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자유
봉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의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한 적이 없었다. 의례 말하는 말 안 듣는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중학교 시절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아온 것에서 찾으려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것은 그의 자유로운 성정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으로 유복했던 집안은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에 풍비박산 났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홀로 콜센터에서 일을 해야 했고, 그의 아버지는 상심에 빠져 일할 생각 없이 술만 마셨다. 이따금씩 술에 취해 다 같이 죽자며 칼을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무 일 없이 끝났기 때문에 그의 부모는 가끔 한 번씩 벌어질 법한 작은 해프닝으로 여겼다.
그의 부모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점점 봉세에게 자신들의 인생을 걸게 되었다. 이제 회복될 길 없는 자신들의 인생은 유복했던 시절 부족함 없이 키운 자식들이 다시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부모 자식 간의 도리란 그런 것이 아니겠냐며 굳게 믿었다.
하지만 봉세는 여전히 놀기 바쁜 고등학생이었다. 비싼 사교육을 통해 선행 학습을 충실히 한 탓에 공부를 하지 않고도 항상 전교 20~25등을 유지했지만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기 위해 노력할 마음은 없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웠고 언젠가 공부하고 싶은 때가 왔을 때 그때 공부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믿었다. 그런 봉세를 그의 부모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희망이 점점 초라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봉세의 부모는 그의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 저희 애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통 공부를 안 하려고 하네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화도 내 보고 매도 들어봤는데 말을 듣지 않아요."
"어머님, 봉세는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잘 해낼 수 있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워낙에 영특한 아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일단 조금만 더 봉세를 믿고 기다려 보시는 게 어떨까요? 지금 성적이 나쁜 편도 아니고요."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으세요. 지금 저희가 한마디 했다고 학교도 안 가겠다면서 방에 틀어박혀있는걸요. 봉세는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수능이 곧이라구요."
"어머님, 진정하세요. 그래도 너무 다그치지 마시고 봉세를 믿어주세요. 봉세는 스스로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기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 아이예요. 그럴 때 다그치면 오히려 더 엇나갈 수 있습니다. 봉세를 조금만 놔주세요. 일단 학교에 출석은 잘할 수 있도록 제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봉세의 부모는 선생님조차 봉세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자 애가 탔다. 희망찬 미래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점점 암울해져 갔다.
봉세는 그런 부모님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는 본인 스스로를 잘 제어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시험 전날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자신을 방해만 하지 않았는가. 그는 벗어나고 싶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렇게 봉세의 고등학교 마지막 1년은 빠르게 끝났다. 봉세는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수능을 망쳤고 졸업 후 재수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봉세는 재수를 하게 된 것이 전혀 슬프지 않았다. 자신이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당연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다만 봉세는 졸업식에서 만났던 선배를 떠올렸다. 그 선배를 보며 자신도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어렴풋한 미래를 그리게 되었다. 언제든지 자신을 구속하는 부모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에 혼자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했고, 혼자 살아가려면 법에 대해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방책이었다. 처음으로 봉세에게는 스스로 공부할 이유가 생겼다.
그는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미래는 자신의 결과이며 자신은 미래의 원인이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간단했다. 그에게 미래란 인과관계에 의한 것일 뿐이었다. 필연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은 반드시 꿈을 이뤄낼 것이었다.
봉세의 자신감처럼 그는 1년 간의 재수 끝에 원하던 대학의 법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을 지원해 줄 수 없다는 부모의 말에 따라 학교에 입학하기 전 곱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첫 학기 등록금을 마련했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성적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이를 위해 철저히 공부했으며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대학생의 로망인 연애와도 담을 쌓고 지냈다.
봉세는 미래를 그리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실천했으며 모든 계획한 것을 이루어 냈다. 그의 대학 4년은 계획과 실행, 원인과 결과만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흘러갔다.
대학 졸업 후 봉세는 변호사의 꿈은 잠시 뒤로 한 채 대기업의 송무팀에 취직했다. 로스쿨을 가기 위해서는 자취를 위한 전세금, 생활비,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이 그리는 미래와 가까운 법과 관련된 일이라며 봉세는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옆팀의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됐다. 봉세는 자신이 그리는 미래에 다가가지 못한 채 돈을 벌고 있는 상황에서 그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편이자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자신을 허락하지 않은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시도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찬미씨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제가 아는 맛집이 있는데 한 번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요!"
"찬미씨 주말에 답답하시면 저 부르세요. 제가 운전 기사 해드릴게요."
연애와 담을 쌓고 지낸 그였지만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면 전달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두드림에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응답해 주었다. 다시 한번 그는 운명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실감했다.
봉세는 그녀와 매일 같이 퇴근하고 저녁을 먹은 뒤 헤어졌다. 비록 주말에는 로스쿨 입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만나지 못했지만, 주중 저녁마다 간단하게 만나는 시간이 그에게는 피난처였다.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그녀라는 안식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입시준비를 위한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는 지금의 행복을 잃는다는 상상을 할 수 조차 없었다.
2년이 지나자 찬미는 봉세에게 결혼에 대한 의사를 밝혔다. 찬미는 봉세보다 4살 연상이었기 때문에 봉세와 결혼하는 것을 원했고, 봉세가 로스쿨에 들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함께 같은 회사를 다니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봉세야 너는 결혼 생각이 있어? 물론 네가 로스쿨 입시준비를 계속해왔던 건 알고 있지만 우리 이제 나이도 있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나쁘지 않은 데 굳이 또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너랑 결혼은 하고 싶지. 근데 알잖아, 내 꿈은 변호 사고 그 꿈 이루겠다고 지금 잠깐 돈을 벌고 있는 거. 근데 나보고 그냥 포기하라는 거야?"
"나도 네가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우리 사이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줘. 나는 알다시피 시간이 많이 안 남았잖아. 그냥 나랑 결혼하면 안 돼? 우리 정말 잘 맞았고, 정말 행복했잖아......"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해...... 쉽게 답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미안해"
"역시 넌...... 그렇구나? 이미 예상은 했는데 그래도 좀 슬프네...... 알겠어 그럼 네가 결정할 때까지는 우리 연락하지 말자."
봉세는 차마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봉세는 그녀가 자신에게 결혼을 말한 순간부터 자신이 그녀에게 속박된다고 느꼈고 당장에 벗어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결혼은 자신이 계획한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그녀는 전부였지만, 전부였기 때문에 모두 비워내고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향해 새로운 돌을 굴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시지프신화의 떨어지는 돌을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와 자신이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봉세는 자신이 운명이라고 여기는 것을 향해 그저 돌을 굴려 올릴 뿐이었다. 찬미라는 돌을 굴려 올리는 것이 자신의 운명에 맞지 않는 다면 과감히 다른 돌을 굴려야 했다.
봉세는 새로운 돌을 굴릴 준비를 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찬미와는 이별했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자신을 붙잡았고, 찬미는 자신을 사랑한다며 붙잡았지만 봉세는 덤덤이 언덕에 올라서서 이미 다 굴린 돌을 내려놓았다. 그것만이 봉세의 운명이었다. 시지프스와 봉세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봉세는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