꺾여본 적 없는 스무 살 초반의 대학생들이 그 곳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그 곳에서 무임 승차자였고, 낙오자였고, 버스를 놓친 사람이었고, 후발대에 어떻게든 끼어 타고 목적지로 가지 않으면 갈 곳이 없는 무소속 외부인이었다.
무소속 외부인의 생활이 1년 6개월째에 접어들던 때, 봄이 오려 하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이었다. 이곳에 속한 새로운 사람들이 밀려들어올 것이고, 그만큼 나는 또 밀려날 것이었다. 나는 어디에든 속하고 싶었다. 어딘 가에 속해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아홉 번 째 방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날 아침은 유난히 추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줌이 너무 마려웠다. 그 방은 외풍이 심했다. 옆방 사람들은 아직 잠이 들어있는지 언제나처럼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화장실에 가야하는데 문을 열고 나가기도, 차가운 공용화장실 변기 위에 앉기도 싫었다. 나는 아무도 보는 이는 없지만은 부끄러워하며 싱크대가 놓여있는 작은 주방의 미닫이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차갑고 푸른 낡은 타일 위에다 오줌을 누었다. 싱크대 선반 위에는 어제 먹다 남은 찌개가 눌어붙은 냄비가 놓여있고 그 옆으로 도마, 칼, 그리고 수저가 보였다. 엉덩이 밑으로 한기가 서려왔다. 몇 달간 밥을 지어먹은 옛날식 간이 주방에 앉아 오줌을 누다가 나는 그만 엉엉하고 울어버렸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숨어 살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나의 기척을 옆방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 숨어, 주방에서 오줌을 누고 싶지 않은데,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고 싶은데. 나는 왜 자기 몸 안에 자기를 숨기는 달팽이처럼, 몸을 웅크려 숨어 살고 있는 것일까.
그날 아침, 쭈그려 오줌을 누며 나는 이 방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당당히 걸어다닐 수 있는 곳으로, 나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책이 든 박스 2개와 옷가지가 든 트렁크 1개가 전부였던 짐은 어느새 5톤 트럭을 불러야 할 만큼 불어나 있었다. 그릇이며 냄비, 이불, 밥솥, 수저, 냉장고, 선풍기.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한 인간에게는 너무 과분한 이삿짐을 싣고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신림동 고시촌의 열 번째 방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