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이 된 나는 문학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한다. 사진 속 모습 그대로 등장할까, 아니라면 영 다른 느낌의 사내일까. 목소리나 말투는 어떨까. 준수한 외모와는 달리 모기같거나 염소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닐까. 몸을 비비 꼬며 말을 하거나 다리를 덜덜 떨거나 제대로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오타쿠 같은 스타일이라면 나는 실망하게 될까. 아니라면, 그가 쏟아낸 글들처럼 좀 어둡고 음침하고, 너무 정확해서 무섭고 그럴까.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상상으로 내 이마는 점점 더 뜨거워온다.
4호선 성신여대역에서 출발한 지하철은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다. 나는 공항철도로 갈아탄 후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내려야 한다. 그는 8시까지 상암동에 있는 북바이북이라는 서점으로 오기로 돼 있었다. '작가와의 번개'라는 이름의 북토크 자리였다. 둘 만의 만남은 아니었지만 나는 마치 단 둘이 한 약속의 날 처럼 오늘을 기다려왔다. 좋아하는 새로운 작가가 생기면 마치 무슨 연애라도 하는 마냥 그의 모든 것을 죽죽 빨아먹고 싶은,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고 싶은, 모든 것을 알아버리고 싶은 나의 은밀한 열망때문이리라. 김연수 작가 이후 마음이 쏠리는 작가를 만나지 못해 조금 무료하던 참이었다. 정복하고 싶다! 이 작가를 정복하고 싶다! 그런 욕구가 마구 치솟는 그런 느낌을 근 몇년 간 갖지 못했는데, 아...장강명이라는 이 작가가 잠 자던 나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그것도 아주 큰 불을.
장강명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문학동네 계간지를 통해서 그가 스무번째 작가상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때였다. <그믐, 또는 세계가 당신을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작품이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소설이었다. 하도 장강명 장강명 하길래 장강명이 누구길래, 하는 호기심으로 교보문고에 나가 <그믐, 또는 세계가 당신을 기억하는 방식>을 집어들었다. 여름이었다. 8월의 한 여름. 나는 이제 겨우 입덧의 지옥문을 통과하고 가까스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정도의 몸상태가 되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의 한 복판. 교보문고 소설 매대 위에 서서 나는 <그믐,...>책을 들춰봤다. 첫 문장이 '찔러봐. 찔러봐 새끼야' 였다. 헉. 정말 헉 소리가 나는 문장이었다. 살다살다 그런 첫 문장을 가진 소설은 처음 읽었다. 몇 페이지 읽다가 맨 앞으로 돌아와 다시 봤다. 믿을 수 없는 처음이었다. 정말로 찔러봐, 였고, 정말로 찔렀다. 제목을 봤을 때에는 그저 흔한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그런 요즘 심각한 소설이라 생각했다. '그믐'이라는 단어나 '세계', '기억' 이런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익숙했다. 때문에 '찔러봐'라는 선명한 한 문장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그 문장이 당황스러웠다. 몇 페이지 읽다가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을 만한 장소를 찾았다. 다행히 교보문고가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카브리에 빈 자리가 하나 있었다. 책을 들고 빈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두시간 남짓,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단숨에 읽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잠시 충격. 재미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막 너무 답답하고 무거워졌다. 아...이 느낌은 뭐지. 소설 한 편을 다 읽고나면 뭔가 좋아야 되는데, 좋지가 않았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난 후 얻게되는 마음의 치유, 성장한 느낌, 무언가를 가진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음이 어떤 종류의 감정으로든 풍요로워지는 그런 느낌, 내가 여느 소설을 읽고난 후 느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정을 맞닥뜨렸다. 나는 당황했다. 이건 뭐지. 가슴이 한없이 답답해지는 이 느낌은. 전혀 새로운 소설이구나! 굳이 비슷한 느낌을 찾자면,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읽고 난 후 느꼈던 감정과 조금 비슷했다. 한 없이 마음이 답답해지는... 이 답답함은 작품에 대한 답답함은 전혀 아니다. 글이 답답하다는 얘기가 아니란 말이다. 이런 종류의 답답함은 내게 조금은 익숙한 답답함이었다.
수년 전 기자 생활을 할 때에 몇몇 취재현장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한 없는 답답함을 종종 느꼈다. 한 외국인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 하에 일을 하다 종아리 아랫 부분을 다쳤는데 치료가 잘 되지 않아 결국 다리를 절단했다. 그는 불법체류자였고, 한국에서 일하다 만난 그의 아내도 불법체류자였다. 한국인 사장은 그의 산재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그를 해고했다. 그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나오는 길에 나는 가슴이 답답해 숨 쉬기가 불편했다.
또 한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고작 아홉살인 아이가 전신화상을 입었다.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미라처럼 병상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무능했다. 아빠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무책임한 가장이었고, 엄마는 돈도 없고 힘도 없었다. 아이는 병원비를 내지 못해 일반 병원에서 쫓겨났다. 하는 수 없이 인근 노인요양병원으로 옮겼다. 노인요양병원은 일반병원에 비해 병원비가 저렴했다고 아이 엄마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아이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조그만 연고 하나가 십몇만원. 아이는 상처에 연고 대신 소독약을 바르고 있었다. 그 아이를 취재하고 나오는 길에 나는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신문사 차원에서 아이를 위해 모금한 성금액 1억2천만원을 그의 외숙모가 가로채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괴로움에 며칠 간 잠을 못 이뤘다. 세상에 그런 파렴치한, 그런 요지경이 깔리고 깔렸다.
그런 취재를 하고나면 답답증이 도졌다. 일을 하면할수록,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을 맞딱뜨리는 일은 더 많아졌고 나의 답답증도 깊어졌다. 세상이 미친 것 같은데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요지경 앞에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