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 고찰 01화

살아가는 동네, 집이 우리에게 주는 무언의 힘

동네와 집에 대한 고찰

by 황태


갑자기 내가 얼마나 고향을 사랑하며, 내 마음과 행복이 얼마나 깊이 고향의 지붕, 탑, 다리, 길, 나무, 정원 그리고 숲의 혜택을 받는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분명히 느꼈다. 헤르만 헤세, 꿈꾸며 방황하며 사랑하며


이른 아침 집 근처 산책로를 달리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분명하게 이 산책로와, 산책로 위의 나무들과, 산책로 옆을 흐르는 계곡과, 산책로 저 편에서 시린 공기를 뿜어내는 산맥과, 종아리를 스치는 들풀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매일 같이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일주일 중 4-5일을 달리며 달라지는 계절을 실감하게 되는데 그마저도 내 마음의 혜택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오전 5시 30분이라는 시간대에 느낄 수 있는 온도, 세상의 환함 정도, 바람, 습도, 공기의 냄새 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을 비워내고 또 위로한다. 매일 같이 그대로 있는 것들이 주는 안정감과 평안함이 내 정신을 굳게 붙들어주기 때문이다. 마치 매일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은 부모님과 같은 존재이자, 비할 바 못되지만 항상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같다. 사람에게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큰 위로로 다가온다. 어떤 일이 벌어졌던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지 익숙한 공간은 내가 돌아갈 구석이 되어주고 나의 존재를 실감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들은 내게 어떤 메시지로 다가온다. 정해진 흐름에 맞춰 날씨가, 공기가, 온도가 흘러가듯이 이 또한 모두 지나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아침의 달리는 시간은, 엄밀히 말하면 내게 주어진 나의 동네는 나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간이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곳이다.


그렇기에 나는 집이 위치한 동네가, 동네의 자연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쉽게 바꾸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수천 번도 더 많이 현관문을 들락거렸지만 문과 거실, 바닥과 계단을 자세히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언제나 다른 세계 곧 우리만의 세계로 들어서는 길목인 것은 틀림없었다. 헤르만 헤세, 꿈꾸며 방황하며 사랑하며


그리고 집에 대해 생각한다. 퇴근 후 '퇴근길'이라고 명명되는 정겨운 동네의 길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우리는 코에 풍겨오는 집냄새를 통해 나의 세계에 도달한 것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 향기의 존재는 강력해서 다양한 냄새로 가득한 공간에서 벗어나 익숙한 냄새가 나는 공간으로 입성한 내게 오차 없는 분리감을 느끼게 한다. 한 때 나의 집이 되어주었던 부모님의 집을 오랜만에 방문했을 때 왠지 모를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도 나의 공간의 냄새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현관은 우리에게 나만의 세계와 공간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입성한 후 공통의 의식을 수행해야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안식처에 도달할 수 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묵은 빨래를 돌리고, 저녁을 차리는 등의 의식이다.


길목을 통해 나만의 세계에 도달한 후 공통 의식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안식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으며 오늘을 살아간 자신에게 휴식을 부여할 수 있다. 하루라도 집이 아닌 공간에 묵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몸에 피로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나만에 세계에 도달하지 못했고 공통의식을 수행함으로써 안식을 얻는 행위를 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물론 어디에서든 나만의 세계에 도달하면 좋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나만의 세계이자, 유일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중요한 곳이다.




사랑하는 나의 동네와, 사랑하는 나의 집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우리에게 익숙함을 선사하는 이 것들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된다. 매일 그들이 주는 위로를, 울림을, 음성을, 안정감을, 평안함을 예민하게 포착해 사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들이 주는 무언의 힘을 받아서 매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을 마음 깊이 사랑해야 한다. 긴 시간을 함께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힘을 얻을 수도 없을뿐더러 우리 삶의 긴 시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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