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삼각관계

운명과 자유_자유 편

by 황태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연탄봉사 때 여러모로 민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도와주신 덕분에 집에 잘 들어갈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희끼리 저녁 한 번 어떠신가요?’


이수에게 온 메신저를 확인한 봉세는 다시금 희망이 싹트는 것이 느껴졌다. 우연이 짜놓은 판에서 이수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친해지고 싶었고 호감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수는 술이 취하고 난 뒤 여러 테이블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수는 봉세 자신이 그녀를 향한 계획을 세울 수 없이 예측불허의 사람이었다. 뒤풀이 이후 살짝 김이 샌 자신에게 또다시 이런 연락이라니.


그리고 이 연락 하나에 기뻐하는 자신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이상형에 부합한 여자일 뿐이다라는 생각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매일 아침 마주칠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산뜻해지는 느낌마저 들었고, 특유의 밝은 기운에 이미 많이 매료된 것 같았다. 평소 상상이라는 것을 잘하지 않는 자신이지만 이수가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라면 어떨까 싶은 상상까지 하게 됐다.


약속장소에 모인 네 명은 연탄봉사 뒤풀이 때 처음 한자리에 앉았던 봉세 자신과 이수, 그리고 동주라는 남자 직원이었다. 다른 한 명은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셋은 원래부터 친했던 사람들인 것처럼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꼈다. 다만 이렇게 서로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끼리 즐거운 것이 정말 편안해서인지,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자신은 이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너무 잘 알았지만, 동주와 이수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동주는 사회인 축구를 취미로 한다고 했다. 매년 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고 했다. 마침 이번주말에 축구 경기가 잠실에서 있다며 구경하러 오라는 동주에 말에 이수가 신이 나 좋다고 말했다. 봉세는 그저 웃고 있는 이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저녁 자리가 마무리되고 친해진 세 사람의 단톡방에 동주의 축구 경기 일정과 주소가 적힌 카톡이 왔다. 올 수 있게 되면 오라는 말과 함께. 봉세는 조용히 카톡창을 껐다. 이수는 정말 자신이 마음대로 다가갈 수 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약속 다음날 토요일을 평소처럼 보내고 있는 봉세에게 카톡이 왔다.

'오빠 우리 동주오빠네 축구경기 내일 같이 보러 갈래?'


이수의 연락에 봉세는 홀린 듯이 답장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좋다면 가겠노라고. 자신이 절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지 동주와 이수는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내일 이수와 함께 갈 곳이 동주의 축구경기장이라 할지라도 봉세는 좋았다. 이수와 함께 앉아 경기를 보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될 테니까.


일요일 오후 6시. 간단히 저녁을 먹고 경기장으로 향하는데 이수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의 핸드폰에 이수의 전화가 걸려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봉세는 계속 화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오빠 나 지금 경기장 앞 카페인데, 혹시 커피 마실래?"

"응. 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라."

"내일 출근인데 디카페인으로 주문할까?"

"아냐. 나는 카페인 마셔도 잠자는 데는 상관이 없더라고."

"웅, 알겠어. 이따 봐."


이수의 명랑한 목소리가 수화기에 울려 퍼졌다. 이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남을 배려하는 것이 정말 익숙한 사람. 자신의 다음 날 출근까지 걱정하지 않았는가. 이수의 작은 배려에도 봉세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경기장에 도착하자 멀리서 손을 흔드는 이수가 보였다. 무엇이 그리 신난 것인지 팔짝 뛰어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봉세는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싹텄다. 이수는 스케치북에 '문동주 파이팅'이라는 응원 메시지도 적어서 가지고 왔다. 동주를 위해 스케치북을 준비한 이수에게 심통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누구에게나 배려심이 깊어서 그런 것일 거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이수는 리액션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급박한 상황이 펼쳐질 때면 어쩔 줄 몰라했고 갑자기 날아드는 벌레에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다. 32년의 인생이 잔잔하고 또 무미건조하기만 했던 봉세에게 이수는 채색되어 보였다. 이수의 모든 풍경들이 형형색색의 색깔로 채색되었다. 그래서 이수는 자신이 만들어갈 수 있는 운명도 아니었고 계획하여 준비할 수 있는 미래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은 답이 없는 문제의 채점을 기다리는 학생일 뿐이었다. 이수에 한해서 봉세 자신은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경기 전 반전이 끝나고 인사를 하러 온 동주와 함께 셋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주는 정말로 회사에서 가볍게 친해진 두 명이 일요일 저녁에 자신의 경기를 보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 놀라고 기뻐 보였다. 그 기쁨의 원인이 이수가 아니기를 봉세는 바랬다.


경기가 끝나고 이수와 돌아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감독과의 미팅이 끝난 동주가 자신과 이수를 찾는 것이 보였다. 일부러 걸음을 재촉했다. 봉세는 이수를 동주와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주차장에 도착해 이수와 인사를 나누며 봉세는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했지만 이수가 빠르게 거절했다. 자신의 집이 너무 멀고 설령 가깝다고 해도 일요일 저녁이라 부담이라는 것이었다. 배려심 깊은 이수답게 거의 뛰듯이 봉세에게서 멀어져 갔다. 봉세는 한 번 더 이수를 붙잡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차에 시동을 걸고 추가했다. 차를 운전하는데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는 이수를 보았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을 보니 택시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충동이 피어오른 봉세는 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수야, 택시 잡지 말고 기다려. 내가 데려다줄게."

"응? 아니야 오빠. 나 택시 타고 있어."

"거짓말 치지 마. 너 택시 안 탔잖아. 잔말 말고 앞에 횡단보도 보이지? 건너서 와. 거기에 차 대놓고 있을게."

"어? 응 알겠어."


이수의 원래 성격이라면 두 번, 세 번이라도 고집을 부려서 결국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겠지만 자신이 강하게 밀어붙이니 이수는 당황한 듯 알겠다고 수긍했다.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으니 이수가 멀리서 걸어왔다. 이수는 조수석 문을 열고 의자에 앉기 전에 신발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이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혹시라도 봉세는 자신의 강한 어조에 이수가 놀랬을까 해명했다.

"너 성격상 절대 안 타겠다고 할 것 같아서 일부러 강하게 말했어. 나 진짜 괜찮아."

"고마워 오빠. 내일 출근해야 해서 피곤할 텐데 나 데려다주고 집 가면 너무 늦지 않겠어? 나 집도 엄청 멀단 말이야."

"어차피 11시 너머 잠드는데 상관없어. 너 그대로 보내면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응. 오빠 내가 밥상게. 진짜 고마워. 덕분에 엄청 편하게 가겠다."


일요일 오후 9시 반, 한산한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머리 위로는 가로등이 흩뿌려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듯한 예쁜 불빛이 가득 번져있었다. 이수는 말이 없는 봉세를 대신해 조잘조잘 말을 걸어왔다. 자신이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재료가 없지만 고기야채볶음을 해 먹었다는 말에 놀라며 칭찬해 주었고, 운전을 부드럽게 잘한다며 놀라워했다. 적막하고 어둡기만 했던 차 안이 가로등 불빛 때문인지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이수와 봉세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연인인 사이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봉세를 기분 좋게 했다.


무려 한 시간 십 분을 달려 이수의 집에 도착했지만 봉세는 아쉽기만 했다. 이렇게 이수를 내려주면 끝일 것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연락할 명분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천천히 차를 대고 이수를 내려주었다. 연인이라면 고맙다며 뽀뽀라도 해줄 텐데 이수는 웃음으로 대신했다. 봉세는 이수가 걸어가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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