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 엿 뉘 엿 넘어갈 무렵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그 골목은 기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K 덕분에 그 동안 찾아 헤매던 곳이 구로소방서가 아니라 구로 소방 파출소였음을 알게 된 나는 그 길로 K를 따라 그곳을 찾아갔다.
아, 너무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이었을까?
GPS에서 확인되는 위치는 틀림없이 이곳이 내 유년시절을 보낸 곳임을 말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눈에 익은 곳이 없었다.
좋은 시간 보내라며 떠나는 K에게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고 난 뒤 저물어가는 황혼 속에 나는 멍한 채로 서 있어야 했다.
잠시 뒤 숨을 고르고 골목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소방파출소 언덕 밑 골목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세탁소와 구멍가게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커다랗게 자리 잡은 OO냉장.
그것은 마치 빌려다 놓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내 기억의 경계를 무단 침입하고 있었다.
그 세탁소에는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난다는 뽀빠이를 닮아 볼살이 귀여운 또래가 살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손가락 굵기만한 크기의 소시지도 맛있다며 먹어보라는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건 사실, 요리용이라기보다는그 당시 아이들 간식용으로 만들어 팔던 불량식품이었다.
나는 그보다는 구로 국민학교 가는 골목길 왼편 안쪽에 자리 잡았던 오뎅(어묵) 집의 네모난 오뎅을 더 좋아했다.
이른 아침이면 그곳에서는 네모진 오뎅이 뜨거운 김을 내면서 나왔는데 그걸 하나 먹겠다며 한참이나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 골목 초입에는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미용실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여러 권의 만화책들. 그중 아프리카 밀림으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밀림에서 사자를 만났는데 나무로 피하라는 가이드 조언에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 위로 피했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미용실도, 만화책도, 사자도, 아프리카도 생소했던 그곳, 그 시절.
머리를 깎으려면 커다란 의자 위에 널빤지 하나를 가로지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미용실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발 뒤에 항상 사 주시던 짜장면도 없었다. 미용실이 그만큼 내게 신세계였기 때문일까?
학교 가는 방향으로 그 골목을 좀 더 들어가면 이따금 꿈에서도 보이는 친구의 집. 그 친구 집은 무척 좁았지만 자연도감이 많아서 틈틈이 책을 빌려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친구네 건너편엔 꽤 넓은 마당이 있던 다른 친구가 살았는데 다락방도 있던 집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그 동네에서 퍽 잘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집에서 팔던 칠게를 몇 마리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짜장밥을 가져
왔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음식이었던 짜장밥. 아마도 고마움의 표시로 대접한 모양이었는데 다 먹고 난 뒤에 작은 누나가 먹을 거였다며 소곤거렸다. 앙칼진 작은 누나가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다락방에 납작하게 엎드렸다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울다가도 잠들던 시절이었다.
학교로 가는 골목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그 대신 넓은 공터가 확 다가왔다.
개똥 참외도 싹을 내고 부지런한 어른들이 심어 둔 고추도 깻잎도 있는 곳이었다.
조금씩이지만 가난한 이들의 식탁을 채워주던 곳이기도 했다.
한편, 온갖 쓰레기도 버려지던 곳이라 불장난도 심심찮게 벌어졌는데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놀던 어느 날, 사달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어떤 녀석이 불이 붙은 솜을 뱅글뱅글 돌리다가 놓쳤는데 하필 내 팔뚝에 와서 들러붙었다. 녀석은 재빠르게 도망갔지만 동네가 동네였던 터라, 그날 저녁에 그 애 부모님이 얼마 간의 약 값을 들고 오셔서 연거푸 사과하셨다.
그 시절은 그런 때였다.
그 공터에서 ‘찜뽕’(털이 다 벗겨진 테니스 공을 가지고 배트도 없이 하는 야구 비슷한 경기)을 하고 자치기, 비석치기를 참 많이도 했다.
추억을 따라 걷던 골목 끝에는 공터 대신 낡은 아파트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이제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딱 맞는 말이었다.
싸움 잘하던 인기, 여의도까지 걸어서 가보았다던 변 변수(그 애 아버지는 등산가였다), 소방서 길 너머의 영길이.
지난시절의 친구를 우연히 만날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시장 언저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이미 이방인으로 가득한 그곳에 나조차도 이방인 신분.
쓸쓸해진 마음만큼이나 추워진 저녁이 되어서야 옛 성당 길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순대국밥 집을 찾았다. 그곳에선 주인아주머니의 아들인 듯한 젊은 남자가 홀 서빙을 보고 있었다.
“어떤 게 제일 맛있나요?”
나보다대여섯 살쯤 어릴 듯한 그에게 물었다.
순대국밥이 제일 맛있다는 그의 대답에 난 별수 없이 웃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순대국밥 집에서 가장 맛있는 게 뭐냐고 묻다니.
그러나, 혹시라도 나를 아는 이가 아닐까, 나를 알아보지나 않을까 하여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쳐다본 끝에 그가 ‘손님-‘하고 불렀기 때문에 엉겁결에 그리 대답을 하고 말았다.
식당에는 나 말고도 한 테이블에 손님이 더 있었는데 초로의 모습을 한 그들의 말투를 짐작해 보건대 이곳 출신 사람들은 아닐 것 같았다.
마침내, 국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 가격을 치르는 동안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장사한 지 오래되셨나요?”
대답 대신 아주머니는 아들을 바라보셨다.
‘이런…… ‘
따뜻한 국밥 덕에 몸이 다시 따뜻해졌다.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장을 거슬러 오르기로 했다.
하늘엔 이미 별이 가득했다.
브로크(block) 벽돌 공장을 하던 진만이 형이 들려주던 별, 그 별 생각이 나서 예전 형네 집이 있었음직한 곳을 바라다보았지만 기억 속의 그곳은 없었다.
대신, 기억보다 훨씬 더 앞에 있는 듯한 느낌의 OO역이 있었다. 그 OO역 쪽으로는 수없이 많은 지상의 별들이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