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켜지지 않는 방

18. 안녕, 나의 스물 다섯, 스물 여섯, 스물 일곱.

by 올리브유

18. 안녕, 나의 스물 다섯, 스물 여섯, 스물 일곱.


나는 공무원 시험공부를 그만두었다. 애시당초 문화재관리사라는 것은 거짓꿈이었고, 그 거짓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는 의미가 없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몇 군데 이력서를 보냈다. 얼마 후 일주일에 한 번 신문을 발행한다는 한 종교지에서 서류합격 연락이 왔다. 그 곳으로 찾아가 필기시험과 면접을 치르는데 이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걸 단번에 알았다. 나는 취직을 했고, 무직의 수험생 신분에서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함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평생을 함께하자던 너에게 공부를 그만 두었다고 말하며 헤어지자고 말했다. 이미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이 된 너는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쩐지 조금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말했다.


"그래, 이제 너의 인생을 살아. 너의 뜻대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너의 길을 가."


열한 번째 방을 떠나는 날 아침, 이 곳으로 이사올 때 번호를 받아두었던 5톤 트럭 아저씨에게 용달이사를 맡겼다. 아저씨는 신기하게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시험에 합격하여 이곳을 떠나는 것이냐 물었다. 나는 모든 시험에 떨어졌고 단 한 번도 합격한 적 없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그런데 왜 그렇게 웃으며 말하냐고 했다. 나는


"웃어야죠, 웃는 사람이 이기는 거잖아요."


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우는 것 보다는 웃는 게 낫지."


하며 싱긋 웃었다.


"아가씨, 앞으로는 뭘 하려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고요."


"글쟁이가 된다고? 밥 벌어먹고 살겠나."


"여기서 아무 것도 안 해도 밥 벌어먹고 살았는데, 글쟁이가 돼도 벌어먹고 살 수 있겠지요?"


"허허, 그렇네. 백수보단 글쟁이가 낫겠네."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웃으려니 웃음이 나지 않았고 울려니 눈물이 나지 않았던 그 마지막 오후. 박스 2개와 트렁크 1개로 시작했던 나의 짐은 3년 새 몇 배로 늘어나 5톤 트럭 위에 실렸고, 나는 또 새로운 방을 향해 떠났다. 그 열두 번째 방에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고,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다 싣고, 운전석 옆 조수석에 올라타자 아저씨가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컹컹 덜덜덜덜, 트럭이 조금씩 움직이며 거리를 빠져나갔다. 회색빛의 사람들은 첫날처럼 양 옆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찾아오는 것도 떠나는 것도 오로지 당신의 자유, 안녕히가십시오. 그렇게 말하듯이, 모든 것은 너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순순히 선한 발걸음으로, 길을 열어주었다. 그 사이를 나는 서서히 빠져나왔다.


나는 인사했다. 안녕, 밤들아. 안녕, 죽음들아. 안녕, 눈물. 안녕, 외로움. 안녕, 끝이 보이지 않던 미로 같던 길들아. 안녕, 소리들. 안녕, 매미야. 안녕, 비둘기, 안녕 참새야. 안녕, 호박꽃. 안녕, 나팔꽃. 안녕, 그날 아침 목련꽃. 안녕, 엄마. 안녕, 아빠. 안녕, 동생들아. 안녕, 안녕,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나의 스물 다섯, 나의 스물 여섯, 나의 스물 일곱. 안녕, 다시 살고 싶은 나의 스물 다섯, 스물 여섯, 스물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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