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요지경, 그런 답답증은 내게 마음의 병이 되었다. 나처럼 심약하고 콧구멍이 여린 사람이 매일같이 그런 요지경을 맞닥뜨리고 그런 답답증을 겪는다는 것은 오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4년 8개월 만에 기자 생활을 그만두었다.
4년 8개월 동안 결혼을 했고, 난임 여성을 거쳐 불임 여성으로 분류되었고,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인간이라는 족속이 얼마나 치졸하고 비열할 수 있는가를 뼈저리게 경험했고, 나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끝나고 보니 나는 기자에서 백수가 돼 있었다.
백수가 된 이후 나는 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거라는 무력감이 엄청난 무게로 나를 압도했다. 하늘을 이고 있는 헤라클라스처럼, 하루하루 나는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이미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 어떤 꿈을 꾸었었는지, 내 머리와 이마가 얼마나 파랗게 물들었었는지, 그 어떤 뜨거운 심장을 가졌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 떨어져 쥐 같은 삶을 살았다. 쥐가 된 사람, 어둠 속에 숨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 사람과 마주치는 것이 낯설게 돼 버린 사람. 그렇게 2년 쯤, 나는 형광등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겨우 사람의 온기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인간이 돼 있었다. 그저 숨쉬고 잠자고 죽지않게 먹는 것 정도만 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인간에게는 더 이상의 답답증도, 무력감도 없었다. 그런 것들을 느낄 마음이 없어졌으니까. 아무 것도 느끼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하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라든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바라본다든가 하는 일 조차도 괴로웠으니, 최소한의 인간답게 최소한의 마음만을 가지고 최소한으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그 형광등 불빛 아래 살던 2년 동안, 나는 나 아닌 그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도, 남편도, 친구도,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끝까지 지켜줄 수는 없었다. 나는 목숨을 건 듯 공부했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공부였다. 그리고 서른 셋의 나이에 늦깍이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났다. 엄마가 되었고, 더 이상 목숨줄을 걱정하지 앟아도 되는 직장도 얻었다. 답답증도, 무력감도 잊었다 생각했다. 보지 않고 외면하며 느끼지 않으니 더 이상의 답답증도 무력감도 없었다. 이대로 주욱 살아간다면 죽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마음 속엔 끝없는 갈증이 일었다. 그리고 그 갈증 뒤엔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도망쳤다는 거. 나 혼자 살겠다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는 거.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왠일인지 이상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아무도 단죄하지 않았지만 나는 은밀하게 나를 계속 단죄하고 있었다. 나는 비겁했다. 나는 나를 배신했다. 나는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하나뿐인 인생을 담보 잡혔다. 근데 그래서 내가 뭘 얻었지.
그런 죄책감을, 장강명 작가의 소설 '표백'을 읽으며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난 후 나는 한 동안 답답증과 무력감에 다시 시달렸다. 가슴이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 나를 괴롭혔던 그 무력감이 책 한권이라는 선명한 실체를 갖고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날카로운 응시였다. 어쩌란 말이냐,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난 벌써 이만큼 도망쳐서 그럭저럭 살아나가고 있는데!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나도 죽이고 꿈도 죽이고 심장도 죽이고 펄펄 끓던 분노에 찬물을 끼얹어 다 식혀버렸는데.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하지만 그 소설은 자꾸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 넌 살아있어
니 심장은 아직 뛰고 있어.
바닥에 엎드려 낮은 숨을 고르고 있어.
생각을 멈추지 마.
어떻게든 살 방법을 강구해봐.
생각을 포기하지 마.
죽었다 생각한 니 마음, 살릴 수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난 알아.
넌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걸.
그러니 포기하지마.
절대 포기하지마.
다시 살 수 있어.
살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