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연은 짜여진 운명의 판

운명과 자유_운명 편

by 황태

애기 엄마들이 주 인원인 팀에서 뒤풀이로 악명 나있는 사내 봉사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은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한 이수는 봉사활동에 자원했다. 반강제적인 참여였지만 그래도 쪽방촌 어르신들을 위해 연탄을 나르는 봉사는 처음이었기에 그녀는 뿌듯했다. 뜻깊은 자리에 참가한 것이 아닌가. 살면서 남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으니까.


어차피 같은 회사사람들끼리 참여하는 봉사라지만 그래도 이수는 홀로 뻘쭘히 서있는 것이 민망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래도 삼삼오오 아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수는 그들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쳐 자신이 속한 조가 서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그였다. 아침마다 마주치는 고봉세.


매일 마주치는 것에 비해 말을 섞지 않은 봉세였기에 당황스러웠지만 반갑게 말을 걸었다.

"어? 안녕하세요. 대리님도 봉사활동 지원하셨네요?"

"아 네네. 저희 팀장님께서 항상 봉사활동에 나가셨던 터라. 이번에는 제가 지원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저도 뭐 마찬가지예요. 팀원분들이 대부분 애기 엄마들이셔서 눈치껏 제가 지원했어요."

"아하. 아. 혜진이도 같이 지원해서 왔어요. 다른 팀이라 같이 없긴 하지만요."

"아 그래요? 다행이다. 이따 뒤풀이에서 어색하진 않겠네요."

"네 그렇겠네요."


어색하지 않긴 뭐가 어색하지 않은가. 같은 조끼리 모여 앉아 뒤풀이를 하게 될 텐데 이수는 이후의 시간이 걱정스러웠다. 얼굴을 자주 봐서 익숙하다 뿐이지 봉세는 거의 처음 보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봉사활동을 위해서 비닐 옷과 위생장갑, 고무장갑, 마스크 등을 차례대로 착용하라는 지원팀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수와 봉세는 함께 일을 나가는 노부부와 같이 서로의 착용을 도와 주웠다.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 집중된 군더더기 없는 도움의 손길은 절제된 감정 탓이었을까.


조를 편성한 것이 무색하게도 연탄봉사는 힘을 쓰는 일에는 남자들이 투입됐고, 힘을 덜 쓰는 일에는 여자들이 투입됐다. 앞서 연탄을 담은 수레를 끌러간 봉세는 보이지 않았고 이수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심정으로 연탄을 옆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에 집중했다.


생각보다 연탄은 무거웠고 2시간 내리 진행되는 봉사활동에 굵은 땀방울들이 생겨났다. 비닐 옷에 습기가 찰 즈음 봉사활동이 끝났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뒤풀이 장소인 치킨집에 도착하자 조별로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다. 이수는 4명이 한 테이블인 자리에 먼저 앉아있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봉세가 이수 옆으로 와서 앉았다.


아무리 고려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장소에 그 사람과 고립된 상황 속에서는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다. 이수는 이참에 이 순딩한 사람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대리님 연탄봉사는 어땠어요? 안 힘드셨어요?”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연탄이 무겁더라고요. 게다가 창고에 연탄을 쌓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진땀 뺐어요. “

“어휴 고생하셨어요. 저희 조는 이렇게 두 테이블 앉나 보네요. 뭔가 다 모르는 분들인 것 같은데 저희끼리라도 친해질까요? 대리님 저 혹시 말 놔도 돼요?”

”네네. 저희 사실 얼굴 보고 안지는 꽤 오래됐는데 그동안 제대로 대화도 못하고 말도 못 놓고 그랬네요. 편하게 말할게. “

“응 오빠. 나도 편하게 말할게. “


이수는 안중에도 없는 봉세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말까지 놓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믿을 수 없는 묘한 날들이 있는 것이겠지 하며 뒤이어 온 두 사람과 봉세와 함께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제 자리에 앉아서 하는 뒤풀이가 아니었던 것인지 계속해서 서로의 자리가 바뀌었고, 돌아다니다 이수는 사장님이 앉아 계신 테이블에서 술에 잔뜩 취해버렸다.


다음날 아침 이수는 끊겨버린 기억 속에서 봉세가 자신을 부축했으며 택시까지 태워 보낸 사실이 떠올랐다. 얼마나 추한 꼴을 보였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사례는 확실히 해야 할 터였다.


그래서 연탄봉사 때 같이 자리에 앉았던 두 명과 봉세에게 연락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연탄봉사 때 여러모로 민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도와주신 덕분에 집에 잘 들어갈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희끼리 저녁 한 번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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