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 마지막 입사지원서

운명과 자유

by 황태

"안녕하세요. 왕이수님, 면접 결과 1차 면접 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최종면접일은..."


이수는 1차 면접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사실 그녀는 문자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동안 1차 면접에 붙었다 하더라도 최종 면접에서 줄곧 떨어졌기 때문이다. 입사할 곳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번번이 운명의 제약을 받았다. 이번에도 떨어진다면 당분간 지원할 곳이 없을 것이라는 현실감각이 몰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디라도 붙을 곳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1년 전 그녀가 취업준비를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지원한 곳은 은행이었다. 복리후생이 잘되어 있어 여자들의 워너비 직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서류부터 떨어졌다. 글을 쓰는 재주가 있던 터라 자소서를 열심히 쓰면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했다. 자소서란을 제외한 그녀의 입사지원서는 지극히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얼굴이 빼어나지도 않았다.


은행에서 떨어지고 난 뒤 그녀는 제약, 무역, 정유 등 각종 중견, 대기업에 지원했다. 서류에서 탈락한 곳들도 있었고 면접에서 떨어진 곳들도 있었다. 그녀는 항상 처음 지원하는 것처럼 자소서에 온 힘을 다했지만 생각보다 자소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별로인 탓인지 그녀에게 합격 목걸이를 걸어주는 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한 회사에 지원할 때마다 그곳에서 일하는 상상을 하며 잔뜩 꿈에 부풀었었기 때문에 탈락할 때마다 이수는 마음이 쓰렸지만 사기업이니까 괜찮다며 그녀는 자위했다. 사기업은 정년까지 다니지 못할 수도 있지 않는가.


은행권, 사기업에서 떨어지고 난 뒤 시야를 바꿔 이수는 공기업에 지원했다. 안정적이고 잘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으니까 붙기만 한다면 영락없는 꿈의 직장이라 생각한 것이다. 공기업에 지원할 생각에 이전의 탈락이 그리 슬프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공기업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 운명일지도 모른다며 남몰래 분수에 맞지 않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면접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공기업이라 자소서 문항이 다양하고 어려워 시간을 많이 투자했고, NCS 시험공부도 열심히 했다지만 그녀는 지원한 6-7개 기업에서 모두 떨어졌다. 그중 한 곳은 신분증을 챙기지 않아 시험장에 입실하지 못하기도 했다. 노력을 한 만큼 많이 우울했지만 이 또한 운명이라고 이수는 생각했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거대한 흐름인가 아니면 제약인가. 내지는 필연적인 결과인가.


남은 것은 은행을 제외한 금융권이었다. 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 닥치는 대로 지원했다. 확실히 그녀의 입사지원서가 금융권에 부합했던 것인지 서류전형과 1차 면접에 합격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최종 면접만 보고 나면 하나 같이 다 떨어지는 것이었다. 1차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수는 항상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이 정도면 운명인 회사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지원할 곳이 더 이상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마지막 남은 회사에 지원했다. 정말로 마지막 남은 회사였고 당분간은 없었다. 마지막이면 간절해질 법도 한데 그녀는 의외로 심드렁했다. 끈기가 이미 바닥나 버린 것인지, 아니면 사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회사였는지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지원한 회사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꽁꽁 감추어진 회사였다. 그녀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입사지원서를 수정 없이 그대로 제출했고 편하게 1차 면접을 보러 갔다.


그녀가 면접을 보러 도착한 회사는 외양부터 남달랐다. 그녀는 어딘지 삐그덕거리는 플라스틱 재질의 바닥, 1990년도에 썼을 것만 같은 파란색 파티션이 빼곡히 들어선 사무실을 지나 작은 회의실에 들어갔다. 지원자는 그녀와 다른 한 명뿐이었다. 그녀는 2명 중 한 명을 뽑는 거라면 이번에는 붙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붙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면접장소에 들어간 그녀에게 면접관이 질문했다.

"엄마랑 아빠 중에 누굴 더 좋아하나요?"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하나요?"

"담배 피우는 남자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충격적이었다. 이수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면접을 보았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별 기대가 없는 질문은 처음이었다. 망했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찼다. 정말 끝이구나. 그녀는 이 회사가 아무래도 자신이 아닌 다른 한 명을 뽑으려 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이내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을 하고 면접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오후 그녀는 1차 면접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아무래도 2명 모두 합격시키고 최종 면접에서 최후의 1인을 결정하려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1차 면접은 통과했다는 것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또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게 만들 것이냔 말이다.


최종 면접은 일주일 뒤였다. 1차 면접 합격 소식을 들은 그녀의 부모님은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둘 중 한 명 붙는 거라며,, 잘 되지 않을까?”

“어디든 네가 일할 곳은 있겠지. 안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보고 와.”


최종 면접 당일 이수는 대기실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지난주 그녀와 함께 대기했던 지원자를 볼 수 없었다. 대기실에는 계속해서 그녀 혼자였다.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거대한 흐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결국 면접장에 들어갈 때까지도 그녀는 혼자였고 얼떨떨하게 면접장에 들어섰다.


면접장은 사장실이었다. 사장은 그녀에게 질문했다.

“회사에 궁금한 점이 있나요?”

”최근에 새로 도입한 포털사이트와 연동한 고객 서비스가 궁금합니다. “

그녀는 미리 회사의 기사를 보고 온 터라 편안한 마음으로 서비스를 도입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항상 최종면접 때마다 곤란한 질문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면접관들과 다르게 지금은 푸근한 아저씨와 차를 한 잔 마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달랐다.


면접을 보고 온 그녀에게 인사팀 직원이 말했다.

“급하게 직원을 뽑은 거라 혹시 다음 주부터 출근이 가능하신가요?”

”네... 네? 아, 괜찮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면 되는 거죠? “



입사일을 확정 짓고 그녀는 빨려 들어갔던 회사 건물 틈에서 삐져나왔다. 착착 빠르게 진행되어 가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어떠한 막힘도 없이 결과에 도달해 있었다. 그녀는 드디어 마지막 장소에 당도한 것이다. 그녀가 운명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운명은 존재하는 것이었다. 운명은 거대한 흐름이자 제약이면서 동시에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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