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일했던 공기업 과장 탈출, 이사장의 사업 일기...ing
대학 시절, 나의 전공은 심리학이었다. 베이킹과는 전혀 무관한 전공.
취미로 즐기던 베이킹은, 반죽을 하고, 굽는 그 과정 뿐만 아니라 포장을 하고 나눔을 하는 것으로부터 크나큰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주 간단한 쿠키부터, 빵과 케이크까지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내가 만든 빵과 과자로 누군가의 하루에 미소를 한스푼 넣는 일은 그 시절 참 몽글몽글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틈틈이 오븐 앞에서 과자를 구웠다. 아이가 크면서 아이와 함께 나의 취미를 공유할 수 있었다. 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집안 가득 퍼지던 고소한 빵 냄새. 취미로 시작했던 베이킹은 나에게 단순한 요리 그 이상의 위안이었다.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도 아주 생산적이고 유용한 방법이었다. 버터냄새와 달콤한 향을 맡으면 회사에서 내내 받았던 스트레스가 잊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회사 선배에게 선물하는 희열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기술을 배워두어야지 늘 생각했다. 아이를 위해 만들었던 건기식을 만들기 위해 기획하고, 제작하는 시간 사이사이 틈을 내어 베이킹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어찌나 저명하고, 엄청난 선생님들이 많은지 모른다. 제과와 제빵을 배우러 다녔던 시간들은 나 자신을 위해 온전히 쓰는 시간이었기에 정말 소중하고,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
1년 여간의 시간은 나를 ‘베이킹을 즐기는 엄마'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준비하는 사업가'로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제과제빵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이었기에,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더욱 맛에 객관적이었던 것 같다. 워낙 빵을 좋아하고, 빵으로 독박육아를 버틸 만큼 빵 없이는 살 수 없었던 특별함이 있어 내가 먹고 힘이 났던 빵, 밤샘 육아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눈이 번쩍 떠질 수 있는 빵과 과자를 기억해내고, 나와 같은 누군가를 위해 만들고 싶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제과제빵을 전공한 사람들의 물리적 시간 투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전공자였기에 빵이 만들어지는 원리부터 하나하나 알고 싶었고, 발효가 되게 돕는 과정들, 밀가루지만 누가 먹어도 불편하지 않는 빵, 특히 아이가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들고자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이미 나는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사업이라는 하나의 엔진을 돌리고 있었다. 건기식은 나의 철학을 담아 꾸준히 스토리를 풀어나가며 고객과 신뢰를 쌓아가는 매력적인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가로서의 현실은 늘 냉정했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긴 호흡으로 설득해야 하는 건기식 사업에만 모든 것을 걸기엔,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막연한 불안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통제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에게 카페와 빵집은 바로 그 확실한 통제권이었다.(그 땐 그렇게 생각했다.)
건기식이 온라인을 통해 흐르는 나의 '스토리'라면,
베이커리 카페는 매일 새벽 오븐에서 나오는 빵처럼 내 눈앞에서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현실'이다.
이 두 가지 파이프라인이 조화를 이룰 때, 나는 비로소 건기식 사업을 조급함 없이 더 긴 호흡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마음을 굽는 빵집, '베이커리 카페'를 시작했다.
이제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좋은 재료를 고르며, 지난 1년간 배운 전문가의 기술로 빵을 굽는다. 내가 차릴 카페는 단순히 커피와 빵을 파는 곳이 아니다. 건기식을 통해 몸의 건강을 이야기하듯, 이 공간에서는 갓 구운 빵의 온기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하나의 사업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두 개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한다는 것. 그것은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내 삶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나의 전략이자, 더 단단한 미래를 향한 다짐이다. 나의 두 번째 엔진인 오븐에 불을 켜고 목적지는 같지만 다른 길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