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예찬 일기
바다를 보기 위해 부산으로 떠났다. 강릉은 여러 번 가 보았지만 부산은 가본 적이 없었다. 부산은 로맨틱한 연인들만 갈 것이라는 나만의 고정관념에 괜히 피하게 됐다. 어쩌면 아끼고 아껴 두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국 로맨틱한 부산에는 도착하지 못했지만 친구야 고마워.)
고이 접어 두었던 부산을 떨리는 마음으로 펼치게 된 나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차창 너머로 미리 맛본 부산의 바다는 강인함이 느껴지는 짙푸른 동해의 바다와는 다르게 고요한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차분하고 또 고상하게 그저 유유히 반짝이고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기에 유명한 해수욕장 3곳을 모두 둘러보기로 했다. 그 크고 광활한 바다를 어떻게 둘러서 본다는 표현으로 어설프게 계획할 수 있었는지 우습다. 하지만 나는 조급했고 주어진 시간 안에 모두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이 땅의 여행자였다.
먼저 광안리해수욕장에 갔다. 하얀색의 고고한 광안대교를 배경 삼아 그 아래 잔잔히 빛나고 있는 바다를 두고 가차 없이 등을 돌렸다. ‘광안대교와 어우러진 바다가 멋지군’이라 생각하고 바로 떠난 것이다. (아 참 기념사진 한 장 남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해운대로 이동했다. 왜 해운대가 부산을 대표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적당히 모래사장은 부드러워 걷기 좋았고, 적당히 파도는 밀려와 놀기 좋았고, 적당히 바다는 푸르러 시원했고, 적당히 이 모든 풍경이 어우러졌다. 적당함을 본 나는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송정해수욕장은 여름휴가철을 맞아 방문한 사람들로 인해 오븐 속에서 구워지는 빵과 같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 뜨거웠다. 주차마저 쉽지 않아 송정해수욕장과 조금 떨어진 해변의 끝자락에 겨우 주차했다. 주차장에서 걸어 나와 보이는 풍경은 낡은 민박집 한 채와 정리되지 않은 도로, 바다. 바다가 보였다.
꾸밈없이 수수했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었다. 좋은 해변의 필수 요건인 고운 모래사장도 없이 무질서하게 돌과 자갈들만이 서있었다. 이끼에는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벌레들의 발자국만이 스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비릿하고 짭조름한 맛이 메말랐던 안구에 간을 더했다. 우연히 마주한 부산의 맨 얼굴에 내 낯은 뜨거워졌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 오전 동안 바삐 움직이며 바라본 바다들은 밀려온 파도에 실려 흩어 사라졌다.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지금이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 나는 이 땅의 이방인 신분이라는 위치가,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는 억압이 사라졌다. 그저 아낌없이 매료되었다. 그때 떠오른 구절이 있다. 파우스트의 ‘순간아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였다. 순간을 고정시켜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저 아낌없이 매료되었다.
순간을 고정시켜 찬찬히 바라보았다.
에메랄드 빛 두루마기 같은 파도가 펄럭 휘날렸다가 살랑이는 바람에 한 자락 들추였고 지나간 자리에 촤르르 하얀색 치맛자락이 쏟아졌다. 산호 빛 비단으로 미끄러지듯 덧댄 저고리의 옷고름이 풀리자 보이는 속적삼에 레이스 무늬가 수 놓였다. 틈 없이 빽빽하게 모래를 채워 살구빛 누빔 배자를 만들었다. 싱글벙글 웃음을 달고 있는 사람들로 마고자 단추를 만들었다. 이 모든 풍경에 금빛가루를 흩뿌려 윤슬을 만들었다. 매료된 이 순간은 한 편의 시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존재했다. 집을 떠나온 여행자의 의무를 내려놓고 이곳을 온전히 나의 집으로 받아들였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니 여유로운 시선으로 순간들에 매료될 수 있었다. 여행자였으면 절대 보지 못했을 맨 얼굴이 보였다. 내 집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