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이과장, 하이 이사장!(15)

12년간 일했던 공기업 과장 탈출, 이사장의 사업 일기...ing

by 봉봉

15. 다정한 배신이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등 떠밀었다.


작은 골목, 그곳에서 배운 ‘사람에 대한 씁쓸함과 확신’에 대하여..


나의 작은 가게는 단순한 생업의 현장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반죽을 소분하고, 성형하고, 빵을 구워내고, 원두를 고르고, 빵과 과자를 굽는 시간 속에 나의 진심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진심이 언제나 진심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사람들, 혹은 그들의 노골적인 욕망이 나의 작은 공간을 수시로 흔들어 놓곤 했다.


어느 날은 남녀 커플 손님이 왔다. 엄마 손님들이 대다수인데, 근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친구들도 자주 온다. 대학생 친구들은 카페에 놀러와 맛있게 먹고, 너무 감동했다며 감동적인 말을 나에게 남겨주어 어깨가 쭉 펴지는, 기가 절로 사는 칭찬을 해주는 귀여운 손님들이다. 남녀 커플은 카페를 쭈욱 둘러보더니, “단체 주문을 하려고 한다. 몇 백 개 만들어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미리 말씀만 해주시고, 선결제 하시면 가능하다”고 답을 했다. 그들은 주문을 하지 않고, 알겠다며 떠났다. 카페 이곳저곳을 사진찍으며 관심을 보이길래, 단체주문이 들어오려나 보다 하고 설레어했다. 하지만 그들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카페거리에 있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들과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손님을 응대하고 있던 그들을 보게 된 것. 그날의 그것은 주문이라기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누군가의 의지를 꺾어보려는 날 선 경쟁심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 무너지게 했던 건 '다정함'의 탈을 쓴 배신이었다.

오랫동안 단골이라 믿었던 이가 어느 날 옆 골목에 똑같은 카페를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건넸던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안부들이 한순간에 공허해졌다. 그 분의 결혼식 답례품으로 우리의 과자를 주문했었고, 하나하나 정성들여 굽고 포장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시길 기도했었다. 하지만, 나의 카페 그 옆 골목에 답례품으로 주문했던 과자를 메뉴로 집어넣은 카페를 차렸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건너편 식당 사장님은 가게를 가득 채운 손님들을 보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사장님, 몸 챙겨가며 일해요. 건강이 제일이에요."

그 걱정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에 코끝이 찡해졌던 것도 잠시. 세상에, 그분은 곧바로 우리 가게 건너편에 카페를 차리셨다. 맙소사. 나를 걱정하던 그 눈길은 사실 시장조사였을까. 내가 흘린 땀방울은 그저 탐나는 수익 모델이었을 뿐이었다.


그 좁은 골목 안에서 서로를 할퀴고, 누군가의 노력을 훔쳐 가는 풍경들을 목격하며 깨달았다. 이곳은 내가 머물기에 너무 좁아졌다는 것을.


씁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비로소 선명한 결론에 다다랐다. 나를 뒤흔드는 이들에게 에너지를 쏟기엔 내 열정이 너무 아깝다는 사실이다. 시기나 질투, 작은 파이를 나눠 먹기 위한 잔꾀가 통하지 않는 곳. 더 치열하지만 동시에 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불편한 사건들은 결국 나에게 '더 큰 물'로 나가라는 신호였다. 좁은 골목의 소란함에 매몰되지 않고, 나만의 깊이를 증명할 수 있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를 등 떠밀어준 셈이다.


이제 나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내가 가야 할 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상처받았던 시간만큼 내 마음의 근육은 단단해졌고, 내가 만들어낼 세계는 그들의 욕심보다 훨씬 더 넓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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