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이과장, 하이 이사장!(16)

12년간 일했던 공기업 과장 탈출, 이사장의 사업 일기...ing

by 봉봉

16.0(Zero)의 무게


자만이라는 파도를 넘어 다시 서는 법


좁은 골목에서의 상처를 뒤로하고, 나는 더 넓은 바다로 배를 띄웠다.

2호점.

그것은 나에게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나를 증명하고자 했던 거대한 포부였다.


더 많은 빵을 구워낼 수 있는 고성능 기계를 들이고, 이전에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다채로운 빵의 향연을 펼칠 수 있는 기계들로 주방을 채웠다. 번듯한 공간과 완벽한 장비들.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나는 당연하게도 '성공의 재현'을 의심치 않았다. 1호점의 그 뜨거웠던 오픈런과 줄지어 서 있던 예약 명단이 이곳에서도 이어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문을 연 첫날, 당연히도 오픈빨을 마주하며, 나는 이 곳에서도 통하는 구나! 라며 안도했다.


하지만, 1달이 지난 후, 내가 마주한 것은 뜻밖의 침묵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길게 늘어설 줄 알았던 줄은 없었다. 기계는 쉼 없이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 기계가 만들어낸 빵의 향기를 맡아줄 이는 적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희미했다.


그 순간, 묘한 기시감이 나를 덮쳤다. 이전의 기억들이 데자뷰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지도가 높았다고, 이미 충분히 인정받았다고 믿었던 마음은 사실 '자만'이라는 이름의 신기루였다. 나는 내가 일궈온 성과가 온전히 나의 힘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새로운 장소, 새로운 공기 속에서 나는 다시 이름 없는 이방인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1에서 10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시 0에서 1을 쌓아 올려야 하는 막막함. 하지만 그 막막함 끝에 비로소 겸허함이 찾아왔다.


"나는 다시 0(Zero)부터 쌓아가야만 한다."


기계가 좋아졌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속도까지 빨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1호점에서 흘렸던 땀방울의 무게를 이곳에서도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무겁게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어쩌면 더 큰 물로 나간다는 것은, 더 화려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자세로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한 조각씩 얻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주방의 불을 켜며 다짐한다. 화려한 오픈런의 기억은 서랍 속에 넣어두기로 했다. 대신, 오늘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올 단 한 사람의 손님을 위해 빵을 굽는다.

화려한 기계가 구워내는 빵 위에, 나는 다시 '진심'이라는 가장 느린 재료를 얹기 시작했다. 0에서 시작하는 지금 이 순간이, 훗날 나를 가장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될 것임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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