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뒤에
오랜 직장생활 편안함이 주는 공허함은 그리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과 무언가 하고 싶은 열망에 답을 찾고자 고민하는 시간 속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의 주인공인 조르바는 정말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계산하지도 고민하지도 않았다. 일도 사랑도...
너무나도 자유인처럼 보이는 조르바는 방탕자처럼 보이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와 슬픔에도 춤출 주아는 사람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본능적인 조르바를 부러워하는 것만 같았다. 결정하지 못하는 나에게 조르바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 그래선 삶을 놓칠 수 있어"
나는 내 삶을 진정 깊게 생각하거나 과감하게 무언가를 위해 거침없이 도전해 본 적이 있는가? 책을 읽고 조르바라는 인물로 인해 나의 생각은 정리되는 듯했지만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
삶의 도전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지금 오랜 직장의 결핍으로 도망을 가려는 것인가?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가고 시간이 해결될 거라는 지인들의 조언도, 책 속에 공감도 어떤 것도 나의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평소처럼 일 끝난 후 동료들과 소주 한잔을 하고 있었다. 친한 동료가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한마디 해주었다.
"아이들 생각해서도 참고 다시 생각해"
따뜻한 조언이었다. 사람은 듣고 싶은데로 듣는 걸까? 아이들도 ’너처럼 고민하게 만들 거니‘라고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의 아이들도 지금의 나처럼 비슷한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나는 지금 어떤 말이 필요한가? 나는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것도 괜찮으니깐 그냥 한번 해봐 괜찮다"라는 말이 필요했던 거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또 그것을 할 수 있을지, 잘 되지 않았을 때의 우리 가정은 어떻게 하지 수많은 물음표를 찍어가는 나에게 나는,
"그냥 괜찮다 조르바처럼 한번 해봐 안되면 그때 다시 하면 돼"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나와 같은 상황이 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 1단 심사를 앞두고 너무나 무서워하고 심사를 안 하겠다며 떼를 쓰던 때가 생각이 난다. 너무나 긴장하고 두려워하던 아들에게 나는 말했다.
"아들 할 수 있어, 아빠가 뒤에 있으니깐 걱정하지 마" 그리고 처음이라서 떨려서 그런 거라며 아들을 달랬었다.
태권도 심사를 앞둔 아들처럼 나도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내가 내 뒤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