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일했던 공기업 과장 탈출, 이사장의 사업 일기...ing
준비되지 않은 행운은 때로 재앙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골목 끝 작은 카페에 기적처럼 찾아온 '오픈런'은 나를 구원하는 듯했지만, 동시에 나의 밑천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빵을 굽는 기술과 가게를 운영하는 경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오픈 초기, 나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되어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멈췄다. 20평 남짓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건 고소한 빵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초보 사장의 당혹감과 땀 냄새,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크고 작은 실수들이 반죽 속에 뒤섞였다.
어느 날은 발효 시간을 잘못 계산해 오픈 시간이 다 되도록 빵이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정작 내놓을 수 있는 빵이 단 한 바구니도 없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식은땀을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내 목소리는 늘 가늘게 떨렸다. "제가 뭐라고..."라며 감격했던 마음은 어느새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자책으로 바뀌어 갔다. 사람들은 따뜻한 빵을 기대하며 찾아왔지만, 나는 그들에게 실망을 팔고 있는 건 아닌지 매일 밤 퉁퉁 부은 다리를 문지르며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불행 속에는 늘 작은 불씨같은 행운이 숨어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늘 인복이 많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는, 이 곳에서도 넘쳐나는 인복을 느낄 수 있었다.
놀이터 앞, 나의 '작은 선생님'들.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던 나를 붙잡아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가게를 찾아주던 단골손님들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근처라는 위치 덕분에 우리 카페엔 유독 아이와 함께 오는 부모님들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하교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들르던 젊은 엄마였다. 그날은 유독 실수가 잦았던 날이었다. 주문이 꼬여 그분이 주문한 샌드위치가 한참이나 늦게 나왔고, 심지어 재료 하나가 빠져 있었다.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사과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그녀는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천천히 하셔도 돼요. 여기 빵 냄새가 좋아서 아이랑 앉아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거든요. 처음엔 다 그런 거죠, 뭐."
그 한마디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의 줄이 툭,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실수를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오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놀이터 앞이라는 위치는 축복이었다. 손님도 맞이하고, 빵도 오븐에서 나와야 하는 그 전쟁같은 시간. 손님들은 천천히 하시라며 이야기하며 기다리신다고 마음이 조급한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들은 내게 손님이자, 이 낯선 골목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는 다정한 선생님들이었다.
빵은 오븐이 아니라 사람이 굽는 것.
시간이 지나며 나는 조금씩 요령을 터득했다. 반죽의 상태를 보고 처음보다는 여유있게 읽어낼 줄 알게 되었고, 밀려드는 주문 속에서도 누군가와 눈을 맞추며 인사할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가장 서툴렀던 그 시절 나를 향해 웃어주던 단골들의 얼굴이다.
베이커리 카페의 본질은 결국 '온기'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갓 구운 빵의 물리적인 온기보다 더 중요한 건, 서툰 사장의 실수를 너그럽게 품어주던 그 골목의 온도였다.
오늘도 나는 3년 전 그날처럼 오븐 앞에 선다. 이제는 빵을 태우는 일도, 주문을 잊어버리는 일도 거의 없지만, 여전히 문을 열기 전엔 기분 좋은 긴장을 느낀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올 누군가에게, 내가 받았던 그 다정한 환대를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놀이터 골목의 작은 카페. 그 곳에서의 기억으로 나는 오늘도 빵을 굽고, 사람을 만나며, 조금씩 진짜 '사장'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