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퇴사, 그리고 빈 항아리에 물 붓기

요한복음 2:1-11

by 황태

작년 12월, 내 이직에 이어서 지난주부터 남편의 이직이 진행됐다. 작년 10월 우리 가족의 대전 행이 무마되고 난 뒤로 그동안 몇몇 군데 회사들에 이력서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면접이 성사된 적은 없었다. (작년에 퇴사를 결심하고 나와 남편은 대전과 청주에 있는 회사에 각각 지원했었는데 남편의 1차 면접 탈락으로 대전행은 무마됐었다.)


그 뒤로 남편의 회사는 점점 더 힘들어졌었는데, 가령 이런 식이었다.

월요일 : 이천 외근, 저녁 회식 후 새벽 귀가

화요일 : 판교 외근 후 회사 복귀, 저녁 회식 후 새벽 귀가

수요일 : 청주 외근 후 저녁 식사

목요일 : 연달아 이어진 미팅 후 저녁 회식, 새벽 귀가

금요일(휴가) : 미팅 참석 및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잔업 처리 (차주까지 본사에 전달해야 하는 자료 등이 있음)


원래 외근과 출장, 회식이 많은 회사였지만 그 모든 일정을 수행하면서 기간에 맞춰 자료를 작성하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야근과 휴가 및 주말 근무도 감행하는 것을 보고 퇴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차라리 출장을 가게 된다면 수당이라도 나오겠지만 애매한 거리의 외근이었기 때문에 수당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이동시간 동안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시간 동안 하지 못한 일은 근무시간 외에 처리해야 했다. (영업직이기 때문에 정규근무시간 외에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남편의 자유의 지도 담겨있긴 하다.)


요 근래 새벽에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서 침대까지 들어오지도 못한 채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가 3~4시간 눈을 붙이고 또 먼 길 운전을 해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신앙인으로서 살아가기 힘든 회사였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이직을 하고 나서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에 나온 것처럼 큰 변화를 맛보았고, 또 술자리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경건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적극 이직을 추천했다.


올해 3월 초가 되자마자 본격적으로 헤드헌터를 통한 제안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력서를 냈다. (왜 우리가 이력서를 냈냐고 표현했냐면 남편이 출장과 회식 등으로 시간을 내지 못해, 매번 내가 이력서 초안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작성해서인지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고, 남편이 휴가를 낸 뒤 짬을 내어 이력서를 작성하고 제출한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대기업에서 한 사업부문을 사모펀드에 팔았고, 사명을 바꾸고 세워진 회사였다. 지난주 면접을 보러 가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위치한 회사라 기분이 오묘했다. 보통이라면 강남 쪽에 있어야 할 회사였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남편은 면접을 잘 보고 왔다고 했고 8년 천 입사했을 때 2년가량 일했던 업무와 동일하다고 했다. 그쪽에서도 남편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합격 연락이 왔고 처우 협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남편이 부른 연봉을 맞춰주기 힘들 수도 있다는 헤드헌터의 답변이 왔고 우리는 지난주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기도로 기다릴 수밖에 없았다. 어떤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제시한 연봉이 맞춰지지 않을 수도 있는 와중에, 번듯한 회사에서 나와 사모펀드에 매각된 회사를 들어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이 계속 우리를 괴롭혔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주 말씀을 듣게 됐다.


'가나의 혼인잔치'를 배경으로 하는 말씀으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참석한 혼인잔치에 미리 준비한 포도주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시대에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은 굉장히 큰 일로 잔치의 주인은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한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이 상황을 말씀드렸고,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빈 항아리 6개에 물을 가득 부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물은 전과 비할 수 없이 맛있는 포도주로 변하고, 이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이 된다.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두고 한 가지 사례를 말씀해 주셨다. 현재의 교회가 이전해 오기 전 포도주가 가득 찬 항아리처럼 큰 교회였지만, 포도주가 다 빠지게 되었고 이제는 빈 항아리 6개만 남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물을 항아리에 가득 채울 때에 포도주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그리고 그 포도주는 전과 비할 수 없이 맛있는 포도주가 될 것이라고, 이것이 바로 점점 더 좋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들었을 당시에는 우리의 상황에 대입하지는 못했고 앞으로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만을 하고 예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오늘에 이르러 우리 가족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법을 찾게 됐다.


포도주가 가득 찬 항아리는 기존회사에 다니는 오빠고, 현재는 포도주가 다 빠진 상태이다.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기도 하고 또 이직을 하게 되면 승진하면서 오르게 되는 연봉과 6월에 받게 될 성과급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6월에 성과급을 많이 주기로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직하려고 하는 회사는 현재 회사 팀장님이 언급하셨듯, 사업성이 좋지 않아 사모펀드에 매각된 회사이다. 사람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그대로 있으면 포도주가 가득 찬 항아리이고, 이직을 하면 포도주가 빠진 빈 항아리가 되는 것이다.


어제 현재 회사 팀장님께 이직을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생각할 시간을 얻고 나서 솔직히 많이 고민이 됐다. 하지만 그 빈항아리에 물을 부어야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직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앞으로 믿음으로 빈 항아리에 물을 부어나가 보고자 한다. 오로지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나아가려 한다.


이후의 글들이 이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 대한 간증의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요한복음 2:1-11 (개역개정)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