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거긴 갈 수가 없어.
12. 거긴 갈 수가 없어.
다시 기억나는 장면은 내가 여덟 번째 방으로 돌아온 후였다. 나는 울고 있었다. 외할머니 댁을 찾은 둘째 이모 앞에서,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주룩주룩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평소 잘 울지 않는 깍쟁이 둘째 이모도 울고 있었다. 나는 울며 이모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나는 세상이 뒤집어진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모는 왜 못 사냐고 했다. 보란 듯이 잘 살라고,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니 너만의 인생을 살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이모, 아빠가 죽은 거 같아요.”
나는 아빠가 죽은 것 같았다. 어딘 가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죽어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집을 나간 이후 며칠 간 연락이 닿질 않으며, 핸드폰도 계속 꺼져있다고 말했다. 아빠를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아빠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제발 아빠 좀 살려주라.”
아빠는 내게 분명히 살려달라고 말했었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아빠의 그 말이 마지막 절규였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주인공이 극한의 고통에 처할 상황이 돼서야, 그때 그 것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플롯 포인트였음을 알아채듯이 그렇게, 나는 내가 다섯 번째 방을 떠나기 전날 아빠와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플롯 포인트였음을 깨달았다. 아빠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는 밤바다 아빠 꿈을 꿨다. 아빠는 자꾸만 나에게 살려달라고 했다. 꿈에서 살려달라고 하는 아빠는, 현실에선 꼭 죽은 것만 같았다. 나는 혼자서 자꾸만 마음의 준비를 했다. 끝이란 것은 흔히 그렇게 마지막 인사조차 할 기회를 주지 않고 갑자기 찾아와버리는 것이라고, 끝이란 건 그렇게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멈출 수도 없는 시간을 타고 저만치 흘러가 잡을 수 없는 신발처럼 영원히 내게서 멀어질 뿐이라고.
시험은 떨어졌고, 엄마와 아빠는 헤어졌고, 아빠는 행방불명이 됐고, 아빠의 퇴직으로 생활고가 닥쳤다. 아빠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막냇동생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여동생은 아직 대학졸업반이었다.
만약에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지 않고 다른 회사에 바로 취직을 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그날 아빠가 가지 말라고 했을 때 아빠 말대로 집에 머물렀다면? 만약에 내가 아빠가 살려달라고 했을 때, 어떻게 하면 아빠를 살려줄 수 있냐고 되물었었다면? 만약에 내가 계속 집에 머물렀었다면, 만약에 내가 계속 엄마 아빠 곁에 남아있었다면, 만약에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엄마와 아빠는 헤어지지 않았을까? 수많은 만약에,라는 가정은 비수가 돼 내 몸을 찔러댔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
나는 완전히 망해버린 것만 같았다. 정신적 고통이 시작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가 모두 해체되는 듯한 육체적 고통이 뒤따랐다. 나는 꼼짝없이 누워 그 모든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형벌 같았다.
형벌은 8월이 지나고 9월이 돼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빠는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돌아온 아빠를 보며, 생명이란 이토록 끈질기다고 생각했다. 시골에 있는 아빠의 고향집으로 찾아갔을 때에, 아빠는 등을 돌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만치서 담배 피우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는데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분노와 함께 눈물이 치솟았다.
“차라리 돌아오지 말지 그러셨어요?”
내 눈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아빠에게 입으로는 온갖 원망을 늘어놓으면서도 정작 내 눈물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빠, 너무 걱정했어요. 아빠, 고마워요, 고마워요, 살아 돌아와줘서.”
모든 절망 끝에 살아 돌아온 아빠를 보며, 나는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무서워 고개도 들지못하고 짱 박혀 있던 희망을 불러냈다. 그 희망으로, 나는 있는 힘껏 용기를 내 나의 아홉 번째 방을 구했다. 엄마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지원도 해 줄 수가 없으니,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는 자기 자신조차 거두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으니, 그때부터 나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의식주를 해결해야한다는 것이고,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나는 시험을 앞둔 수험생인데 무슨 수로 돈을 벌어 의식주를 해결한단 말인가. 방값이며 밥값, 책값과 최소한의 생활비만 해도…….
생활고란 그런 것이었다.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것, 당장 다음 달 방세를 걱정해야 하는 것. 모든 욕구가 제한되었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욕구, 추운 겨울 목도리나 장갑을 사고 싶은 욕구,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사고 싶은 욕구, 하다못해 지나가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먹을 욕구까지 모든 욕구는 철저히 무시당해야 했다. 당장 의식주가 급한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하물며 꿈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은 더더욱 없었다. 마음은 수천 개의 바늘이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것처럼 틈 없이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그 바늘에 내 마음도 곧잘 베여 피를 철철 흘리곤 했다. 그런 피 흘리는 마음으로는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가 없었다. 너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꿈은 희미해져갔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고향집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눈치가 보일지언정 외할머니 댁에서 조금 더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었지, 되돌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게 되돌아감은 후퇴와 포기를 의미했다. 바람이 너무 세 뒷걸음질 친다해도 나는 기어코 그 바람을 맞서 앞을 향해 가는 사람이었다. 그 앞에 놓인 것이 낭떠러지든, 불구덩이든, 세상 끝이든 나는 일단 정면돌파를 택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를 너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는 시험에 합격할 수가 없어.”
“이렇게 하는게 뭔데?”
“공부에만 집중해도 모자란데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어떻게 공부를 해?”
“못 할 건 또 뭐야?”
“고향집으로 가라니까 왜 안 가?”
“거긴 갈 수가 없어.”
“왜 갈 수가 없어?”
도대체 왜 고향집으로 내려가 공부하지 않냐고 자꾸만 물어보는 네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실은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였고, 고향집에 가면 아빠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고, 아빠를 기다리다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엄마는 무엇인가에 대단히 화가 난 사람처럼 하루 종일 분노에 차 있고, 남동생은 방황을 시작했다고, 여기서 아! 하면 저기서 어!하는 작은 소도시에 소문이 날 데로 났을 거라고, 사람들은 나를 보고 수군거릴 거라고, 임 선생님 집이 그렇게 됐대, 저기 임 선생님 집 큰 딸 아니야? 그렇게 기대를 걸었건만 지금은 저렇게 보잘 것 없이 아휴 저게 뭐야, 뭐라도 될 듯이 제 부모의 꿈을 다 집어삼키고서는 저렇게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됐네? 그럴 거라고.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거라는 엄마의 말은 틀렸다.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을 뿐이었다. 집안의 공기부터가 달랐다. 하나였던 도화지가 다섯 조각으로 찢겨져나간 것 같았다. 그 도화지에 그렸던 여러 그림들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고향집에 있는 일이란 그 찢어진 그림을 매일 보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진 셈이었다.
새 집을 구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나가야 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었다. 나는 앞으로 살아나갈 일만 생각하려 애쓰며, 다니던 대학교 앞 자취방 골목을 헤맸다. 해가 진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전봇대 위에 ‘보증금 100 월세 20’이라는 문구와 함께 주인의 휴대폰번호가 적힌 문어발이 스산한 가을 바람에 볼품없이 휘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